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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학술지’에 재정지원 집중 … 교수들 “균형있는 지원하라”
‘영어 학술지’에 재정지원 집중 … 교수들 “균형있는 지원하라”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11.01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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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의 ‘우수 학술지 지원정책’에 잇따른 교수사회 비판성명

정부의 학술지 지원정책에 대한 교수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6일 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역사학자들이 “왜곡된 ‘우수 학술지’ 지원정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데 이어, 30일에는 교수 3단체(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와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까지 가세해 “학술지 지원정책 개편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교과부는 지난해 연말, “형식적인 평가 중심으로 운영돼 온 ‘등재지 지원정책’이 등재(후보)지의 과다한 양산을 초래했고, 일부 연구자의 연구업적 부풀리기 등 일탈 행위가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했다”며 ‘학술지 등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등재(후보)지를 발행하는 학술단체 1천 여 곳에 소액의 학술지 발행 경비를 골고루 지원하다보니 자생능력이 없는 소규모 학회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 올해부터 우수 학술지 10개, 2013년 15개, 2014년 20개 내외를 선정, 학술지당 약 1억 5천만원씩 5년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교수 3단체 등은 그러나 교과부가 제기한 학술지 등재제도의 문제는 “지난 1998년에 이 제도를 도입한 교과부가 자초해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술지의 ‘양적 평가’가 낳은 폐단이다. 이들이 꼽은 교과부 학술지 평가의 문제점은 △연구의 질적 측면보다 양적인 평가에 치중 △기초학문이 처한 상황을 무시하고 학문과 연구를 실용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한 반학문적 사고 △평가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 배제 △게재율·탈락율·편집위원 구성·학술지 발간 시기 등 단순 양적 측면만 고려한 일면성 △학계의 자율적 평가 배제 등이다.

교과부는 ‘세계 수준의 학술지’로 유인하려는 목적으로 몇 개의 ‘우수 학술지’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안을 내놨지만 교수들은 정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다. 소수의 학술지에 정부 지원을 몰아주기보다 ‘균형있는 지원’이 다양한 학문을 고르게 육성할 수 있다는 측면이다. 교수들은 “공공적 지원이 없으면 학문 재생산이 어려운 기초학문영역의 학술지를 지원하고, 어려운 여건에서 주체적인 ‘한국적 학문’을 천착하는 분야에 균형 잡힌 지원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우수 학술지’의 조건으로 교과부는 학술지를 영어로 발간하고, 외국 논문이 게재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또한 교수들은 ‘영어 논문 게재’와 같은 기준으로 소수의 집중지원전략으로 학술지 지원정책을 전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학문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맹목성은 물론, 영어 중심의 학문이라는 반학문적이며 학문 제국주의적 사고에 빠진 정책이다. 이런 ‘맹목적인 정책’을 위해 국가의 지원을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기초학문과 전문 학문을 고사시킬 것이다.”

교과부는 “학술지 평가제도를 학계의 자율평가로 전환하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앞으로 3년의 이행기간을 거쳐 오는 2014년 12월에 폐지할 것”이라며 “다만 소외·신생·지역 학문분야의 학술지에 대한 지원규모와 방법 등은 “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2013년 중에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교수 3단우수 학술지 지원정책 비판 성명 전문

학술지 지원정책 개편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를 촉구한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2011년 12월 7일자 보도 자료를 통해 ‘학술지 등재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제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개편안은 현재의 그동안 등재지 지원정책이 “형식적인 평가 중심으로 운영돼 국내 학문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고, 등재(후보)지의 과다한 양산을 초래했고, 평가 후 사후관리가 허술해 일부 연구자의 연구업적 부풀리기 등 일탈 행위가 일어나는 원인이 됐다”고 평가하면서, “국내 학문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현재의 학술지 지원을 소수의 학술지 지원에 집중하겠다고 천명했다. 그 구체적 수치로, 2012년에 10개, 2013년에 15개, 2014년에 20개 내외의 우수학술지를 선정해 학술지당 약 1억 5천만원씩 5년간 지원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지원정책 전환이 이명박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방향, 즉 세계적 경쟁력이 갖는 단위를 육성한다는 명분하에 소수의 단위를 집중지원하고 그 바람에 정부가 해야 할 정당한 공익적 기능은 망각되고 여러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도록 만들었던 그러한 정책방향이 학술지지원정책에서도 관철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이번 학술지원정책 변화가 ‘학술지의 양극화’를 낳고, 정당하게 지원받아야 할 기초학문 분야, 인문학 분야, 주체적인 한국학 영역 등이 소외되고 궁극적으로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식생산이 구조화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일부 학술지에만 지원을 집중하려는 새로운 학술지 지원정책을 중단하고, 원점에서부터 학술지 지원정책을 재검토할 논의단위를 만들기를 촉구하고자 한다.

