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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사전 편찬에 대한 자각
우리말 사전 편찬에 대한 자각
  • 교수신문
  • 승인 2012.10.1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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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수의 국어사전이야기_ 국어사전 100년을 돌아보다<2>

“조선 사람들이 조선말을 공부한 일이 없는 고로 쓰기를 규칙 없이들 하니까 대단히 모호하고 착란 나는 일이 많이 있으되 만일 말을 공부를 하여 국문으로 옥편을 만들어 놓게 되면 그 옥편을 가지고 사람마다 공부를 하여 전일한 규모가 국중에 생길 터이니 우리는 바라건대 학부에서 이런 옥편을 하나를 만들어 조선 사람들이 자기 나라 글을 바로 쓰게 하여 주는 것이 사업일 듯 하더라.” (<독립신문>, 1897. 5. 27. ‘잡보’에서. 이 글은, 윤치호가 신문사에 보내온 ‘ㅏ’와 ‘ 、’ 적기를 일정하게 작정하자는 글을 게재하고, 그에 대한 신문사의 의견을 실은 기사의 끝부분에 나오는 글이다.) “조선말로 문법책을 정밀하게 만들어서 남녀간에 글을 볼 때에도 그 글의 뜻을 분명히 알아보고 지을 때에도 법식에 맞고 남이 알아보기에 쉽고 문리와 경계가 밝게 짓도록 가르쳐야 하겠고 또는 불가불 국문으로 옥편을 만들어야 할지라.”( <독립신문>, 1897. 9. 25. 주상호, 「국문론」에서. 이 글은 위 날짜의 논설란(오늘날의 사설란)에 “주상호 씨가 국문론을 지어 신문사에 보내었기에 좌에 기재하노라” 하고 논설 대신 실은 글의 한 부분이다.

‘주상호’는 ‘주시경’의 다른 이름이다.) 위 두 글은 우리말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문법책과 옥편 곧 사전의 편찬이 절실함을 밝힌 글이다. 이들보다는 좀 나중이긴 하지만 이광수(1892~1950)는 「상해 기행」(1914년)에서. 당시 우리말로 된 사전이 없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또 놀란 것은 번역과 사전 편찬의 사업이라. 대개 어떤 민족의 문명의 초기는 외국 서적의 번역과 사전의 편찬으로 비롯하나니 ……(중략)…… 서양인의 손을 빌어 겨우 '한영자전' 한 권을 가지고 전세계가 들떠드는 톨스토이, 오이켄, 베르그송이며, 비행기, 무선전신에 관한 사오백 글도 못 가진 한국인 된 나는 남모르게 찬땀을 흘리었나이다.” 일제 강점기에 뜻있는 학자와 인사들 중에는 우리 겨레가 갱생할 지름길이 문화의 향상과 보급이라는 것을 깨닫고, 문화의 기초가 되는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급선무로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이를 실현할 최선의 방책이 바로 사전 편찬이라는 데에 뜻을 모아, 1929년 10월 31일(음력 9월 29일), 각계 유지 108명이 조선어 사전 편찬회를 조직했다. 노산 이은상(1903~1982)이 썼다고 전하는 조선어 사전 편찬회 취지서에서 당시의 그러한 뜻을 읽을 수 있다(이 취지서를 이은상이 지었다는 것은 다음 글에서 확인했음.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를 조직하여 有志하는 인사 105 명을 발기인으로 하고, 취지서를 노산 이은상이 지어서 발회식을 하였습니다.” 「좌담: 국어 연구의 어제와 오늘」(이희승 말씀), <국어생활>, 1985. 겨울제3호, 11쪽. 이 글에는 발기인을 ‘105명’이라 했다).

