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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성장 든든 지원 … “출판은 나무 심는 일과 같습니다”
학문의 성장 든든 지원 … “출판은 나무 심는 일과 같습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5.30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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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교육학 분야 ‘20년 외길’ 걸어온 학지사 김진환 대표

세상의 변화만큼 학문 분야도 다양화되고 깊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심리학’ 분야만큼 현실 변화를 체감하는 학문도 많지 않을 듯하다. 심리학을 비롯, 교육학, 특수교육, 유아교육 분야 학술서와 전문 교재를 꾸준히 출판해온 학지사(대표 김진환·57)가 다음달 5일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심리학이 사색의 차원을 뛰어넘어서 검증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과학의 개념으로 출범한 지는 100여년이 됐고, 한국은 이제 50년이 넘어간다. 학지사가 심리학 분야의 책을 처음 출판하기 시작했을 때, 국내에서 발행된 관련 도서는 겨우 손을 꼽을 정도였다.

그것마저도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나 융의 분석심리학 단행본 번역서, 꿈 해석에 관한 책들로만 겨우 채워져 있었다. 심리학을 협소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심리학 개론서, 인지·지각·언어심리학, 발달심리학, 상담 및 심리치료, 건강심리학, 사회·산업심리학 등 최근 20여 년간 학지사가 발행한 심리학 관련 도서는 과거 30년 동안 발행된 모든 심리학 책을 합한 수의 배는 넘을 것이다. 이점에서 학지사의 기여는 거듭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학지사는 1992년 6월 심리학 분야 전문 출판사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학지사의 ‘예측과 결단’은 적중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출판’이란 사업에 처음부터 깊은 흥미를 보인 것은 아니다. “친척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교육학, 유아교육 분야 책을 내는 일이었는데, 신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점점 출판의 가치와 매력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요? 인생과 삶까지 바뀐 거죠. 지금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거에요.” ‘인생과 삶이 바뀌었다’는 데는 그의 남다른 판단력이 작용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이상으로 올라갈 때라야 심리학 분야의 학문이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았던 것. 김 대표는 그 흐름을 읽었고, 학지사를 이 흐름 위에 올려 놓았다. “우리 사회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심리학 분야의 성장을 쉽게 예견할 수 있었죠. 학지사를 심리학 전문 출판사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부터는 심리학 분야 출판에만 전념했습니다.” 심리학 분야 출판에 도전했지만, 그가 확실한 ‘감’을 잡은 것은 2~3년이 지나서였다. 사회적 변화, 특히 학계와 대중적 수요가 확산되기 시작했던 무렵이다.

1995년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상담심리학자들이 대학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무관하지 않다. 한 길 20년, 학지사는 과연 어떤 대표작을 만들었을까. 학지사가 자신 있게 내놓는 책은 『심리학의 이해』(윤가현 외 지음), 『발달심리학』(송명자 지음), 『사회심리학의 이해』(한규석 지음), 『인지심리학』(이정모 외 지음) 등이다. 특히 『심리학의 이해』는 지금까지 15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첫 출간했던 1993년엔 7천부 정도가 나갔다. 많이 팔릴 때는 1만4천부 정도까지 찍었다. 지금도 꾸준히 5천부 정도가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발달심리학』은 송명자 동아대 교수의 저작이지만, 이 책을 내고 얼마 뒤 송 교수는 유명을 달리했다. “그분은 정말 책에 애정이 많으셨던 분입니다. 출간 15년이 지나도 이 책 만 한 책은 없다는 게 학계 평가입니다.” 학지사의 토대를 닦은 또 다른 책 『사회심리학의 이해』의 저자인 한규석 전남대 교수는 책을 낼 때마다 안식년을 내서 작업할 정도로 꼼꼼하고 열정적이다. 그런 열정 탓인지 이 책도 학계에 ‘손꼽히는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출판이 한 시대의 얼굴이라는 말은 틀림없다.

그는 이런 뼈있는 말을 던졌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리학이나 심리치료와 관련된 도서가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계속 등장하는 것은 성공이나 부만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를 쇄신해야 할 시점에 우리 사회가 이르렀다는 반증 아닐까요?” 2000년 무렵 원호택·권석만 서울대 교수를 중심으로 ‘이상삼리학 시리즈’ 30권을 기획 출판해온 그였기에 던질 수 있는 예리한 지적이다. ‘이상심리학 시리즈’는 심리치료나 상담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만이 받는 것이라는 편견을 벗어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상담심리학과 심리치료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일반인과 전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학지사는 ‘전문’ 학술 출판사로서는 드물게 많은 책을 내놓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좀 지난 자료이긴 하지만 2000년부터 2003년까지의 출판 통계를 보면, 당시 2만여개 출판사 가운데 아홉 번째로 많은 책을 발행한 곳으로 기록됐다. “많은 책을 낸다고 좋은 출판사가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저희는 전문성과 대중화,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에서 질 높은 책을 만드는 데 전력하고 있습니다.” 원고를 받을 때도 관련 분야 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일정기간 연구활동을 거친 학자들로 제한하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학자일 경우, 해당 학문분야를 한국어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질 정도의 기간(약 5년)이 지나야만 원고를 받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책 한 종을 볼 수 있는 대상이 단 몇 십 명도 되지 않는다고 해도 꼭 필요하다면 출판한다는 것이다. “저자분들이 10년 이상, 때로는 평생을 연구한 결과물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도 출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책을 출판하는 데 경제성만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독자가 적더라도, 한 그루 나무가 장차 숲을 이룬다는 신념으로 책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학지사는 지금까지 3천여 종의 책을 출판했다. ‘韜光養晦’라는 말을 늘 마음에 새겨넣고 있다는 김진환 대표.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좋은 책만 열심히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해요.” 그는 쿠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세상을 변화시킨 것처럼, 책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다. “출판을 통해 학문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해요. 그런 실감과 믿음이 오늘의 저와 학지사를 만들었습니다. 학지사는 앞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책을 계속 만들 겁니다.” 학지사 20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에 던지는 도전의 의미가 이 한마디에 압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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