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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화두 '박사'…"질 관리 시급하다"
우리시대의 화두 '박사'…"질 관리 시급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5.21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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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_ ‘박사인력 배출, 이대로 좋은가’ 기획안 <지식의 지평> 12호

학술전문잡지 <지식의 지평>12호(2012. 한국학술협의회 편)가 큰 주제를 들고 나왔다. ‘박사인력 배출, 이대로 좋은가’가 그것이다. 학문 연구 인력을 비롯, 고급 연구 인력 양성 문제는 이제 국가적 사안이다. 그러나 어떻게 박사인력을 양성하고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는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지식의 지평> 12호가 마련한 ‘박사인력 배출, 이대로 좋은가’에는 모두 6편의 글이 실려 있다. 총론격의 글로 이태수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인제대 교수, 철학)의 「박사학위 양산 체제의 문제점」이 고민을 잡아냈다면, 구체적으로 대학 교육 현장에서의 문제를 짚어내는 신정철 서울대 교수(교육학)의 글 「‘교육’과 ‘연구’의 관점에서 본 대학원교육의 문제」,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학)의 글 「대학교육 체제의 현황과 문제」에서부터, 이공계·인문사회·과학기술 분야 고급 인력 문제를 점검한 노혜정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의 글 「이공계 전문인력 양성의 허와 실」, 신윤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의 글 「인문사회 분야 고급 연구인력 수급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의 「과학기술 분야 고급 연구인력 양성 정책의 현안 과제」가 또한 지혜를 모색하고 있다.

<교수신문>은 <지식의 지평>이 제기한 화두가 우리 시대 대학과 국가, 학문 공동체가 풀어가야 할 시급한 사안이라는 점에 공감, 이태수·노혜정·신윤환·류지성 등이 제기한 문제의식의 주요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더 많은 혜안과 지혜를 모아내기 위해서다.

이태수 인제대 교수
박사학위 양산 체제의 문제점
이태수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인제대 교수(철학)
"정말 대학이 경각심 가져할 것은 학위의 질 관리 문제다"

그러나 정말 대학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학위의 질 관리 문제다. 미래의 발전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대학이 배출한 고급인력이 사회 각 부문에서 학위에 걸맞은 기여를 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현재 일자리를 찾지 못한 많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있다는 것도 사회적 손실로 계산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제값을 다 못하는 인력이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심각하게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수요와 공급의 괴리는 양적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대학에서 수여하는 박사학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는 그리 높지 않은데, 시간이 갈수록 그 신뢰가 더 약화되어가는 것 같다. 그 결말은, 국내 대학 출신의 박사인력은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해야 할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인력으로 취급되어 대학에서든 기업에서든 철저히 외면당하고 고급인력에 대한 우리 시장의 수요를 모조리 선진 외국 대학이 충족시켜주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학위의 질 관리를 위해 정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슷하게 고등교육 부문에서는 대체로 자유시장 체제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대학설립 준칙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그와 같은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렇지만 최근의 대학 퇴출 사태는, 필요하면 국가가 그 자유시장에도 직접 개입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학위의 질관리도 대학 자율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일 수도 있다. 가령 독일처럼 박사학위에 더해 교수자격논문 제도(Habilitation)와 같은 것을 마련하거나 박사학위에 대한 별도의 공인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내어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것 등이 그런 통제권을 행사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구체적인 제안은 실현할 방도가 전혀 마땅치 않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지 대학인들이나 정부는 학위의 질 관리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적은 아직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그저 수수방관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직접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학위 질 관리를 위한 대학인들의 노력을 촉진하고 고무하는 유도 방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금부터라도 대학인들 스스로가 성의를 내서 학위의 질 관리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학사회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박사학위 공급 라인을 정비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노정혜 서울대 교수
이공계 전문인력 양성의 허와 실
노정혜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
"독자적 연구 수행할 수 있는 인력 양성해야…다양한 진로에 대한 방향잡기 교육도 필요"

앞서 지적한 대로 지식기반사회로 갈수록 박사급 전문인력의 수요는 많아질 수밖에 없고,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박사 인력 규모는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나라의 인구 규모를 고려하면 현재보다 박사급 인력이 약 10만 명 더 있어야 OECD 평균치에 다다른다. 그렇다고 단기간에 박사학위자를 양산해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박사급 인력을 국내에서 양성하되, 국외에서 훈련된 인력을 유치 확보하는 전략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국내 대학원의 경우는 교육의 질을 국제적 기준으로 높이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논문을 쓰는 일꾼(work force)으로서의 역할 이전에,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주도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후배 연구자들을 길러내는 일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국제화의 경우도, 단지 외국학회에 참가하여 안목을 넓히는 수준을 넘어서, 학문과 기술의 국제 동향을 실시간으로 살피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능동적 태도를 가진 예비 전문가로 클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 외국의 학자를 초빙할 때도, 국내 인력을 국외로 연수 보낼 때도 대학원생의 역량을 독립적 탐구자에 걸맞게 키우는 데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 대학원 학위과정 동안 시간적으로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학업에 매몰되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다양한 진로에 대한 방향잡기 교육이다. 이는 지도교수도 대학원생도 학위과정의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생각을 유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미래 전망이 어려운 탓도 있으나, 학자나 연구자로 남는 길을 막연히 숭상하는 전통적 관성과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사급 전문가들이 자리 잡는 곳이 주로 학계나 정부 연구소이던 시절이 이제 급속히 지나가고 있는데도, 다양한 다른 직업군에 대한 선호도나 정보 수준이 여전히 낮아 자신의 향후 진로를 미리미리 디자인해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현재 우리 교육의 맹점이다. 교수와 학생 모두 국내외의 다양한 직업 경로에 관심을 열어두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려는 시도가 대학원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한몫할 것이다.

