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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갈 무렵
‘태풍’이 지나갈 무렵
  • 글·사진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9.0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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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케치_ 어느 대전대 교수의 죽음, 그 후

지난달 22일 오후 7시 30분. 충청 書壇의 대표적인 서예가 춘강 염호택 대전대 교수(서예·한문학과)가 자택에서 목을 맸다. 장을 보고 돌아온 부인은 소스라쳤다. 반주삼아 막걸리를 마시던 남편이 몇 분 사이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119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소용 없었다. 향년 57세. 아직 한창의 나이에 그는 세상을 갑작스레 등졌다.

사건 직후 “학생들 취업률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未亡人의 진술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튿날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별 취업률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중앙일간지들은 ‘취업률 시리즈’ 기사를 쏟아내는 등 발 빠르게 사건을 보도했다. 요지는 ‘취업률 압박에 따른 지방대 교수의 자살’.

실습실은 텅 비어 있었다. 방학이지만 대회를 앞두고 있던 터라 학생들이 다녀간 흔적이 선명했다. 
일주일이 지난 28일, 대전대를 찾았다. ‘태풍’이 휩쓸고 간 대학 캠퍼스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창학관 4층과 5층 서예 실습실은 텅 비어 있었다. 학교에서 만난 故人의 동료 교수들은 하나같이 “死因을 짐작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과의 한 선임 교수에 따르면, 고인은 연구실과 집 어디에도 죽음을 암시하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최초 진술과 달리 미망인이 염 교수의 死因을 ‘우울증’으로 번복하면서 ‘취업률 스트레스에 따른 자살’이라는, 언론이 급조한 의혹의 시선은 걷혔다. 그와 친분 깊은 원로 서예가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취업률 스트레스가 ‘자살’을 선택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고인은 늦깎이 나이에 교수로 입직했다. 올해 양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여러 지역 소재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다 2008년 대전대에 자리를 잡았다. 분명 제자들의 취업이 큰 고민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살아온 삶의 에너지를 돌아본다면, 그건 여과할 수 있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 스트레스의 강도를 예측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만난 교수들은 “취업률 스트레스가 ‘결정적인’ 死因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취업률로 대학의 수준을 낙인찍는 교과부의 평가정책도 문제”라고 우려 하고 있었다. 취업 문제에 대학과 교수들이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이건 국가·사회적 사안이기도 하다. 대학 일방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교과부가 성과지표로 ‘취업률’을 고수하고 있는 한, 어느 날 갑자기 가슴 아픈 제2·제3의 故人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예일대 연구팀이 보고했듯,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일으키는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다른 데 있다. 기자가 찾아갔던 날, 대학의 한 관계자는 “死因이 취업률과 무관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후속조치를 취할 이유가 없고, 진상조사도 경찰에서 할 일”이라며 기자를 돌려세웠다. 죽기 전날까지 학교 일로 늦게까지 고민하고, 회의하다 귀가한 한 교수의 갑작스런 죽음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취업률과 관련 없는 ‘자살’이라면, 그저 팔짱 끼고 ‘우울증’ 탓만 해도 되는 것일까.

때마침 지난달 31일 교과부가 ‘하위 15%대학’을 발표했다. 지난해 취업률 49%로 정부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됐던 대전대는 올해 64.5%를 기록했다. ‘하위 15%대학’이라는 오명도 벗었다.

(대전)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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