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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 헌정의 기초 세운 이는 조소앙이다”
“근대 한국 헌정의 기초 세운 이는 조소앙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2.09.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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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_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서희경 지음|창비|2012.8|

 

▲ 저자는 근대 한국의 헌법과 헌정을 가장 깊이 있게 성찰한 인물로 유진오가 아니라 조소앙을 주목하고 있다. 유진오, 조소앙(사진 오른쪽).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5세 때 ‘흑인과 헌법’이라는 연설로 웅변대회에서 입상한 적이 있었다. 뒷날 그는 “나는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만들어졌다는 자명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하여 살아갈 거라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이는 미국 건국자들이 ‘자명한 진리’로 선언한 건국정신이자 헌법의 기본사상이기도 하다. 양심적인 백인들이 킹 목사의 호소를 들을 때마다 정신적 아픔을 느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라마다 국민이 느끼는 헌법의 의미는 다르다. 앞선 나라 시민들은 헌법과 친밀하다. 헌법은 법관들만 보는 딱딱하고 어려운 규칙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시민윤리이자 내 마음 속에 뿌리내린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들의 정치적 삶도 성숙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에게 헌법은 아직 멀게 느껴진다. 시민의 일상적 삶보다는 국가의 크고 중요한 문제에만 관계된 원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가 국민과 먼 것이기도 했고, 또 우리 헌법이 지나온 길을 잘 모르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책은 우리 헌법의 기원과 탄생, 지난날을 탐구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도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정치가 한 차원 높게 성숙하려면 헌법의 의미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고, 국민에게 친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치가 단순한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찰의 대상이 됐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역사와 정치 속에서 헌법 이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법조문 중심의 기존 헌법 연구와 달리, 헌법을 구체적인 역사와 정치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은 이론적 산물이기에 앞서 역사 현장에서 탄생하는 것이고, 고도의 정치적 행위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너무 당연한 전제지만, 그동안의 헌법 연구는 이와 달랐다. 이 책은 역사학, 정치학, 법학을 융합하는 학제적 연구를 통해 기존 연구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 책의 두 번째 특징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우리 헌법의 자생적 뿌리를 찾고자 하는 점이다. 이것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동안 한국 학계는 우리 헌법이 밖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보았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 체제를 택한 것도 모두 해방 후 진주한 미국 영향이라고 보는 게 보편적 인식이었다. 필자는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이자 政體인 ‘민주공화’의 기원을 1898년 만민공동회에서 찾고, 이후 식민지기와 해방공간에서 간단없이 지속된 한국 헌정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만민공동회가 기존의 민란과 다른 점은 새로운 정치적 구상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민공동회에서는 백성이 民會를 구성해 ‘헌의6조’를 의결하고, 왕을 직접 면담했다. 백성이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생각한 것은 조선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만민공동회를 한국 민주공화 정치 운동의 기원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만민공동회가 주장한 ‘君民共治’는 1907년 고종황제 퇴위와 함께 본격화된 입헌정치 논의 속에서 민주공화제로 구체화됐다. 이런 시대정신과 정치운동이 발전해 1919년 3·1운동 후 민주공화제에 기초한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3·1운동에는 민족주의 이상의 의미가 있다. 헌정사적으로 볼 때는 민주공화제 수립을 지향한 근대 정치사회혁명이기 때문이다. 그 유산은 식민지기를 거쳐 1948년 건국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건국헌법은 전적으로 임시정부 헌법의 기본원칙들 위에 서있기 때문에, 임시정부 헌법은 모든 한국 근현대 헌법의 ‘원형헌법’인 것이다. 1946~48년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헌법이념과 국가체제 구상, 정치경제적 비전을 가장 풍부하게 제시한 시기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해방 이전에 이미 민주공화제와 국민주권에 대한 상당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또한 우리 헌법이 한 법률가나 특정 정치가, 또는 미국의 일방적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책의 세 번째 특징은 근대 한국 헌정의 기초를 세운 입법가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은 유진오를 가장 중요한 인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는 조소앙의 역할이 재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정부수립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유진오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래 해방 후 건국기까지 통시적으로 보면 근대 한국의 헌법과 헌정을 가장 깊이 있게 성찰한 인물은 조소앙이었다. 조소앙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헌장」, 일제 말기의 「대한민국건국강령」(1941), 「대한민국임시헌장」(1944) 제정을 모두 주도했다. 1948년 건국헌법도 기본적으로 이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조소앙은 또한 유진오와 달리 법률가(lawyer)가 아니라 입법가(lawgiver)였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조소앙은 새로운 한국이 어떤 국가가 돼야 할 지 깊이 생각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독립운동세력들 간의 이념적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조소앙은 균등이념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평등주의적 요구를 수용, 포괄하고자 했다. 우리 건국헌법이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국유ㆍ국영부문을 됐넓게 인정하고, 공공복리를 위해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책의 네 번째 특징은 건국헌법 제정 과정에서 이승만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는가에 관한 견해다. 통상 이승만이 전권을 행사해 대통령제를 채택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민당의 집요한 반대에 부딪힌 이승만은 파국적 대결을 선언한 이후에야 간신히 대통령제를 관철할 수 있었다. 건국헌법 초안과 최종본을 비교해보면 대통령제가 관철된 뒤에도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됐음을 알 수 있다.

건국헌법 제정 과정에서의 이승만 역할 재평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남북한 헌법의 탄생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동안은 남북한 헌법이 각기 독자적으로 성립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제헌과정에서 남북한은 서로 참조하고 경쟁했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한 헌법은 쌍생아라고 볼 수 있다. 두 헌법은 유사한 경제조항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근대국가의 정치원리로 모두 민주주의를 택했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고 구현하는 방식은 아주 달랐다. 예컨대 북한은 전인민적 의사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했는데, 실제 전인민은 헌법 의제에 대해 100% 찬성하고 있다. 당파적 분열은 전혀 없지만, 문제는 반대나 타협도 없다는 점이다. 다수결에 의한 간접민주주의를 채택한 남한은 고질적 정쟁에 시달린다. 민주화 이전까지 남한도 반대의 자유가 심하게 위축됐지만,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그 차이가 오늘날 남북한의 차이를 가져온 근본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서희경 서강대 연구교수·헌법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사는 우리 헌법의 뿌리를 한말 이래 근현대 정치사 속에서 탐색하는 것이다. 주요 논문으로는「대한민국 건국헌법의 역사적 기원」, 「한국 헌법의 정신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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