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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장수 장관 기다린 타산지석의 세월 10년
[진단] : 장수 장관 기다린 타산지석의 세월 10년
  • 교수신문
  • 승인 2002.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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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0 12:05:15
안성배 / 민예총 정책기획팀장

문인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는 1959년 독립기구가 된 프랑스 문화부의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조국 프랑스가 세계제일의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정확히 10년이었다.
아마추어 연극배우 출신 자끄 랑(Jaque Lang) 또한 그를 총애했던 소설가 지망생 미테랑 대통령과 짝이 되어 1980년대 프랑스 문화의 영속적인 발전기틀을 닦았다. 자끄 랑 장관은 지속적인 예술지원을 위해 문화부 내에 예술국을 창설했다. 예술국은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인 문화발전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고, 이에 힘입어 프랑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대국으로 손꼽히게 됐다. 자끄 랑도 앙드레 말로에 버금가는 기간 동안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오랜 정치역정 끝에 정권을 잡으며 ‘문화대통령’을 자임했을 때까지만 해도, 임기 4년 여 만에 무려 네 명의 문화부 장관이 교체되리라는 ‘불온’한 추측을 한 ‘문화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임기 6개월을 남겨둔 2002년 7월, 다섯 번째 문화부 장관을 임명함으로써 ‘문화대통령’의 자격을 상실했다.
신낙균, 박지원, 김한길, 남궁진, 그리고 김성재 현 장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5명이 거쳐갔으니 평균 1년에 한번씩 문화부 장관이 교체된 셈이다. 부임 초기 2달 동안 업무 파악하고, 국정감사 때 출석해서 의원들 싸움 구경하다 한 달 가고, 교체되기 전 몇 달간은 정치 상황에 신경 쓰다 세월 보내고…….
부끄럽지만, 이것이 우리 문화의 발전을 책임지는 중앙정부 수장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까, 라고 묻지 않아도 전근대적인 정치현실 때문임을 소수 정치인들만 빼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문화부 장관직이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임시직처럼 여겨지는 슬픈 우리 정치의 자화상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만 빼고는 다 안다. 그나마 ‘문화대통령 DJ’ 아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임시로 문화부 장관직을 맡은 그 ‘정치인’들의 위상이 ‘허세’에서 ‘실세’로 변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 어디에도 ‘문화’가 숨쉴 곳은 없다.
강조하다시피 문화는 사회발전의 견인차이자 기저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 사회만의 독특한 문화에 의해 삶의 방식들을 규정받는다. 그런 까닭에 문화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삶을 조율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정됐다. 새로운 세기에 강조되는 문화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문화가 살아야 사회가 살며, 문화가 살아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적인 모습으로 변화된다. 이런 이유로 세계 유수의 문화선진국들은 문화의 발전을 책임지고 관장하는 부서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제고해 왔으며, 부서 최고 책임자의 임기를 정치정세나 환경 변화에 크게 관계없이 보장해 왔다.
10년.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그토록 무거운 “타산지석의 세월”로 다가온 시간의 단위가 바로 10년이다. 언제쯤에나 우리는 정권이 바뀌어도, 강산이 한번 크게 바뀌어도 변함없이 문화발전만을 생각하는 장수 장관을 맞이할 수 있을까. 오로지 문화만을 생각하는 어떤 나라의 문화부 장관이 그 나라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갈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문화부 장관자리를 거쳐갈 지 알 수는 없지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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