학술지 지원정책 출발 당시의 문제점

우리는 먼저 지난 1998년에 시작된 학술지 등재제도로부터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새로운 학술지 등재정책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학문 이해에서 출발했다. 교수 임용이나 대학평가, 연구지원 등과 관련해 연구업적을 평가하는 일은 필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이 제도는 학문과 연구에 대한 몰이해로 말미암아 많은 역기능을 초래했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학술지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연구의 질적 측면보다 단순히 양적인 평가에 치중하게 만든 점, 기초학문이 처한 상황을 철저히 무시하고 학문과 연구를 다만 실용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반학문적 사고, 평가과정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를 배제하도록 만든 점, 게재율이나 탈락률, 편집위원의 구성, 학술지 발간 시기 등 평가과정에서 단순히 양적인 측면만을 고려하는 일면성, 학계의 자율적 평가를 배제한 점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처럼 출발 당시에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이러한 역기능과 일면성으로 인해 교과부조차도 이 제도를 “형식적인 평가 중심으로 운영돼 국내 학문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도록 만들었다. 교과부가 주장하는 “등재(후보)지의 과다한 양산을 초래했고, 평가 후 사후관리가 허술해 일부 연구자의 연구업적 부풀리기 등 일탈 행위가 일어난 원인”은 교과부의 잘못된 학술지 평가제도와 통제위주의 정책에 있는 것이지 연구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과부는 그 원인을 피해자인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에 돌리면서 초점을 흐리고 있다. 그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국내 학문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허상에 빠져, 반드시 필요한 국가적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학술지 지원정책은 이전 보다 더욱 높은 수준으로 일부 학술지에 대한 지원을 집중하고자 하고 있다.

즉 교과부는 학술지를 세계화하기 위해 “2012년에 10개, 2013년에 15개, 2014년에 20개 내외의 우수학술지를 선정해 학술지당 약 1억5천만원씩 5년간 지원”하려고 한다. 이 경우 그 외의 기초학문과 전문학술지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고사되기에 이를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우리는 비록 학술지 지원정책의 출발 당시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래도 다양한 학술지들이 번성하는 데 기여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 이제 그것을 ‘난립’이라는 이름으로 소수 집중육성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은 타당한 정책이 전혀 아니다.

학술지지원정책이 변화해야 할 방향

우리는 한국연구재단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학계의 자율적인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공공적 지원을 없으면 학문재생산이 어려운 기초학문영역의 학술지를 지원하고 어려운 여건에서 주체적인 한국적 학문을 천착하는 분야 등에 균형 잡힌 지원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이 기획하는 학술지원정책은 소수의 국제경쟁력 갖는 저널을 집중지원하는 식이다.