문화의 기초를 세우는 사전 편찬 조선어 사전 편찬회 취지서 “인류의 행복은 문화의 향상을 따라 증진되는 것이요, 문화의 발전은 언어 및 문자의 합리적 정리와 통일을 말미암아 촉성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어문의 정리와 통일은 제반 문화의 기초를 이루며, 또 인류 행복의 원천이 되는 바이다. (중략) 그러하므로 금일 언어를 소유하고 문화를 소유한 민족으로서는 사전을 가지지 않은 민족이 없다. 그러하나 우리 조선 민족은 언어를 소유하고, 또 문화를 소유하면서도 금일까지에 아직 사전 한 권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의 언어는 극단으로 문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요, 또 조선 민족의 문화적 생애는 금일과 같은 황폐를 이루게 된 것이다. 조선의 언어는 상술한 것처럼 어음, 어의, 어법의 각 방면으로 표준이 없고 통일이 없음으로 하여 동일한 사람으로 조석이 상이하고 동일한 사실로도 경향이 불일할 뿐 아니라, 또는 어의의 미상한 바이 있어도 이를 질정할 만한 준거가 없기 때문에 의사와 감정은 원만히 소통되고 완전히 이해될 길이 바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문화의 향상과 보급은 막대한 손실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금일 세계적으로 낙오된 조선 민족의 갱생할 첩로는 문화의 향상과 보급을 급무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문화를 촉성하는 방편으로는 문화의 기초가 되는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급속히 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를 실현할 최선의 방책은 사전을 편성함에 있는 것이다. (이하, 줄임)”―훈민정음 반포 제483회 기념일(己巳 9월 28일)에 / 발기인 108인 성명 생략. <한글> 4권 2호(1936년 2월)에서.

100여년 전의 國文 각성이 남긴 것 조선어 사전 편찬회를 조직해 ‘사전 편찬을 꾀한 동기’는 국어의 정리와 통일이 시급한 데 있었다. 사전 편찬을 위해서는 한글 철자법의 정리와 표준말 선정이 선행돼야 했다.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 조선어 학회가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고, 1936년에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한 것이었다. 훈민정음 반포 487년여만의 일이었다. 한자와 한문으로 정치, 교육, 학문 등을 해온 조선의 역사에 비로소 우리말과 글의 기본(표준)이 닦아진 것이다. 국어 낱말을 일정한 자모순으로 배열하고 우리말로 뜻풀이를 하는 범국민적인 사전 편찬이 가능하게 됐다.

우리가 우리말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문법책과 사전의 편찬이 절실함을 깨닫고, 국어의 정리와 통일이 시급함을 깨달은 것은 100여 년 전 일이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국어 국문에 대한 각성이었다. 국어 국문에 대한 각성의 그 출발점에 국어사전 편찬이 있었다. 한편, 서양의 최초 알파벳화와 최초의 활자화 사전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서양에서 알파벳화의 원칙들은 13세기 전까지 발견되지 못했다. 영향력 있는 백과사전인 『카톨리콘(Catholicon)』의 서문에 알파벳 차례에 대한 보기 설명이 있다.

『카톨리콘』은 1460년에 나온 최초의 활자화된 사전이었다(『언어의 과학(The Science of Words)』, 조지 밀러 지음, 강범모 외 옮김, 1998. 51쪽. 「인쇄된 사전, 그것은 어떻게 성장했는가?」중에서). 영국에서는 16~7세기에 이르러 일반인도 성경을 두루 읽고 쓰게 하려는 욕구와 규칙성이 없는 철자법 정리를 위해 영어사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촉진됐다. 로버트 코드리(Robert Cawdrey)는 약 3천개의 낱말을 수록한 가장 최초의 순수 영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알파벳 순으로 된 목록 A Table Alphabetical』을 1604년에 만들었다( 『한국브리태니커』 ‘사전’ 항목에서).

조재수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
우리가 우리말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문법책과 사전의 편찬이 절실함을 이해하고, 국어의 정리와 통일이시급함을 깨달은 것은 100여 년 전 일이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국어 국문에 대한 각성이었다. 국어 국문에 대한 각성의 출발점에 국어사전 편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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