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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로 가는 먼 여정 … 흑·백인 전용화장실중 어디로?
켄터키로 가는 먼 여정 … 흑·백인 전용화장실중 어디로?
  • 김일평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 승인 2012.10.19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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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 교수 회고록(18) 미국유학준비 4

나는 옐로우(Yellow) 택시를 잡아타고 시애틀 시내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한국에서 어느 친구가 미국에 가면 반드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한번 타 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개가 뛰는 그림이 그려있는 버스인데 참으로 멋지고 또 매우 편리하다는 것이다(그레이하운드 버스에 관한 웃기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미국으로 여행가는 한국 사람에게 미국에 가면 개 그림을 붙인 버스가 있는데 꼭 한번 타보라고 했다. 미국에 도착한 그 친구는 ‘개그린 버스’ 정거장을 찾았다. 미국인에게 물어보았으나 그런 버스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보지 못했다는 웃기는 이야기다).

미국의 서북부에 있는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나의 유학 목적지인 중부의 켄터키 주까지 여행 하는데 비행기를 타려면 10시간이 걸리고, 기차를 타면 일주일 걸리는 거리였다. 버스를 타도 일주일간 걸리지만 기차표의 가격은 버스표의 5배가 된다는 것이다. 유학생 신분이라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50달러면 버스를 타고 켄터키 주까지 갈 수 있었다. 교통비를 절약해서 학비에 보태 쓴다는 생각이었다.

버스는 밤낮으로 매일 달렸다. 창가에 앉아서 낮에는 밖의 풍경을 즐기며 밤에는 잠을 잤다. 나는 버스 안에서 한국을 떠난 후 미국까지 온 경로를 짚어 보았다. 2주일 동안 태평양을 배로 건너온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항공편보다 선편이 여비가 반액에 불과했기 때문에 학비에 보태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속셈도 있었다. 그리고 동료유학생들과 사귀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며 서로 알고 가깝게 지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던 사이가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매우 친근하게 바뀌었다. 선장과 고급승무원이 사용하는 식당에서 식사도 함께 하면서 서로 잘 알게 된 결과 우리는 각자가 공부하는 대학교의 주소를 서로 나누고 편지도 종종 나누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노선, 필자는 1953년 10월 5일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시애틀에서 켄터키주 랙싱턴에 10월 10일에 도착했다.
버스는 10시간의 질주 끝에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내로 들어섰다. 이 도시는 몰몬교의 대궁전인 ‘테버내클’이 있는 몰몬교회 본산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물론 2002년에는 동계 올림픽도 이곳에서 개최됐다. 저녁 7시가 됐으니 이곳에서 저녁식사 시간으로 30분간 정차할 것이라면서 식사를 하라고 운전기사가 말했다. 다음 도시는 아침 7시에 정차할 것이며 12시간동안 잠잘 수 있는 시간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는 버스정류장 식당으로 내려갔다. 선박 속에서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하고 10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맛있는 저녁식사에 구미가 당겼다.

웨이트리스(식탁 봉사원)가 식단(Menu)을 갖다 주었다. 한번 훑어보니 스테이크가 먹음직하고 또 기름에 튀긴 치킨이 먹고 싶었다. 나는 배가 매우 고팠기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았지만 미국식 메뉴를 잘 알 수 없었다. 나는 먹고 싶은 스테이크와 프라이드 치킨 두 조각을 주문했다. 웨이트리스는 좀 이상한 눈치로 나를 쳐다보았으나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오더(주문)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 갖고 온 음식은 식탁을 가득히 채워놓을 정도로 여러 가지 반찬이 중복돼 나왔다. 고기 두 가지에 이렇게 많은 채소접시가 나오다니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2인분의 식사를 홀로 먹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해지고 나 스스로 웃음이 나오며 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미국의 식탁문화와 메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10월 5일 시애틀에 도착해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린 후 내가 탄 버스는 드디어 켄터키 주의 렉싱턴( Lexington)에 도착했다. 1953년 10월 10일 오전 9시였다.

켄터키주에서 태어난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
켄터키 주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이 출생한 곳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 AFKN 라디오에서 유행했던 「나의 옛날 켄터키 집(My Old Kentucky Home)」이란 노래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켄터키 주는 넓고 푸른 목장이 광야와 같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경마용 말을 많이 기르는 아름다운 곳이다. 매년 열리는 켄터키 더비라는 경마대회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켄터키 주는 1792년에 처음으로 미합중국 연방에 15번째로 가입했으며 1850년대 까지도 서방의 개척지로 알려져 있다.

렉싱턴 버스정류장에 내렸을 때 나는 매우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공부할 대학 캠퍼스가 있는 윌모어(Wilmore)라는 대학촌까지 가는 지방의 통근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버스 정류장 대합실이 두 개로 나누어져 있지 않은가. 흑인들이 사용하는 대합실과 백인이 사용하는 대합실이 따로 있었다. 화장실도 흑인용과 백인용이 따로 있었다. 나는 유색인종이기는 한데 어디로 갈 것인지 당황해서 서 있었다. 내가 타고 온 버스 운전기사는 저기 백인용 대합실로 가라고 말했다. 여기는 미국의 메이슨 딕슨 라인(Mason-Dixon Line)의 남부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아직도 심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1860년 일어난 미국의 남북전쟁은 흑인노예의 해방문제 때문이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해방이라는 정책으로 흑인들과 백인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흑백 동등권을 선포한 유명한 대통령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국선교사의 회화연습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리고 연락장교로 있을 때 미 8군사령부의 장교식당에서 종종 식사대접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올 때 선장과 고급 승무원의 식당에서 2주일간 식사를 함께 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군대 식당이나 산장의 식당에서 정해주는 메뉴에 따라서 식사를 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해서 식사를 주문한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미국대륙의 민간사회의 일반식당과 군대식당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말이 있는 것과 같이 식당 종업원에게 좀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식단에 대하여 좀 더 확인한 후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가장 먼저 받은 나의 교훈이 됐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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