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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實·不實이 국가 흥망성쇠 결정한다
교육의 實·不實이 국가 흥망성쇠 결정한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0.30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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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_ 『한국교육의 신화』 정범모 지음┃학지사┃2012.10

원로 교육학자이자 한국 교육학계의 한 산맥인 정범모 한림대 명예석좌교수가 ‘한국교육’을 비판한 『한국교육의 신화』를 상재했다. 평소 한국교육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정범모 교수가 주변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교육의 오늘이 어떻든 간에 거기에 어떤 부족함이나 결함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찾지 않는다면 보다 나은 내일을 설계할 수는 없다”는 평소 신념을 강조한 결과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잘 엿볼 수 있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한국교육의 직접 당사자인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학교가 좋으냐?’ 또는 ‘한국의 교육이 잘 돼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과연 그 답이 피상적인 국제 평판처럼 긍정적일까? 아니면 도리어 한숨부터 내쉴까? 한국교육이 잘 돼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은 한국교육을 총괄하고 있는 교육행정 당국자나 지나친 자기도취에 젖어 있는 사람들 이외엔 별로 없을 것이다.” 왜 이렇게 저자는 접근한 것일까. 그것은 한국교육의 겉모양이 아니라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견고한, 고질적인 미신이 도사려 있다.

교육을 둘러싼 오래된 미신 “한국교육에는 긴 세월을 두고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다. 그것이 그렇게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은 애당초 어떤 고질적인 신화나 미신과 같은 잘못된 생각 때문일 것이라는 게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가 보기에 교육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바로 이런 ‘미신들’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책 제목에 ‘신화’를 고집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실 저자의 한국교육 비판은 오랫동안 한국 교육학계를 형성해왔던 자기 자신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교육을 비판한다는 것은 필연 그 관련자 모두에 대한 비판이 된다. 행정가, 교사, 부모, 언론인 나아가 사회 전반에 재고와 반성을 바라는 비판일 수밖에 없다. 그런 뜻에서는 나도 한국교육의 한 관련자였기 때문에 이 책의 비판조항들은 나 자신의 반성 또한 요구하는 자성의 참회록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원로 교육학자의 뜨거운 ‘자성의 참회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저자는 여덟가지 문제를 겨냥한다. 고시 만능으로 흐른 교육 풍토, 엘리트만 키워내는 학교 교육, 공인 교육이 없는 雜食 교육, 기숙사도 없고 교양교육을 홀대하는 대학교육, 진정한 학문적 성취가 미흡한 학계, 관주도 교육개혁과 비대한 사교육, 창의력과 인성을 함양하는 전인교육의 부재, 철학이 없는 한국교육의 방향성 등이 그것이다.

 

한국의 대학이 학문적 생기와 생산을

드높이려면, 학자의 학문 외적 활동은

자제돼야 하고, 동시에 학자의

학문석 성취 평가에서도 학문 외적 활동의

‘업적’은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考試 왕국이 된 한국사회라는 지적에 이의를 달 이들은 없을 것이다. ‘고시라는 폭군이 지배하는 왕국’, ‘한방’ 단판 승부에 의해 사람들의 인생행로가 뒤바뀌는 대한민국. 저자의 비판은 가장 먼저 이 ‘고시 만능’을 겨냥한다. “한 두 시간의 필답고사로 인간의 긴요한 특성을 다 판명할 수 있다는 고시 만능의 관념은 한국 사회 그리고 한국교육의 신화이자 미신이다.” 그의 말대로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전인적 평가’가 결여돼 있다. 지적·정적·도덕적 특징을 보장하는 ‘전인평가’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가 엘리트 교육을 우려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나는 고스란히 우등생·수재만 모여 있는 엘리트 학교는 실은 이 사회에 정말 필요한 지도층의 자질은 기르지 못하고 헛된, 때로는 오만한 選民意識을 조장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각계 지도자는 사회의 다양성을 넓게 그리고 깊게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야 한다. 지도층이 될 인물은 부자의 사정도, 가난한 사람의 사정도 이해하고, 머리 좋은 사람과 머리 나쁜 사람의 사정도 알고, 기업가와 노동자, 백화점과 시장바닥, 군인, 공무원, 과학자 등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의 문제와 고민, 희망과 포부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야 한다.” 공부 못한다고 바보라고 내치지 말라는 元老의 목소리는 이렇게 점점 뜨거워진다. 나약을 부추기는 풍토, 철학이 없는 교육 학부모들도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한국의 젊은 부모들에게 크게 충고한다.

“삶에 문제·고민·시련이 없어야 하고, 그것이 정상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따라서 많은 한국의 젊은 부모가 믿고 있는 그들의 ‘무좌절의 육아철학’은 하나의 환상이고 신화다. 필요한 것은 필연 연달아 맞닥뜨리게 될 문제와 고난을 이겨낼 지혜·능력·용기다.” 이렇게 말하는 저자는 한국의 젊은 부모들이 ‘나약의 풍토’에 머물러 있다고 우려한다. 불행, 비극, 고난에 의연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길러낼 수 있는 풍토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자의 비판은 동료 학자들에게도 향해 있다. “한국의 대학이 학문적 생기와 생산을 드높이려면, 학자의 학문외적 활동은 자제돼야 하고, 동시에 학자의 학문적 성취 평가에서도 학문 외적 활동의 ‘업적’은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장관·총장·학장 등 행정직에 ‘출세’한 경력을 학자의 업적으로 여기면서 ‘찬양’하는 풍습도 저자는 꼬집고 있다. 학문 외적 활동이란 이유에서다. 올해 여든여덟살. 저자는 그런데 미련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내일의 이 나라가 내 아들딸 손자손녀들이 평화롭고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여야 할텐데 하는 염려와 염원”, 더 한층 넉넉하고 자유롭고 화목한 나라를 그리는 염원이다. 한국교육이 그런 나라로 가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묻어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교육은 ‘유능하고 슬기로운’ 사람들을 길러 내는 일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 교육의 실·부실은 국가문제 해결력의 실·부실로 이어지고, 그 해결력의 실·부실은 국가의 흥망성쇠로 이어진다.” 그가 한국교육의 신화, 고질적인 미신들을 匡正하려는 것은 결국 이런 의도에서였다. 원로의 쓴 소리에 한국사회가 좀 더 깊이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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