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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연구자로서 ‘살아가기’와 ‘살아남기’
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연구자로서 ‘살아가기’와 ‘살아남기’
  • 박영순 국민대 HK연구교수·중문학
  • 승인 2012.07.1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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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중문학
연싸움은 ‘연실 끊어 먹기’도 있지만 ‘연 높이 날리기’도 있다. 연 날리는 자의 목표에 따라 다르지만 둘 다 고도의 기술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기왕 연 ‘싸움’인데 전자의 ‘살아남기’ 방식이 더 스릴이 있겠지만, 연줄 날리는 과정에 보다 의미를 두며 공력을 기울이는 후자와 같은 이도 있다. 

중국 유학 시절 후배에게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실천을 중시하는 인문학계의 지식인이자 평소 존경해 오던 분의 글인지라 얼른 읽어봤다. 완전하지 않은 옅은 기억 속에 이런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집을 그릴 때 지붕을 먼저 그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집을 짓는 이는 집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고 지붕은 맨 마지막에 그려 넣습니다.” 당시, 집을 짓는 일이 그러하듯이 나의 학문도 기둥을 받쳐주는 튼튼한 주춧돌부터 쌓아가며 그 과정을 중시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이 말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우리 사회는 과도하게 조급하고 경쟁적이다. 모든 사회가 헐떡인다. 학계도 질 새라 달궈졌다. 알도 낳고 뻥도 튀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기를 외치며 미친 듯이 학술 경쟁의 물살에 휩쓸린다. 누구도 원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도 그 자리에 놓여 있어야 실존감을 느낀다. 연구자로서 ‘살아가기’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리하여 ‘자기 통제력’을 잃은 학술계나 연구자는 모두 과도한 업무량과 논문 실적 생산에 급급하며, 차근차근 學德을 쌓기 보다는 성급하게 그럴듯한 지붕부터 짓고자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되묻는다. ‘연구자’라는 말 앞에 진정 떳떳하고 자유로운가. 무임승차하듯 날름 프로젝트를 획득해 이력서에 ‘연구자’라는 한 줄을 더 얹으려 하기보다는, 부단한 나의 학술적 일상이 ‘연구자’라고 자연 명명되도록 최선을 다했던가.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라고 한 것처럼 스스로 감동할 만큼 그러했던가. ‘학술 권력’의 혜택을 덜 받더라도 학자로서의 고난한 길을 조금 더 가보려 시도했던가. 겉 보기에 그럴듯한 지붕을 그리기보다는 투박하지만 알찬 인고의 주춧돌을 먼저 세우려는 학문적 자세를 견지했던가. 자성한다.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못 보면 못 볼 것을 보듯이, 우리가 봐야하는 것은 자신을 내세운 자신의 학문이요, ‘못 볼 것’은 양적 생산에 무감한 학문적 태도일 것이다. 정녕 이러함이 학자로서 살아남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연구자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지식인)는 학술생산을 주도하며 그 지식활동은 논문으로 구체화 된다.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학술기관도 응당 필요하다. 연구소가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일정 정도 학술권력과 거리를 두면서 자율적인 학술연구를 추구해나갈 때, 연구재단은 그들의 후견인으로 방향타를 잡고 있을 때, 진정한 알맹이 있는 학술성과가 만들질 것이다. 그래야 학문후속세대들도 至難한 학문세계에서 모두 ‘연줄을 끊은’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못할 지라도, ‘속 꽃피는 무화과’도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학문적 풍토를 형성해나갈 것이다.

결코 재정적 지원만으로 학술환경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알토란같은 학술성과를 생산할 수 있도록 조금은 지켜보며 독려해 가면서 적절하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들이 이대로 학문의 ‘보호구역’이자 ‘족쇄의 그늘’에서 계속 말 잘 듣는 ‘착실한’ 존재로 지속된다면, 이는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서로 발전하고 공생할 거라는 야무진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할 것이다.

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학문후속세대가 마치 광기에 쌓여 학문에 정진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정신을 한곳에 모아 몰입하지 않고서는 결코 우뚝한 결실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학문 연구에서도 ‘더딤’의 미학이 조금은 인정된다면, 좀 더 얼레의 줄을 풀어 높이 연을 날려보려는 학문후속세대들이 나오지 않을까.  


박영순 국민대 HK연구교수·중문학
중국 푸단대에서 박사를 하고,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있다. 최근에는 중국 문학작품의 생산기제를 통해 문학 생산의 제도적 인프라를 파악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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