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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주5일 근무제의 현실화를 위해
[신문로 세평] 주5일 근무제의 현실화를 위해
  • 강수돌 고려대
  • 승인 2002.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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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0 14:39:36
강수돌
고려대·경영학

이제 ‘주5일 근무제’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상 ‘대세’가 된 듯하다. 따지고 보면 지난 40년간 고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앞만 보고 열심히 땀흘렸기에 이제부터라도 좀 인간답게 살자는 욕구가 강하다. 또 정치권으로부터 말로만 듣던 ‘선진국’이란 것도 이제는 실감나는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의지도 강하다. 오로지 가진 자들만이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물론 최근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된 주5일 근무제는 ‘삶의 질 향상을 통한 사회적 효율 향상’이라고 하는 원래 취지로부터 많이 퇴색했다. 그래서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들, 그리고 여성들은 주5일 근무제로부터 혜택을 받기보다 오히려 불이익을 받기 쉽다. 따라서 그 원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어떠한 조건들이 충족돼야 할까 따져보자.

첫째, 주5일 근무제는 노동비용 측면이나 휴가증대 측면을 따지기 이전에 한국 사회에 만연돼 있는 일중독증을 치유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인식이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주5일 근무제를 즐겁게 끌어안을 수 있다. 일중독증이란 한마디로, 사람이 일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사람을 통제하는 병적 상황이다. 또 다른 말로 일중독증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일(성과) 속에서 찾는 것이다. 생각건대 ‘인건비 따먹기’ 식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은 이러한 일중독증을 토대로 성공했고 또 그 과정에서 일중독증을 더 강화했다. 이제 한국 경제는 ‘IMF 사태’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주5일 근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하나의 돌파구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한다.

둘째, 주5일 근무제가 노사정 위원회 합의와 국회에서의 법률 제정을 거쳐 전사회적으로 동시에 실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2002년 7월부터 금융권이나 일부 공공부문에서 분야별 시행에 들어가 버렸으니 현실적으로는 금융권이나 공무원 사회에서나마 ‘모범 모델’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모범 모델을 기반으로 사후적으로나마 전사회적 규제력이 있는 법률이나 제도를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셋째, 주5일 근무제가 실효를 거두려면 한편으로는 효율성이 증대해야 하고 다른 편으로는 근로조건의 저하가 없어야 한다. 특히 기업가들은 손해보는 듯한 부분을 사회적 약자 계층(중소영세,비정규직)에 떠넘겨 보전하거나 더 큰 이익을 얻으려 할 것이기에 자칫 사회적 분열이 강화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나 노동강도 강화가 지나치게 이루어져 주5일 근무로 인한 여가 증대의 효익을 상쇄해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조직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는 우선, 조직 구성원들이 업무 시간에 업무 집중력을 높이도록 해야 하고 나아가 회사는 모든 구성원들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킬 프로그램을 운용해야 한다. 또 조직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임금 등 근로조건의 저하가 없도록 해야 하며 노동유연화나 업무집중도 강화가 조직 구성원들이 합의 가능한 수준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주5일 근무를 하더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소득이 보장돼야 하며 나아가 여가 활동을 하더라도 돈이 들지 않는, 그러면서도 삶의 의미와 보람을 되찾고 삶의 활기를 되찾는 그런 방향으로 여가 활동이 생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노동자와 농민 사이의 생활조합 만들기, 유기농법으로 텃밭 일구기, 노동자 테마 여행, 독서 토론회나 글쓰기 모임, 다른 지역 노조 만나기, 미조직 노동자와 함께 하는 활동, 민중 영화 감상 및 만들기 등이 있을 수 있다.

넷째, 또한 주5일 근무제로 인해 노동자들이 더 많은 여가와 사회 활동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직장과 학교가 동시에 주5일 근무제로 이행하되, 학교 안 가는 날 아이들이 취미 생활이나 특기 활동을 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예컨대 휴무인 토요일날 아이들은 수영이나 축구, 사물놀이,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기타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그것도 비용 부담을 사회적으로 공유함으로써 부모들에게 부담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적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주5일 근무제’를 이야기하면 ‘시기상조’라거나 ‘비용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시기상조론을 말하는 사람들의 함정은 과연 언제가 시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항상 시기상조만 강조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고 만다. 비용상승을 말하는 자들은 노동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삶은 생각지 않은 채 자신의 수익만을 계산한다. 물론 자신은 온전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이들의 온전한 삶은 생각지 않는 것이다. 결국 주5일 근무제란 단순히 일 적게 하고 돈 많이 벌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건강하게’ 살기 위한 첫 걸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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