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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망치는 사적감정
정치 망치는 사적감정
  • 김교빈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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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요즘 정치권에는 자식이나 집안 일로 고민에 빠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대통령의 두 아들 일은 이미 지난 일이라 하더라도, 사장도 그래서는 안 될텐데 사장처럼 처신하다 말썽을 빚은 서울시장의 경우도 있다. 또한 신임 국무총리 서리의 집안 일도 아직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기간이 다가오면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아들과 같은 병역비리 문제가 다시 재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춘추전국 시기 한나라 소왕이 술에 취해 마루에서 잠든 일이 있었다. 마침 왕의 모자 관리인이 그 모습을 보고 감기라도 들까 염려하여 옷을 덮어주었다. 얼마 뒤 잠에서 깬 소왕은 옷을 덮어 준 신하가 자신의 모자 관리인인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옷을 덮어 준 신하와 본래 옷 관리를 맡고 있던 신하를 모두 처벌하였다.

어찌 보면 자신을 걱정하여 옷을 덮어 준 신하를 상은 못줄 망정 처벌까지 한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소왕의 조치는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만일 모자 관리인이 취하여 잠든 임금에게 옷을 덮어주었다고 해서 그대로 두거나 상을 준다면, 임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너도나도 앞다투어 무슨 짓이든 밥먹듯이 할 것이고, 그 결과 사사로움에 얽매여 바른 정치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한소왕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모자 관리인이 제멋대로 옷을 만진 월권 행위와 옷 관리인의 태만을 함께 벌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동양 문화권에서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였다. 공은 언제나 열린 공간이며 옳은 일이었지만, 사는 닫힌 공간이고 옳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선인들은 공은 義와 통하고 사는 욕심과 통한다고 보아왔던 것이다. 멸사봉공 같은 표현은 공과 사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논어’에서 공자는 ‘내게 이로울 만한 일을 보면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했고, 또 ‘군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에 밝지만 소인은 이로우냐 해로우냐를 따지는 데 밝다’고 했던 것이다.

최근 장상 총리서리의 임명을 보면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적 공간의 문제들 때문에 부정적인 전임 교수 출신 입각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기우일까.

어렵게 확보된 여성들의 공적 공간을 더 넓히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공이 사보다 먼저였고, 집안보다는 사회와 국가가, 개인보다는 집안이 더 우선하였던 우리의 전통을 잊지 말기 바란다.

김교빈 편집기획위원, 호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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