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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국제정치를 위하여
선물의 국제정치를 위하여
  • 구갑우 서평위원/북한대학원대학·정치학
  • 승인 2012.06.2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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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코뮨주의자(commune-ist)가 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세계공화국으로』에서, 마르크스의 생산양식 개념을 ‘교환양식’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정치적 상부구조가 배제돼 있는 생산양식의 개념으로는, 정치와 경제가 분리돼 있지 않은 자본제 이전의 사회구성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진이 이 전환을 생각한 핵심적 이유는, 자본은 물론 국가와 네이션(nation)이 교환양식 가운데 하나로 자립성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상품교환이라면, 국가가 약탈-재분배의 교환양식을 핵심으로 한다면, 네이션은 호혜적 교환관계를 기본으로 한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국가와 네이션의 사멸이라는 낙관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자본주의 사회구성이 마치 과거의 생산양식 접합론처럼, 자본과 국가와 네이션의 결합체라는 고진의 주장은, 그 ‘다음’으로 자유로운 개인에 기초해 호혜적 교환을 회복하는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을 향한 운동의 상상으로 연결된다. 마르크스의 국가론 부재를 교환양식 개념을 통해 비약한 고진의 어소시에이션을 향한 경로는(실현가능한 것이라기보다는 칸트적 의미에서 규제적 이념이라는 옮긴이 후기의 친절한 덧붙임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 내부에서 국가를 부정해 가는 길과 국가가 군사적 주권을 국제연합에 양도하는 길, 즉 안과 밖의 연계를 통해 확보된다. “한 나라 안에서만 국가를 지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본에 대항하는 각국의 운동은 항상 국가에 의해 단절돼 버”리기 때문에, ‘전쟁,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를 생산하는 자본주의 사회구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양을 위한 안과 밖의 운동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진이 ‘세계공화국’을 주장하는 이유다.

고진의 담론을 존 레논의 ‘이매진’에 버금가는 노래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고 고진의 세계공화국이 지구연방인지 아니면 자유로운 생산자의 연합인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고진의 통찰력은, 안과 밖에서의 국가의 지양이란 기획이다. 서구의 복지국가나 동구의 사회주의국가는 국가 안의 원형감옥을 통해 재분배라는 교환양식을 강화한 형태들이다. 복지국가와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국가는 상품교환을 촉진하는 작지만 강한국가였다.

고진은 촘스키를 원용하면서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리버테리언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규제적 이념이 될 수 있는, 어소시에이션이다. 복지국가의 문턱에 접어들고 있는 한국에서 한가한 논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고진을 나름 해석한다면, ‘복지-전쟁국가’ 또는 ‘사회주의적 전쟁국가’라는 한계적 국가형태의 극복을 위해서는 국제관계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읽힐 수 있다. 서구의 복지국가는 부분적으로 냉전의 산물이었고, 복지국가이면서 동시에 전쟁국가 내지는 안보국가의 형태를 유지해 왔다.

재분배의 극단을 추구했던 사회주의국가들도 마찬가지의 국가형태였다. 고진의 공백은,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에서 국제관계의 변혁의 ‘단계’다. 국가들 사이의 교환을 정의하는 양식에 대해 고진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국제관계에서도 호혜적 교환관계, 즉 선물과 같은 교환관계가 성립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국제관계에서 약탈 또는 상품교환과 같은 교환양식들의 변화가 없다면, 군사적 주권의 이양이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주류 국제관계이론을 동원한다면,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무정부상태 하에서 국가들의 협력 및 정체성 공유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다. 고진의 단계설정을 위해, 나라들 안에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선물교환을 분석한 『우리는 왜 선물을 주고받는가』(김정주, SERI 연구에세이, 이하 『선물』)를 읽는다. 선물은, “축하, 기쁨, 배려, 애정, 격려, 기념 등의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적인 의사를 눈에 보이는 물체를 통해서 표현하는 행위”다. 경제학적 입장에서 돈이 ‘매우 이상적인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가로질러 전형적 선물로 행세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선물은 사회적 의무감 또는 利他性 때문에 이뤄지는 교환일 수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기성이 이타성을 산출하는 대표적 사례다. 선물을 통해 주고받는 행위자들의 ‘관계역할’이 정립되고 그들의 ‘연대’가 강화된다. 선물은 또한 제삼자의 눈을 의식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규범을 (재)구성하는 효과를 거둔다. 국제정치에서 선물처럼 보이는 인도적 지원과 같은 교환이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는 사람의 메시지 입력(encoding)과 받는 사람의 출력(decoding)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는 차이에 유의해야 한다. 이 간극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선물이라고 주었지만, 상대방이 선물일반에서 나타나는 균형맞추기를 하지 않을 수 있고, 제삼자에게는 ‘퍼주기’와 같은 ‘뇌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을, 고진의 칸트 독해에서처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선물』이 분석하는 것처럼 돈과 고가의 상품이 선물이 될 수 있는 문화적 맥락이 있다. 이해는 국가가 자기부정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토대다. 더불어 국제정치에서 나타나는 선물교환의 시간적 지체현상과 하나의 가치척도로 비교가 불가능한 선물교환을 제삼자가 이해할 수 있을 때, 국제정치에서 선물교환과 같은 교환양식이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공화국』과 『선물』이라는 사실 연결이 불가능한 두 책을 지금 같이 읽는 이유는, 한반도의 국제정치를 바꾸어내지 않는 한, 한국적 진보의 길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구갑우 서평위원/북한대학원대학·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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