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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없는 세상, 그곳은 정말 지옥일까
대학 없는 세상, 그곳은 정말 지옥일까
  • 은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 승인 2012.09.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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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은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은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대학가기가 나날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수능, 내신, 논술, 입학사정관제 등 다양한 요소들을 대비해야 하기에 그렇단다. 일각에서는 학력고사 방식이 더 쉽고 편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학력고사 방식으로 본다고 해서 대입 경쟁이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학생들의 학습량이나 사교육이 감소하지 않을 것이고,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이 달라졌기에 암기력 하나로 줄을 세워 뽑는 방식보다는 여러 줄을 세워 다양한 우수성을 보상해주는 것이 더 공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능을 EBS에 연계한다고 해서, 논술을 쉽게 낸다고 해서,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한다고 해서 이러한 경쟁이 감소할까. 그것 역시 절대 아니다. 현재와 같은 대학 ‘선호’가 유지되는 한 경쟁은 지속될 것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청소년의 자살, 사교육비 문제 등은 해소될 수 없다. 즉, 교육문제는 교육정책을 통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문제에 대한 해답은 격화된 ‘경쟁’의 원인인 노동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비정규직’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대학 진학은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좋은 일자리의 수는 나날이 줄어드는 현 상황에서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해서 안정적이고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고자 하는 합리적인 개인들의 선택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대학이 선발방식을 어떻게 바꾸건 경쟁이 줄어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입뿐만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가 주창한 ‘세계화’로 표상되는 경쟁의 논리는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일상적으로 보편화됐다. 이제 한번 냉정하게 지난 20년을 평가해보자. 경쟁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더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낼 수 있었나. 임용ㆍ재임용 지표를 충족시키기 위한 연구자들의 실적 경쟁을 통해 보편적 진리에 더 접근했나? 우리 국민들은 더 행복해졌나?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자신 있게 맞이할 수 있을 만큼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졌나?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힐링’ 열풍은 지난 20년간 보편화된 경쟁의 논리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얼마 전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라는 저작을 통해서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인간의 DNA에는 ‘거울신경세포’가 있고 이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나 타인의 상황에 대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화적 측면에서 보면, 영장류 가운데 눈에 흰자위를 가진 종은 인간뿐이다. 이는 인간만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시선을 노출해 소통하는 전략을 활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기본적 전제만으로는 인간을 이해하거나 사회를 구성ㆍ유지해가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의 변화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들을 만들어가는 단서가 된다. 즉, 기존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주로 동원하던 방식-이기심에 기반을 둔 시장 논리 및 경쟁-만으로는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해소할 수 없다.

리프킨은 “수입 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더 행복하며 더 많이 공감하는데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가 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또, 영국의 저명한 사회역학 연구자 리처드 윌킨슨도 절대 빈곤을 탈피한 국가의 경우 상대적 격차가 큰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불평등에 상처받게 되고, 열등감, 우울, 불안 등을 느끼게 돼 국민건강수준이 나쁘다고, ‘평등해야 건강하다’고 주장한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도 취업해서 괜찮게 먹고살 수 있다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어도 복지수급을 통해 기본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직종간 임금격차가 지금보다 감소한다면 대입 경쟁은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전제인 ‘이기심’과 ‘경쟁’ 패러다임만으로는 산업화ㆍ민주화 이후 구성원의 행복극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대학 없는 세상, 그곳은 정말 지옥일까?

은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복지국가 및 사회보장을 전공하고 있다. 복지국가 비교연구와 후발국 복지모형, 대안 지표의 개발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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