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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추수감사절과 켄터기 시절의 한국 유학생들
첫 추수감사절과 켄터기 시절의 한국 유학생들
  •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2.12.01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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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교수 회고록(23) 애스베리대에서의 강의와 역사 공부5

미국의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한국 사회에 자극제가 될 수 있으며, 미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치를 보여 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추수감사절과 같은 생활 깊이 스며들어 있는 미국의 문화도 많은 것을 돌아보게 했다.

1953년 9월 미국에 도착해 켄터키주의 애스베리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후 첫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보낸 경험이 나의 기억에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에 추수감사절 디너(Thanksgiving Dinner)를 할 때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애스베리대 근처에 있는, 도보로 걸어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한 미국인의 집에서 함께 한 점심 식사(그 당시 미국 중부?나부 사람들은 점심을 ‘디너’라고 부르고 있었다)였다.

미국에서 처음 지내는 추수감사절에 먹는 ‘칠면조(Turkey)’ 점심이 나왔다. 따라서 주인은 식사기도를 한 후 이 칠면조 고기를 대접했다. 우리 한국친구들 중에는 아직도 칠면조 고기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칠면조 고기를 좋아했다. 한국전쟁 중 미군 8군사령부에 연락장교로 복무할 때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켄터키에서 맞은 첫 추수감사절 점심식사 후에 집주인은 미국의 추수감사절 유래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미국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유래

Jean Leon Gerome(1863~1930) 작, 'The First Thanksgiving'.
미국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추수감사절은 매우 뜻 깊은 날이었다. 나는 미국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추수감사절 날 대학 부근에 살고 있는 크래어리 부부댁에 초대 받았다. 미국사람들이 즐기는 터키를 먹는 날이다. 칠면조를 깨끗하게 씻어서 칠면조의 뱃속에는 속백이 (Stuffing)를 꽉 채우고 전기스토브에 넣고 거의 3시간 동안 구어 놓은 후 칠면조를 통채로 식탁에 올려놓는다. 주인은 食刀(큰칼)를 사용해 칠면조의 고기를 한 점씩 오려 내고 손님들의 접시에 나누어 주는 것이다. 나는 칠면조의 다리를 하나 받았다. 그리고 주인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국의 제임스 왕 시절인 1602년부터 영국에는 종교분쟁이 생겼다. 영국의 왕이 섬기는 성공회를 중심으로 영국의 종교분쟁은 오래 계속 됐다. 나는 6·25 전쟁 후 켄터키의 애스베리 대에 다닐 때 ‘기독교 교회의 역사(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라는 역사과목을 수강신청해서 서방교회의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당시 사용한 교과서(Text Book)는 예일대 신학대학원의 위리스톤 워커(Williston Walker) 교수가 쓴 『기독교교회의 역사(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라는 책이었다. 1950년대에 내가 소유했던 책은 분실되고 최근에 새로 주문해서 한 권 구입했다(이 책은 1918년에 출판돼 1959년, 1970년, 1985년에 4판에 이르기까지 수정?보완돼 아직도 기독교 교회사의 가장 귄위 있는 책으로고 인식되고 있다).

영국의 종교분쟁 중 102명의 청교도들이 영국왕의 종교탄압을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기 위해 메이플라워(Mayflower)라는 배를 타고 매사추세츠 주 동쪽에 있는 플리머스 (Plymouth)라는 항구에 도착했다. 그들은 청교도의 선발대였다. 그들은 신천지에서 새로 농토를 개척하고 처음 수확한 곡식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쳤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감사기도하면서 식사를 나누는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였던 것이다.

청교도 순례자들은 1620년 9월 6일에 신천지 (New World)를 향해 영국을 떠났다. 그리고 두 달 동안 102명의 순례자들은 풍랑을 만나서 온갖 고생 끝에 그해 11월 하순에 매사추세츠 주에 도착한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 록크(Plymouth Rock)에 영국을 떠나온 순례자들이 도착한 것은 그해 12월 11일이었다. 플리머스 항에 도착한 뒤 배에서 내리기 전에 순례자들은 ‘메이플라워 계약서’를 작성해 102명이 모두 서명했다. ‘메이플라워 계약 (Mayflower Compact)’은 민간정부와 자치정부를 처음으로 미국대륙에 도입한 증거문서이다. 이후 1789년에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새로 기초한 미국헌법을 선포할 때 처음으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날을 감사절로 설정했다. 그리고 제16대 링컨 대통령은 1863년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선포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매년 농산물을 추수한 후 하나님에게 감사드리는 행사이며, 미국의 국경일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켄터키 대학생활을 함께 했던 한국 유학생들

켄터키 애스베리에서의 대학생활을 마칠 때까지 4년간의 학창 생활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들과는 자주 교신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애스베리대에는 박상증 씨가 나보다 한 해 먼저 학부를 졸업하고 길 건너편에 있는 애스베리 신학대학원(Asbury Theological Seminary)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의 이화여대에서 부 교목으로 있다가 애스베리 신학대학원에 와서 공부하는 조찬선 목사, 조 목사와 함께 한국의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했다는 강 목사, 연세대를 졸업하고 이화여고에서 국어교사로 있다가 유학 온 이선애 선생, 후에 김란해(이화여대 교목인 김종필 목사의 딸) 등 5~6명의 한국유학생이 와 있었다. 때문에 주말이 되면 함께 모여서 한국식으로 국수도 삶아 먹고 또 김치와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있었다. 이선애 씨는 후에 박상증 목사와 결혼해 한국에 나가서 활동했으며, 김란해는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윤일선 박사의 아들 윤석구(시카고 대)와 결혼했다.

좌측으로 부터 조찬선 목사, 손씨(종교음악전공), 필자, 이선애(박상증 목사 부인), 김란해. 박상증 목사 촬영.

애스베리대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렉싱턴(Lexington) 이라는 큰 도시가 있었다. 이 도시에는 켄터키주립대(University of Kentucky, at Lexington) 본교 캠퍼스가 있었다. 또 켄터키 더비(경마)로 유명한 말을 이곳에서 많이 길러내서 우승을 여러 차례 한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켄터키주립대에는 노신영 씨(그는 한국에서 통역장교로 방첩부대장 김창룡의 통역관을 지냈으며, 이후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와 이춘성 씨 (미국 USIS 근무 후 한국정부의 공보처장 역임), 그리고 이덕수 씨가 유학생으로 와 있었다. 여학생은 홍일점으로 이범준 씨가 석사과정에 있었는데, 그녀는 후에 워싱턴의 아메리칸 대학원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박정수와 결혼해 부부박사 제1호가 됐다.

주말이 되면 우리 유학생은 객지에서 외롭고 또 미국식 식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렉싱턴에 모여서 한국식 밥을 짓고, 벼락김치를 만들어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켄터키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노신영 씨는 한국에 나가서 외무부에 들어가 로스앤젤레스 총영사, 외무부차관, 그리고 장관을 거처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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