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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국무총리서리는 초헌법적 관행인가
[논단] 국무총리서리는 초헌법적 관행인가
  • 최용기 창원대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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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4:48:02

최용기 / 창원대·한국헌법학회 부회장

헌법은 국가의 기본틀을 정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최고의 법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나 하느님마저도 대한민국의 헌법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통령이라 해서 헌법에 근거가 없는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해 국무총리의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남용으로 무효인 것이다. 또한 무효인 국무총리서리가 행사하는 국무행위도 위법이며 무효인 것이다.

우리헌법 제86조 제1항에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제87조 제1항에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책임제이면서 사실상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여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민주적 절차인 것이다.

김영상 정부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 총리서리를 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노태우 정부 때 야당 총재로서 그 당시 강영훈, 정원식씨의 총리서리제가 위헌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현 정부는 김종필, 이한동, 장상총리서리를 임명해 국민의 정부와는 거리가 먼 권한을 행사했다.

현행 헌법의 규정대로 대통령의 국무총리지명, 국회동의, 국무총리의 국무위원제청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특히 2000년 6월부터 인사 청문회제도가 시행돼 인사청문회법이 처음 적용되는 이번의 경우, 헌법에 따라 국회 동의를 얻을 때까지는 총리내정자 신분을 유지하고, 동의를 받은 후 총리를 임명해야 한다.

학자에 따라서 정권교체 뒤 첫번째 총리임명의 경우, 총리가 중병으로 집무가 어려울 경우, 불법행위가 드러나 총리를 하루빨리 교체해야 할 경우 등에는 총리서리제도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정권교체기에는 퇴임 직전의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가 사전 협의를 거쳐 새 정부출범 전에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해야 하고, 총리가 중병이거나 불법행위가 드러나 빨리 교체해야 할 경우에는 권한대행을 임명하고, 총리는 국회동의를 받은 후 임명해야 한다.

정부는 국무총리서리제도는 관행이라고 해 합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 위에 관행이 존재한다는 사고가 법치국가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 과거의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위헌이고 무효인 것이다.

대한민국헌정사에서 역대 총리서리를 살펴보면, 이승만 정권 5명, 박정희 유신정권 1명, 전두환 정권 8명, 노태우 정권 4명, 김대중 정권 3명 등 21명에 이른다. 이는 헌법을 무시하고 정치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독재자들이 국민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건국 후, 초대 국무총리 임명에 있어 국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자 새 후보자를 지명해 국회 인준을 받은 후 조각한 선례가 있다. 그 동안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이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기피하기 위해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한 것은 위헌적인 관례였기 때문에 이를 폐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무총리 임명은 대통령의 단독행위에 국회가 단순히 부수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대통령과 공동으로 임명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국회의 동의 없이 국무총리를 임명했다면 그 임명행위는 명백히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번 개각은 긴급한 교체의 필요성이 없었으므로 정부조직법에 따라 직무 대행자를 선임해 행정의 공백을 메우고 국회의 동의를 얻은 뒤 국무총리를 임명했어야 했다. 국무총리서리가 국무총리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기정사실을 만들어 국회의 임명동의절차에 영향을 끼치고, 절차에 위반된 위헌무효의 총리서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것은 무효인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기 위해 헌법개정을 주장하는 정치가도 있지만 헌법은 유지하되 책임총리제를 위해 국무총리의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에서 국민에 이르기까지 헌법을 초월하려는 사고를 전환해 헌법을 수호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헌법은 곧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법통이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신성한 헌장이기 때문이다.

54년 전 우리나라 국회에서 대한민국헌법을 제정하여 공포한 후, 아홉 차례나 개정하여 우리를 슬프게 했다. 국민의 합의에 의해 헌법을 개정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특정인의 정권창출과 집권자의 집권연장을 위한 헌법개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는 이 땅위에 국민의 뜻을 가장한 정권욕에 의한 헌법개정이 이뤄져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헌법을 초월하는 관행을 배제하여 법치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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