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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횡단·사회운동 결합 지향한다
학문적 횡단·사회운동 결합 지향한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5.21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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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맞은 <문화/과학> 새로운 모색 시도하나

2012년. 마르크스주의로 돌아간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잡지 <문화/과학>이 그 주인공이다. 혹자는 이들에게 마르크스주의가 실현 불가능한 이론이란 점이 유럽공산권의 몰락으로 이미 증명되지 않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에 의거한 사회가 이 지구상에 건립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前 편집인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문화과, 이하 한예종)는 대답한다. 1992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으로 지식인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잡지 <문화/과학>이 어느덧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이론의 논쟁장 마련

<문화/과학>은 1991년 발간된『포스트모더니즘의 쟁점』(강내희)과 이듬해 중앙대에서 열린‘문화 심포지엄’이 그 시발점이다. 90년대 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국내에 소개되고 문학, 미술, 철학 분야에서 논쟁이 시작되던 시기다. 점조직처럼 개별연구하던 학자들에게 이 책과 심포지엄은 서로를 발견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장이 됐다. 1992년,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심광현 교수와 ‘10년 가는 잡지’를 만들겠다고 의기투합했고, 작고한 이성욱 평론가, 이득재 대구카톨릭대 교수(노어노문학과), 박거용 상명대 교수(영어교육)가 합세했다.  

잡지 성격, 방향, 이론의 지형 분석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네 명의 편집위원이 ‘대중지’의 성격으로 잡지를 창간하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심 교수는 “이론적 혼선을 정리하지 않으면 후에 닥칠 혼란을 대비할 수 없다. 1980년대 운동하던 치열함으로 이론적 논쟁을 가장 근본적인 문제까지 건드려보자”고 네 명의 편집위원을 설득했다. 잡지의 성격이 정해지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창간호부터 10호까지의 기획이 첫해에 나왔다.

 1992년 동구권 붕괴와 1994년 나프타 출범.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유럽을 10년간 잠식해 진보의 탈출구가 도무지 없던 시기. <문화/과학>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마르크스주의에서 각각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자는 생각으로 이론 지형도에 충격을 가했다. 당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나 포스트모더니즘으로만 가야한다고 고집하던 진보의 양 진영에 충격을 준 것이다. <문화/과학>은 1978년 알튀세르의 테제인 ‘마르크스와 비마르크스주의의 마주침’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시기에 서구 좌파이론의 비판적 수용과 재해석이 이뤄졌다. 그동안 마르크스주의가 손대지 않던 비마르크스주의의 영역이나 철학적 부분인 언어, 욕망, 공간까지도 창간호의 주제가 됐다. 당시 획기적이었던 <문화/과학>의 시도는 지식인 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해체와 폐쇄의 상태에 고착됐던 진보지식인들에게 활로를 뚫어준 셈이다.

<문화/과학>이 20년을 잡지에만 매달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995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이론신서’는 50여권, 단행본은 150여권에 달한다. 초기 10년간 이론적연구를 하면서 니체의 ‘즐거운 과학’과 마르크스의 ‘혁명’을 결합한 ‘즐거운 혁명’은 이후 <문화/과학>의 성격을 대변하는 테제다. 엄숙주의를 벗어나 낭만주의를 넘어서는 길을 함께 가는 것. 문화와 과학, 욕망과 혁명 등 상반된 주제를 가로지를 이론적 틀이 이 시기에 구축됐다. 신임편집장 이동연 한예종 교수(문화이론)가 <문화/과학>에 합류한 시기도 이 즈음이다.

<문화/과학>이 지켜온 20년이 소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초기 목표인 이론에만 천착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서구 좌파이론을 연구하면서도,실천적 운동을 해나갔다. ‘즐거운 혁명’이 하나의 슬로건이었다면 ‘문화사회론’은 문화적 실천이라는 개념의 확장이었다. 알튀세르의 ‘사회구성체론’의 네 층위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층위로 재정립하고 대중문화, 예술, 과학, 학술, 종교의 범주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 카테고리를 정치, 경
제와 상호분석하는 것이 문화사회론의 축이 됐고, 개별 사례 연구를 통해 정부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틀이 생겼다. 1999년 문화연대의 탄생은 그 결실이다.

한 손엔 이론, 다른 한 손엔 실천을 들고 가던 <문화/과학>은 2006년 FTA를 통해 ‘꼬뮌주의적 생태문화사회론’으로 또 한번 진화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전체 분석을 위해서 한 달간에 교수, 지식인, 문화, 미디어, 농민, 여성을 만나며 시야를 넓히고, 이론과 실천의 순환구조를 심층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문화/과학>은 스탈린주의와 그 변종들의 오염된 해석으로 100년을 이어온 공산주의를 폐기하지 않고는 변화가 없음을 절감한다. 2007년 마포 ‘민중의 집’은 이런 의도로 시작한 실천운동이다. 기원은 1910년 그람시 시절에 만들어진 이태리의 민중의 집이다(이탈리아에서 전성기때 1만6천개였지만, 지금은 7천개가 남아있다).

국내 좌파적 이론과 실천 운동의 최전선을 구축했던 강내희, 심광현 교수는 곧 나올 <문화/과학> 70호를 끝으로 편집위원에서 빠진다. 이 빈자리는 이동연 교수와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객원교수가 대신한다. 25명의 30, 40대 편집위원들로 구성됐다. 신임 편집인들은 “신임편집위원들의 다양한 전공은 자연스러운 통섭의 미로와 학문적 횡단성을 보장한다”라고 말했다. <진보평론>이나 <역사비평>같은 진보잡지를 겸임하는 편집위원도 있어 다양한이론적 교류가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문화사회론’으로 실천적 운동

공동 편집인인 이명원 교수는 “세대교체라기보다는 세대이행이다. 예전의 중견 편집인과 신임편집위원이 잘 어우러질 것으로 본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편집위원에는 <문화/과학>의 긴 공백이었던 페미니즘 분야의 이론가 서용표 제주대 교수(사회학), 조선령 미술평론가, 정정훈 수유/너머 연구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등이 있다.

자유주의나 집단지성, 나꼼수로 설명되고 해석되는 것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이론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신임 편집인 이동연 교수. 그는 “<문화/과학>의 계승과 발전에대해 논의 중이다. 이론을 중요시하겠지만, 워킹 콜렉티브 같은 미시적 사회운동과 어우러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문화/과학>은 오는 25일 서강대 다산관에서‘공황과 혁명’을 주제로 20주년 학술심포지엄을 연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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