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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나의 고고학 반세기와 ‘수양개’
원로칼럼_ 나의 고고학 반세기와 ‘수양개’
  •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고고학
  • 승인 2012.09.0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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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고고학
고고학 연구에 바친 반세기의 삶 중에서 가장 보람있고 잊지 못할 유적 발굴은 바로 ‘사적 398호’로 지정된 단양 수양개 선사유적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나아가 세계 고고학의 역사를 고쳐 쓰게 한 가히 기념비적인 유적의 오늘의 위상이 있기까지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자칫 사장되고 말 뻔했던 위기도 다섯 차례나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셈이다.

수양개와 필자와의 인연은 1980년 7월 21일 충북대 역사교육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조사팀이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 부락의 유적을 찾아내면서 시작됐다. 우선 발굴 초기에는 수양개 유적이 발굴조사 대상에서 제외돼 영원히 물속에 묻히고 마는 위기를 맞았다. 필자가 박물관장(조사단장)이 되면서 고고학적 조사의 계기를 마련했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으로 국정교과서에까지 수록됐다(1983년 5월).

이 조사만으로는 유물 출토범위의 100분의 1에도 못미쳐 연장계획을 추진했으나 행정기관의 막무가내적인 거부로 두 번째 벽에 부딪히게 됐다. 스승이신 손보기 교수와 당시 황영시 감사원장이 매듭을 풀어줘 2·3·4차 발굴로 거의 3만점에 가까운 유물을 수습했지만 충주댐의 완공으로 더 이상 발굴을 진행할 수가 없게 됐다(1985년 7월). 이 때 김원룡 서울대 교수의 큰 관심으로 <조선일보>는 문화면 전면과 사설을 통해 유적의 보존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5년이다. 평소부터 필자의 조사와 연구 활동을 눈여겨 봐왔던 정하모 초대 민선 단양군수의 예산 지원으로 다시 5차 발굴에 들어가 세 번째의 장벽을 넘었고, 어렵사리 잡은 이 호기를 놓치지 않고자 2년간 모두 3차례 발굴로 삼한시대의 취락을 확인했다.

유적 보존을 위해서는 국가사적 지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돼 1997년 6월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수몰지역’이라는 이유로 부결돼 네 번째의 벽을 만나게 됐다. 그러나 이 시련도 수양개 국제회의에 참가한 여러 고고학자들의 서명과 재심 청구로 드디어 ‘국가사적 398호’로 지정돼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1997년 10월). 여기에 힘입어 유적박물관 건립운동을 펼쳤다. 설계 예산까지 확보했으나 때마침 IMF로 예산이 삭제되는 다섯 번째의 벽을 만나게 됐음에도 박물관건립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필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렇게 건립된 박물관은 2006년 7월 26일 개관하였다.

수양개 유적의 의미를 체계화하기 위해 만든 수양개 국제회의는 김재호 단양향토문화연구회장, 전국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고 어려운 단양군의 다섯 차례 예산 지원과 필자가 받은 한국학술진흥재단 예산으로 베이징과 워싱턴에서 8회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 일본 구석기 연구의 본산인 메이지대의 암비루 마사오 교수는 학교를 설득해 제9회 수양개 국제회의와 특별전시회를 함께 개최해 수양개 유적의 의미와 필자의 연구업적을 세계 학계에 소개해 줬다. 또한 일본 쿠슈 미야자키에서 제13회 회의를 열어줘 학문적 은혜를 입게 됐다. 이 회의에 참가한 많은 외국학자들(중국, 러시아, 폴란드 등)이 11~17회까지 ‘수양개와 그 이웃들(SUYANGGAE and Her Neighbours)’이라는 같은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해 줬다.

앞으로 2018년(23회)까지 개최국가가 선정됐는데 특히 미국 와이오밍주립대(21회)와 텍사스 A&M주립대(23회)에서 같은 주제로 국제회의가 열릴 생각을 하니 학문을 하는 큰 보람을 갖게 된다. 이러한 노력에 러시아와 중국과학원에서 필자에게 준 명예학위는 너무나 과분한 것이어서 송구스러울 뿐이다. 또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는 수양개 유적을 세계문화유산 우선 추천대상목록으로 선정해 문화재청에 올려 보낸 상태다.

지난 33년간 수양개에 대한 필자의 연민은 바로 내 인생과 학문이었기에 오로지 그 길로 내닫기 위해 연구원(재단법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까지 설립해 올인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좋은 결과를 머리에 그려본다.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고고학·(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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