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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緣起·和諍, 속세의 市場을 비출 수 있을까
승가의 緣起·和諍, 속세의 市場을 비출 수 있을까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1.28 0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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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대안 모색한 불교학연구회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이후 월가를 뒤흔든 ‘점령하라’행진, 자본주의 4.0 논의 등은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한계로 세계 경제는 좀처럼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과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교차하는 것은 전지구적인 움직임이다. 흥미로운 것은 불교학계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그 주인공인 불교학연구회(회장 박경준 동국대)는 지난 17일‘경제문제에 대한 불교적 조명과 재해석’을 주제로 추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윤리’에서 답 구하는 연기자본주의

불교식 자본주의란 무엇일까. 윤성식 고려대 교수(행정학과)는「연기자본주의와 시장자본주의」에서 불교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핵심 교리인 ‘연기’를 불교식 자본주의로 규정했다. 윤 교수는 시장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고 이기심과 탐욕을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법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변화를 모색하는 연기자본주의는 윤리에서 해답을 구하기에 해법이 될 수있다고 두 자본주의의 차이점을 짚어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이자를 죄악시 했지만, 불교만은 이자를 허용함은 물론 금융업을 장려했다는 사실은 불교가 오늘날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사진은 자본주의 문제에 불교적 접근과 해법을 모색한 학술대회 모습.
그가 주창하는 연기자본주의는 연기자본주의 윤리와 연기자본주의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다. 연기자본주의윤리에는 8원칙이 존재하는데, ‘개인은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고 다만 法에 따라 경제활동을 할 뿐이다’라든지,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고 소비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가장 싼 값에 제공할 뿐이다’라는 것이 그 원칙이다. 그는 불교신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가족이 사용하는 제품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물건을 만들었더니 어느덧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연기자본주의 시스템은 연기자본주의의 주요 행위자이며 구성요소이기도 한 시장, 정부, 시민사회, 자연의 역할과 상호작용에 대한 것이다. 윤 교수는 “불교는 절대적 진리를 믿지 않고, 모든 것이 空하며 독자적인 실체가 없다고 믿기에 연기자본주의는 폐쇄적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에 유연하고 , 모든 것이 변한다고 생각하기에 혁신적일 수 있다”라고 연기자본주의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밝혔다.

연기자본주의가 실천되려면? 윤 교수는‘연기자본주의공동체’조성을 제안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시장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연기자본주의의 윤리를 홀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공공재, 외부효과, 정보의 비대칭과 독과점 등 시장결함을 예방하기 위해서는‘윤리’의 가치가 지켜지는 공동체의 조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논평자로 나선 노부호 서강대 명예교수(경영학과)는 첫째로 시장자본주의와 연기자본주의가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사점이 있다는 점, 둘째로 불교의 가르침이 현실세계에 어떤 실천틀을 제공하는가가 녹록치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기자본주의에서는 자비의 마음보다 중요한 것이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노 교수는 시장자본주의에서도 공정거래법 등과 같이 법과 원칙이 지켜지기에 오히려 둘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기심과 탐욕을 변화시켜야 하는 ‘윤리’의 문제로 귀결되는 연기자본주의가 인간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것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또한 노 교수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도 Foxconn의 사례를 제시하며, 돈을 벌려고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윤세원 인천대 교수(정치학) 역시 큰 틀에서는 공감했지만 세부적인 이견을 보탰다. 연기자본주의윤리 8원칙이 승가에 대한 규정이고, 승가란 비생산집단인데, 이를 바로 재가자들의 경제윤리로 적용하기에 타당성이 있는지 현실성에 의문을 제시한 것이다. 이기심과 탐욕의 근원을 수행하고 불교경제윤리를 준수함으로 시장이 작동케 한다는 윤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작금의 불교계의 모습으로는 이런 시장결함을 시정하기 쉽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머지않아 종언을 고할 것으로 예측한 발표도 있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안으로서 화쟁의 사회경제학」을 발표한 이도흠 한양대 교수(국문학)는“소련이 해체됐지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학으로서 마르크스만의 이론이 가장 유용하다”며, “‘확대재생산’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체제인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노동 자체가 소외, 억압, 착취되는 구조이며,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서는 소비 과정에서도 왜곡이 현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식 기업 윤리가 없던 1960년대자본가들이 국가 및 언론과 유착관계를 맺어 노동자를 착취하고 언론과 더불어 국민의 소비를 조장한 구조였다고, 과거 한국의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승가의 법, 재가의 경제윤리로 적용?

이 교수의 불교적인 대안은? ‘정진’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라고 주문한 이 교수는“노동은 생업을 영위하는 행위이자 무명과 미혹의 세계를 깨달음의 세계로 개조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 자아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중생을 구제하고 삼보에 기여하는 행위”라고 해석하며,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불자들이 적극적으로 노동하고 재화를 획득, 증식하라”고 주장했다. 소비에 대해서도, 인간은 이기적이면서도 ‘연기’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개인적 차원에서는 타자를 위해 욕망을 자제하고, 기업의 차원에서는 사회책임경영(CSR)을 실천할 것을 주문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윤 교수가 화쟁과 마르크시즘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자연의 본원적 가치보다 도구적 가치에 주목하는 마르크시즘을 넘어서, 자연이욕구충족의 대상이자 인간과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갖는 전체라는 관점으로 자연의 인간화, 인간의 자연화를 주장한 것이다. 이는, 자연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면,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인간의 노동이 자연을 무조건 도구화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대상으로 삼는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김원명 한국외대 교수(철학)는 이 교수의 논문이‘화쟁’보다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천착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원효의 화쟁 철학’의 실체를 좀 더 명확히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 토론자로 나선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포교사회학) 또한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단언한 이 교수의 발표에 대해, 신자유주의가 이미 전지구적 차원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좋은’노동의 가치화를 둘러싼 인정투쟁에 돌입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세계경제를 견인했던 자본주의에 대한 불교계의 이런 논의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떤 혜안을 제시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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