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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 평가에서 ‘정성 평가’로 무게 중심 옮겨야”
“정량 평가에서 ‘정성 평가’로 무게 중심 옮겨야”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2.11.19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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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회, ‘논문주의 벗어나자’ 공론화

대중의 지적 수준도 높아졌다. 학계의 대중서 평가도 달라져야
교수평가에서 10% 차지하는 사회봉사부터 ‘정성평가’ 시작하자
학술지 평가, 국가는 행정지원 맡고 학회ㆍ연구소가 평가주도 해야
학문발전 위해 국가와 학계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근본적 담론도 필요

한국철학회(회장 김혜숙 이화여대)는 지난 17일 이화여대에서 ‘학문평가와 학문발전’을 주제로 2012년도 추계학술대회를 열었다. ‘논문주의’에 매몰된 인문학계의 현실을 공론화하기 위해서다.

김혜숙 한국철학회장은 “인문학 하는 사람들은 자기공부가 중요하다는 인식만 강했다. 정책적 마인드가 없었다”며 “수동적으로 쫒아가는 상황이 이어졌는데,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인문학의 특성을 반영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현행 학문평가제도를 재검토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로 열렸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와 강영안 서강대 교수(철학과)가 동ㆍ서양의 학문관을 말했다.

신정근 한국철학회 연구위원장(성균관대 동양철학과)은 ‘현행 학문평가의 문제점과 대안모색’을 대표로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철학과 교수 뿐 아니라 인문학 분야 교수들 6명이 몇 차례 논의과정을 거쳐 마련됐다. 김봉중 전남대 교수(사학과)와 여건종 숙명여대 교수(영어영문학과), 이강재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 이종욱 신구대학 교수(글로벌경영학과), 그리고 정연교 경희대 교수(철학과), 조성택 고려대 교수(철학과)가 머리를 맞댔다.

조성택 한국철학회 편집위원장(고려대)은 “양적 평가를 거의 절대화한 계량적 평가로 인해 논문의 질적 수준에 대한 정성적 평가가 불가능하거나 유명무실한 상황”이라며 “교수채용과 재임용, 정년보장심사 등 신진교수에 대한 평가에 있어 ‘논문업적의 수량’이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어 향후 5년 이후 한국 인문학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라고 ‘평가’ 문제에 주목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조 교수는 “국제영문학술지 특히 SSCI, A&HCI, SCOPUS 등 외국의 상업 출판사 DB등재지에 대해 지나친 가중치를 부여해 학문분야별 다양성을 훼손함은 물론 인문학의 서구에 대한 종속성을 더욱 더 조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인문사회 분야 평가를 정량 평가에서 정성 평가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하며, 학문단위별로 다양성과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학술진흥을 위한 지원을 하되 개입은 자제해야 하며, 정부는 기존 제도의 장단점을 충분히 성찰한 뒤에 새로운 학술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또, 영어에 치우치지 않고, 모국어와 다양한 외국어가 존중돼야 하며, 업적평가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대학의 사회적 책무가 강화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 평가(동료 평가)를 적극 도입하고, 학문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평가지표 마련을 위해 평가 분권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학과장이나 학장 중심의 평가가 도입돼야 한다는 뜻이다.

질적 평가 감당할 수 있는 학계 변화 필요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 전환하고, 동료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이미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제는 학계 내부에서조차도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다는 것이고, 질적 평가를 감당해 낼 수 있는 학문 성숙도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일 것이다.

학계 내부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꼽씹어볼만 했다. 김혜숙 한국철학회장은 “교수들은 그동안 인문학 대중서를 쓰는 일을 굉장히 꺼려 왔고,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제는 이런 부분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김 회장은 “인문학자들 조차도 살아남으려면, 논문을 쓰고 학술서를 써야 했다. 대중의 요구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학문적 요구와 대중의 요구가 괴리돼 있다. 서로 빈곤한 처지에 놓였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대중의 수도 늘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인문학 강좌를 찾고 있는 현실”이라며 “대중서를 쓴다고 해서 옛날 대중서와는 질적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량 평가에서 정성 평가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일도 쉽지는 않다. 그래서 단계적인 접근법이 나왔다. 각 대학이 논문 중심의 정량평가 방식의 평가시스템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한순간에 정량 평가 방식을 없애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성 평가를 확대해 가는 단계적 방안이 제시된 것이다. 교육, 연구에 비해 평가 비중이 낮은 사회봉사 영역부터 정성 평가를 시작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하우를 쌓아 교육과 연구 정성 평가로 확대해 나가는 전략이다.

김봉중 전남대 교수(사학과)는 “최근 미국 대학은 봉사를 사회적 책임영역으로 강조하고 있다”며 “한국은 교내에서 수당을 받는 보직은 봉사로 인정하지만, 외국인 학생 멘토 역할은 시간을 더 뺏기지만, 봉사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부분은 학과 내에서 정성 평가를 해서 그 교수의 학내 기여도를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 국립대 봉사 영역은 10%로 형식적인 게 많다. 봉사 영역을 학과 내에서 정성 평가 할 때 반영 점수가 낮아 반발이 적을 수 있다. 시험적으로 봉사영역부터 정성평가를 시작하자”라고 밝혔다.
최근 역사학계와 교수단체가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논란을 빚고 있는 ‘학술지 평가 제도 개선방안’과 관련해서도 국가 주도에서 학회가 주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여건종 숙명여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과도기적으로 국가가 행정을 맡고 학회와 연구소 등 민간쪽에서 주도적으로 평가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학계 사정을 잘 아는 학회나 연구소가 평가를 주도하게 되면, 정성 평가를 반영해 질적 평가 지표를 더 용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생적으로 밑으로부터 질적 평가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 너무 수동적…공동 대안 모색해야"

평가 방법을 개선하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연구재단에서 경영관리본부장을 지낸 이종욱 신구대학 교수(글로벌경영학과)는 “정량 평가냐, 정성평가 등 평가방식의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학문발전을 위해 국가가 꼭 해야 할 일과 학계가 해야 할 일부터 논의하는 근본적인 담론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학술지 평가 문제도 국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학계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따져야 한다”며 “그동안 학계는 정부의 연구비 지원관리방식에 따라 너무 수동적으로 돼 버렸다”라고 말했다.

대학종합평가와 학과평가를 담당해 왔던 대교협의 한 평가 전문가는 “평가시스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구체적으로 학문 특성과 사회적 기여, 인간가치 실현 등 평가에 대한 개념 설정을 다시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논문 편수를 따지는 양적 평가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질적인 평가를 위해 동료평가가 제시되지만 온정주의와 편파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질적 평가를 위한 정성평가는 너무 주관적으로 흘러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획일적인 양적 평가를 지양하고, 질적 평가와 균형ㆍ조화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질적 평가의 주관성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김혜숙 한국철학회장도 “인문학 분야에서 ‘질적’ 평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화된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질적 평가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정량적 방식으로 포착되지 않는 논문의 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논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신정근 한국철학회 연구위원장(성균관대)은 “대학평가는 이제 국내 순위를 넘어 세계대학에서의 순위에 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는 대학평가가 대학들의 선의의 경쟁과 전반적인 교육여건 발전에 미친 장점이다. 현재는 이런 대학평가의 긍정적인 취지 안에서, 한 단계 도약을 위해 학문분야별 평가지표의 개선을 검토해 볼 때”라고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학문공동체도 내부적으로 공동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속적인 논의를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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