이는 사실 1960·70년대 초기산업화 시기의 천박한 토양에서 나타났던 정책을 2010년대 그것도 세계 10대 무역대국의 위치에 오른 한국의 학문정책으로 관철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들이 균형있게 발전해야만이 이른바 세계적 경쟁력이라는 것도 가능한 조건, 그리고 영어로 쓰여졌다는 이름하에 우대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적 독창성에서 출발해 영어권 학문세계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지식생산을 해야 하는 조건을 고려할 때, 이는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식의 발상이 ‘영어공용화’론 같은 것으로 표현됐던 것을 기억한다. 오늘날 한류, K-pop, 싸이 열풍 등은 영어숭배론적 정책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정책당국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비록 초기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학술지 지원정책을 한 요인으로 해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난립’이라고 할 정도로 학술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지원정책은-지원과정의 ‘엄격한 평가’ 노력을 병행하면서도 -이러한 다양성과 다원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지원하려는 방향으로 지속돼야 한다.- 다양성 속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학술지도 탄생하는 것이다. 이를 거의 억지 수준에 가까운 ‘영어 논문 게재’ 같은 엉터리 기준에 의해서 소수의 집중지원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은 타당한 방향이 전혀 아니다.

다양한 학술지의 자생적 발전을 가능케 하는 정책

그러나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정책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학술지 지원정책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시행된 형식적인 공청회에서, 연구재단 관계자는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를 위해” 학술지를 영어로 발간해야하며, 외국 논문이 게재돼야 한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학문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맹목성은 물론, 영어 중심의 학문이라는 반학문적이며 학문제국주의적 사고에 빠진 정책에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맹목적인 정책을 위해 국가의 지원을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기초학문과 전문 학문을 죽음에 처하게 만들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을 통해 교과부는 “선진화된 학계의 자율적인 학문 평가 기반이 조성됨과 동시에 국내 연구 역량이 강화돼 우리나라가 학술연구의 중심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잘못된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교과부는 이처럼 제한된 자원을 일부에게 집중지원하는 정책이 초래할 불필요한 갈등과, 일방적 지원이 초래할 파탄적 결과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또한 이를 통해 고사될 기초학문 및 소수의 전문 학문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제도는 결국 학문과 연구 전체를 고사시킬 것이다. 이러한 학문이 죽어가면, 한 국가의 미래 역시 갈수록 위기에 빠지게 되고, 결국 다른 국가의 이론과 기술을 수입하는 3류 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의 학문계는 열악한 환경과 잘못된 대학 정책으로 인해 고사 직전에 놓여있다. 수많은 박사급 전문 인력이 생계를 걱정해야할 수준으로 몰려있으며, 대학에 전임으로 자리한 연구자조차 각종 평가와 잘못된 대학정책으로 연구에 몰두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연구가 단기적 요구에 빠져 전문성을 상실하는 현실, 교수는 있으되 연구자는 없는 상황, 기술은 있으나 학문은 죽어가는 상황에 빠진 현실은 대부분 교과부가 앞장서 조장한 데 따른 결과이다.

교과부의 정책은 결국 연구에 족쇄를 채워 학문은 물론, 전문적 지식조차 고사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 교과부의 잘못된 학문 평가제도와 학술지 정책전환 정책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 다양한 학문발전이 가능하게 학술지 지원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학술지 평가제도가 이러한 역기능과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데에는 대학과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의 잘못과 침묵도 큰 원인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학술지 관계자 스스로 자신의 학술지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수치조작에 가담하거나, 일방적으로 잘못된 제도에 편승해 자신들의 안위만을 찾을 것은 크게 반성할 일이다.

지금이라도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잘못된 제도를 거부하고, 학문 연구 본연의 진정성과 학문적 양식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해 학문 본연의 자리가 하루빨리 회복돼 올바른 학술 연구가 이루어지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민교협과 교수학술단체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며, 학문 연구에 필요한 본연의 사명과 의무를 다할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일부 학술지에만 지원을 집중하려는 새로운 학술지 지원정책을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2. 원점에서부터 학술지 지원정책을 재검토할 논의단위를 만들기를 촉구한다.
3. 학술지 지원의 진정한 방향은 공공적 지원을 없으면 학문재생산이 어려운 기초학문분야나 어려운 여건에서 주체적인 한국적 학문을 천착하는 분야, 신생 학문 분야 등 오히려 ‘학술지 시장의 양극화’를 보완하고 균형 잡힌 학문발전을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기를 촉구한다.


2012. 10. 30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문화사회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비판사회학회, 사월혁명회, 시민환경연구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제주43연구소, 한국공간환경학회,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정치연구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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