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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미충’ 25년간 7m까지 자라 … 날것의 유혹 뒤에는?
‘낭미충’ 25년간 7m까지 자라 … 날것의 유혹 뒤에는?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11.28 0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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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75_ 촌충

옛날 우리 소싯적엔 참 찢어지게 억판으로 살았고, 배고픈 주제에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편충, 촌충, 디스토마(흡충)까지 처치곤란 할 정도로 들끓었으니 탈도 많으며, 어김없이 한 사람 몸에 여러 종류의 기생충이 들어 부대끼고 들볶여 깡마르기 일쑤였다.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죽을 맛이었다. 헌데 작금에 기생충이 온데간데없이 씨가 말라 ‘기생충 보호’를 외칠 정도로 줄었지만, 후진국에서는 아직도 마찬가지로 기생충들이 설친다.
 
기생충 보호라 하니, 문득 대학 때 기생충학 수업시간이 번쩍 떠오른다! 고인이 되신 ╌周植 선생님 말씀. “자네들 중에 혹시 촌충 가진 사람이 있으면 가만히 그대로 두시게나. 머잖아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촌충보유자로 박물관에서 모시게 될 터이니 말일세.” 절대 허튼 소리가 아니다. 번득이는 선생님의 선경지명이라니! 선생님은 가셔도 그 어른의 말씀은 이렇게 남는구나!

그런가하면 기생충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기생충을 뱃속에 키운다. 스스로 촌충의 먹잇감이 되면서까지 정작 낯섦을 두려워 않고 이토록 연구에 몰두하는 분들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한데 일부 심하게 과체중인 사람들은‘지방을 죽이기 위해’최후의 수단으로 뜬금없이 촌충을 부려먹는 ‘촌충 식이요법’을 한단다. 멕시코 같은 나라(대부분의 나라에선 위법임)에서는 촌충의 유충인 낭미충을 일부러 먹어 소화나 양분흡수에 지장을 주고, 또 양분을 아귀처럼 빨아 체중을 줄인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혹여 밥통을 잘라 내거나 묶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도 싶다.

寸蟲은 디스토마(흡충)와 함께 몸이 납작한 扁形動物로‘條蟲’이라고도 부른다. 사람에 감염하는 촌충에는 쇠고기육회를 날걸로 먹어 걸리는‘민촌충’,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어 생기는‘갈고리촌충’, 생선회 탓에 걸리는‘긴촌충’, 뱀이나 개구리를 生食한 까닭에 걸리는‘만손열두촌충’들이 있다.

참, 한 때 내 어머니도 촌충에 걸렸었지. 약이 없는 때라 궁상맞고(?), 용감하게도(?) 휘발유와 탄알 속에 든 탄약을 함께 욱여넣으셨다(지금은 Praziquantel이란 특효약이 있음). 늘 애처롭게 맘에 걸리는 일이지만 그 때는 다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암튼 기름과 화약도 구충제로 효과가 있었던지 통시(뒷간)에 촌충 한 무더기가 수북이 널브러져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희뿌연 색깔과 길쭉하고 납작한 그 모양새가 영판 칼국수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간 칼국수를 먹지 못한다고 한다. 미안한 일이다.

‘민촌충’에 초점을 맞춰본다. 머리는 사각형으로 지름 1.5∼2mm이며, 머리마디에 4개의 강력한 吸盤이 있지만 갈고리는 없어서 민촌충[無鉤寸蟲]이라 한다. 어쨌거나 촌충의 알이 든 대변을 풀밭이나 남새밭에 뿌리면 거기에서 알이 까여 두껍고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六鉤幼蟲이 되고, 이것이 붙은 풀을 소가 뜯어먹어 창자에 들어가 껍질이 창자액에 녹으면서 애벌레 낭미충이 되며, 이 유충이 혈관을 타고 소의 근육에 박히는 것이 간단하게 본 민촌충의 한 살이다.

드디어 최종숙주인 사람 몸에 낭미충(앞의 과체중인 사람들도 이것을 먹음)이 들어와 소장 상부에 붙은 민촌충은 25년을 너끈히 산다고 한다. 놈들 탓에 식욕감퇴, 만성소화불량, 변비, 복통, 오심구토, 설사 등의 소화계장애가 일어나고 불면, 체중감소에 영양 결핍은 필수적이며 심지어 장 폐쇄까지 일으킨다.

그런데 어찌 녀석들이 우리의 강력한 소화효소에 선뜻 녹지 않고 버틴담? 다 살게 돼 있다 하지 않는가. 外皮에서 pH를 조절하거나 抗酵素물질을 분비해 인체 가수분해효소를 무력화시킨단다. 참 별나고 용한 놈이로군!

쇠고기(근육) 속의 낭미충을 날로 먹으면 소장 윗부분에서 머리를 내밀어 장벽에 푹 대가리를 처박아 터 잡
고 대장에까지 잇따라 길차게 자라나나니(입도 항문도, 소화관도 따로 없고 몸 전체가 양분을 흡수함), 그 길이가 창자길이와 맞먹는 7m에 달한다! 마디[片節]는 1천∼2천여 개나 되고 매일 꼬박꼬박 性的으로 성숙한 6개가량의 체절(마디 하나하나가 촌충한 마리임)이 찬찬히 떨어져 대변과 함께 줄줄이 밀려나지만 따로 기어 나오는 수도 있다. 마디 하나(한 마리)의 길이는 16∼20mm에 너비(폭) 5∼7mm 정도 이고, 거기에는 걷잡을 수 없이 많은 1만여 개의 알이 들이찬다.

그런데 촌충은 자웅동체로 마디 하나에 난소, 정소가 모두 들었고, 체절은 생식기관으로 꽉 찼다. 기생충은 어느 것이나 소화기관은 턱없이 퇴화하고 생식기관은 더없이 발달한다. 그리도 같잖은 주제에 제 난자, 정자가 절대로 스스로 자가 수정 않고 꼴에 다른 놈의 정자를 받아 타가 수정한다. 이상야릇하게도 촌충까지도 딱히 근친교배를 꺼린다.

예방이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니, 뭣보다 쇠고기를 날걸로 먹지 말 것이고, 소가 먹는 목초에 인분을 주지 않아야 한다. 촌충의 감염여부는 항문 근처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서 알을 찾거나 대변검사로 알아낸다. 모름지기 자주 비누로 손을 씻고, 채소는 깨끗이 씻어 먹을 것이고, 생선이나 육류는 기필코 잘 익혀먹는 것이 기생충예방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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