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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화열 美 모라비안대 교수
[인터뷰] 정화열 美 모라비안대 교수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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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0 15:51:55
지난 17일 이른 아침 서울 시내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정화열 美 모라비안대 교수(정치학)를 만났다. 그는 에모리 대학에서 비교 정치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모라비안 대학의 교수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는 ‘몸의 정치’(민음사, 1999)가 소개된 바 있다. “이제는 한국말이 잘 안돼요”라고 말하는 정 교수와 우리말과 영어를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언론학대회의 발표를 겸해 한국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고자 잠깐 들렀다는 정화열 교수와의 만남을 기록한다.

정 교수는 한자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한자에 매료되기 시작했다면서 말이다. “19세기에 하버드대학 교수 중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페넬로사 교수가 일본에서 헤겔과 스펜서를 강의하면서 한자에 관한 작은 책을 썼습니다. 한자가 어떻게 생산됐고 변화하는가에 관한 짧은 에세이였습니다. 마셜 맥루한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나 역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왜 한자에 관심을 가졌냐고 묻기도 전에 한 글자씩 써가며 설명하기 시작한다. 王자는 하늘과 사람과 땅을 의미하는 세 축과 그 사이에 서있는 규칙으로서의 왕을 의미한다고. 그런 까닭에 동양에서는 왕을 정치가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정한 규칙 중 하나로 이해한다고 설명한다. 왕과 눈과 귀를 다 포함하는 聖자를 쓰면서 성스러움이 왕보다 포괄적인 개념임을 설명했다. “한자를 보면 언어가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 뚜렸하게 보입니다. 저는 이 한자에 매료됐습니다. 규칙을 가지고 조합하는 것이 마치 제임스 조이스의 언어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예전에 한자를 배울 때는 그저 암기하기만 했는데, 그 책을 보니 새롭게 한자가 보이더군요.”

그가 새로이 한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동양 사상으로 회귀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번 세계언론학대회에 들고 온 글도 문명간의 갈등이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 ‘맥루한이 남긴 것(The Posthumous Mcluhan)’. 동양 사상이 자연과 사람을 구별하는 이분법이 아니라는 것은 흔히 아는 사실이다. 차이를 부정하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고 공생하며 살아가는 세계관. 이런 동양적 세계관은 그가 관심을 가진 생태윤리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인으로서 서양에서 학문을 하고 다시 동양 사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조금은 아이러니컬하다.

정교수가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을 살펴볼 때 이런 결과는 그리 낯설지 않다. “알다시피 서구 계몽주의로부터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가 시작됐습니다. 계몽주의는 시각 중심주의지요.” 그는 시각 중심주의를 자아중심적이고 남성중심주의적인 개념으로 말했다. 일방적인 폭력성까지 느껴진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적인 개념으로 여성성을 제안한다. 나누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고, 보듬어 사는 여성성이 그에게는 문제를 푸는 열쇠인 셈이다. 비유럽중심주의, 자연, 몸 그리고 여성. 이것이 모두 영어 대명사 ‘she’로 받는 것들이라며 정 교수는 “저는 페미니즘이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 말한다. 시각 중심에서 대한 대안으로 청각중심주의를, 이와 관련하여 수평적 사고와 여성주의를,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 관계를 강조하는 사상이 이해가 된다. 환경 사랑과 여성주의, 그리고 몸의 담론을 하나로 결합하는 그의 몸 정치학(Body Politic)이 또 다시 새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정 교수는 한국 교육이 조금은 폐쇄적인 것 같다며 “내가 만약 교육부 장관이라면…”하고 장난스럽게 말은 꺼낸다. 서울로만 집중돼있는 대학 교육과 다른 학교 출신을 좀처럼 임용하지 않는 관례 등을 문제삼는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교육에서부터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할텐데 현실은 이에 못 미쳐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저는 유럽중심주의를 반대해요. 유럽은 아시아의 작은 부분일 뿐인데 세계를 포괄하려는 것은 오만입니다. 아니 어떤 식으로든 자기 중심적인 사고는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잠시 생각한 후 또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민족이든 자기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이든 인도든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화의 가능성을 믿는 듯 했다. 어떻게 세계화가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세계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열린 마음(open mind)입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많습니다.”라 답한다. 그는 갑자기 기자에게 “흑인과 결혼할 준비가 돼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난처한 표정을 하는 기자에게 “세계화니 열린 마음이니 하는 것은 사실은 삶의 작은 부분부터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의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과의 결합을 두려워한다면 세계화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계화는 이론적인 부분이 아니라 생활 영역에서 생기는 겁니다.”

정 교수를 만나면서 기자의 머리 속에는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 집에 오니 파랑새가 있더라는 이야기처럼, 해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했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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