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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가르쳐야 할 핵심이론…생명탄생과 진화는 구분해야”
“진화론은 가르쳐야 할 핵심이론…생명탄생과 진화는 구분해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9.10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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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고등학교 교과서 진화론 유지로 입장 정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전문가협의회 위원들이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진화론 내용 수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국내 과학 석학들의 메카,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정길생)이 최근 논란이 됐던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의 진화론 논쟁에서 사실상 진화론자의 손을 들어줬다. 11인의 과학전문가로 구성된 전문가협의회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화론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 아닌, 반드시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핵심적 이론이다. 둘째, 아직도 충분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생명의 탄생과 생명의 진화는 구분해야 한다. 셋째, 진화의 과정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에서 생기는 오해는 줄여야 한다. 넷째, 시조새와 말의 화석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전문가협의회가 검토한 진화론에 대한 현대 과학적 해석을 반영한‘고등학교 과학교과서 진화론 내용 수정·보완 가이드라인’은 지난 5일, 한국과학창의재단, 서울시 교육청, 인정교과서 출판사들에게 각각 전달된 상태다.

논쟁의 발단은 지난 6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회장 이광원, 이하 교진추)가 현재 교과서에 실린‘시조새’와‘말의 진화과정’이 진화론의 근거로 부적절하다는 개정청원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청원을 받아들였고, 출판사들은 서울시의 권고대로 교과서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미온적이었던 과학계의 대응은 <네이처>지에‘한국 정부가 창조론자에게 굴복했다’는 다소 자극적인 기사가 보도된 이후 강경조로 돌아섰다. <사이언스> 역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입장 표명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11인의 과학전문가협의회가 검토

서울시는‘과학 vs 종교’로 확대된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진화론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한국과학창의재단(이사장 강혜련)과 이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 집단을 구성할 것을 논의했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전문가협의회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 3인, 진화론과 화석학 분야 전문가 5인, 기초과학학회협의체(이하 기과협) 전문가 3인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은 화석학과 고생물학을 전공한 최덕근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가 맡았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학회의 연합회인 기초과학학회연합회장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김유항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 이융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장, 황의욱 경북대 교수(과학교육학) 등이 참여했다.

 

 

김유항 부원장은“전문가협의회에서 쌍방의 주장을 신중히 검토했고, 최신 과학계의 인정을 받는 새로운 사실도 검토했다. 교과서에 수정할 것은 수정할 수 있게 초안을 만들어 한국과학창의재단에 제출하는 것까지가 한림과학기술한림원의 역할이다”라며 논쟁의 확산에 선을 그었다.

최덕근 위원장도“진화론 관련 논란이 사회에서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과학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덕환 기초과학학회연합회장 역시 종교와 과학이 상생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감을 내비췄다.

시조새는 진화의 아이콘

이융남 지질박물관장은 이빨, 날카로운 앞발로 봐서는 육식공룡의 일종이라 간주됐을 시조새가 깃털화석이 발견됨에 따라 진화의 아이콘이 됐다고 설명했다. 1978년 발견된 시조새 화석 말고도 9개의 화석이 더 발견된 것과 최근 20년 사이에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현생조류로 진화하는 20종 이상의 원시조류의 화석이 발견된 것이 시조새가 중간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 관장은“말의 진화과정을 설명한 현행 교과서의 관련 표는 1926년에 발표된 단선형인데 이를 수정하지 않고 오늘까지 사용해 온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관목형으로 표현방식을 바꿀 것을 주장했다.

진화론 문제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불거진 이유는 뭘까. 그동안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념 위주의, 그리고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으로 철저히 구분된 검정교과서가 사용돼왔다. 이덕환 교수는 이 검정교과서가 인정교과서로 바뀌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분석하면서“지난 10년 간 전국의 과학교사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검정교과서로는 과학에 관심을 갖게 못하니 활로로 융합형 과학교육을 시도한 인정교과서를 허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입김이 대폭 줄어든 인정교과서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한(1~3쪽 분량) 진화론
은 충분한 이해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게 됐다.

인정 교과서의 출판체제에도 문제가 드러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직접 감독하고 승인했던 검정교과서를 대체하기 위해 출범한 인정교과서는 현재 서울시교육청이 인정감독한다. 출판사별로 각 집필진을 선정하고, 이들이 만든 교과서를 서울시 교육청이 검토, 승인하면 인정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처럼 개정청원이 들어올 경우, 이를 적극 검토할 기관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교진추, 가이드라인 재고 요청

이덕환 교수는“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의가 제출될 때 집필진이 당황할 수 있다. 정부차원에서 검정과는 다른 차원으로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상시적인 인정감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논란이 된 인정교과서 발간제도를 확실히 뿌리내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제도 보완을 요청한 것이다.

이번 과학계 전문가협의회의 발표는 시기적으로 서두른 느낌이 없지 않다. 2013년 교과서로 인정받기 위해서 9월 말까지 수정된 교과서를 서울시 교육청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5일 오전 전문가협의회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7개 출판사에 전달했다.

반면 교진추는 지난 6일 즉각 반박에 나섰다. 이광원 교진추 회장은“전문가협의회의 구성에 청원 당사자인 교진추와 출판사이 집필진을 참석시키지 않은 것은 가이드라인 작성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고 지적하며“시조새가 중간종이라는 진화론의 한 가지 가설만 교과서에 싣지 말고 다른 가설들도 실어야 한다”라고 재차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전문가협의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의 재고도 요청했다.

이 회장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한 발 물러선 과학계의 입장에 대해선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교진추의 앞선 두 청원이 진화론 삭제를 요구하는 양 오도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확실히 증명되지 않은 가설로는 질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없고, 학생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줄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했다. 교진추는‘화학진화’로 과학교과서 개정청원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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