신윤환 서강대 교수
인문사회 분야 고급 연구인력 수급의 현황과 문제점
신윤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
"국가가 직접 인문사회계열 연구소 설립해 고급인력 문제 해결하는 것도 대안"

필자가 제안하는 두 번째 방안 역시 인문사회 분야 고급 연구인력의 수요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공급 측면을 개선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원칙은 현재 흩어져 있는 각종 인문사회 분야 연구지원 프로그램을 규모가 있는 연구소로 체계화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이 제공하는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은 대부분 단편적·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박사연구자들에게 2~3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원금이나 연구비를 주고 형식적인 논문 몇 편만 제출하게 하는 현재의 지원 프로그램들은 수준 낮은 연구 성과만 양산하여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박사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연구 환경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끔, 그러면서 경쟁적 연구 분위기를 통해 수준 높은 연구 성과가 보상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자유로운 경쟁과 비교적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소수의 연구소를 선정하고 이 연구소들로 하여금 우수한 연구인력을 채용하여 안정된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정년을 보장해주는 인문한국(HK) 지원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시도된 프로그램 중에 가장 성공적으로 보이지만, 수만 명에 이르는 인문사회계열 비전임박사들을 구제하거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은 국가가 직접 인문사회과학 계열의 연구소를 설립하여 이 분야 고급 연구인력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길이다. 이 연구소는 일부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운영하는 사회과학연구원과 유사하고, 한국에서 이미 심심찮게 제안된 ‘국가인문학연구소’와 유사하게 들리지만, 필자가 제안하는 연구소는 보편적 기회, 경쟁적 생존, 소수의 정년 보장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필자가 제안하는 세 번째는 고급 연구인력의 공급을 전면적으로 조절하는 방안이다. 구체적으로는, 공급에 대한 제한을 통해 박사학위 취득자의 수를 줄이고 이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원과정을 축소하고 학위 수여 자격을 강화하도록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지난 20여 년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증명된 바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국가에 대학 정원 조정에 대한 최종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대학 간 정원 늘리기 경쟁을 부추기는 역설적 결과만 낳고 있다.

또한 설사 지나치게 많은 대학원 수를 줄이기 위해 소수의 대학에만 대학원교육과 박사양성을 맡긴다 할지라도, 특정 분야의 전공 교수들이 그 대학원에 재직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선정에서 탈락한 대학원에 있을 수도 있는 우수한 교수들에게 대학원교육의 기회를 빼앗는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낳게 된다.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은 명문대학의 경우에도 대부분 규모의 경제가 없는 10명 정도의 교수진을 가진 군소 학과를 면하지 못하고 있고, 이런 처지로 유수의 외국 명문대학들과 경쟁을 하겠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몇 개의 대학원을 통합 운영하거나 학점교환제를 도입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학점교환제를 실시하는 일부 대학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학원 간 장벽을 허물기에는 그 범위도 좁고 활용도 또한 지나치게 낮다.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과학기술 분야 고급 연구인력 양성 정책의 현안 과제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지금은 창의형 혁신모델로 전환할 때…미스매치 문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한국이 모방형 산업발전 모델에서 창의형 혁신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를 선도할 과학기술 고급 연구인력의 미스매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첫째, 국가 차원의 고급 연구인력 양성을 위한 장기적인 종합대책과 함께 정부 부처 간, 기업과 대학 간 실제적인 협력과 연계가 가능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과학기술정책 분야별 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부처 간 협력이 보편화된 추세이지만 실제는 계획 수립을 위한 한시적인 협력 위주이고 지속적인 연계와 실질적인 협력은 부족하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부처 간 협력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 미국은 2010년 국가나노사업(National Nano Initiative)을 하면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를 중심으로 23개 연방 부처·기관이 참여하는 공동기획을 했다. 일본은 종합과학기술회의를 중심으로 범부처 공통플랫폼 기술, 부처 간 현안 및 애로기술을 지원하는 과학기술연계시책군을 운영하고 있다.

둘째, 미래 유망산업의 고급 연구인력이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먼저 기업은 대학에 구체적인 연구 과제와 인력 수요를 발신해주어야 한다. 구글(Google)이 대학원생들에게 다양한 연구과제를 제시하고 선발된 학생에게 건당 연 5만~6만 달러의 연구비, 구글엔지니어와의 공동연구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 중 상당수를 채용하는 형태를 통해 고급인력을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대학 - 정부 - 산업 - 출연(연)이 공동 협력하면서 필요 인력을 양성, 공급,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추어야 한다. 중국의 세계 1위 태양광 산업을 이끄는 황밍(皇明)태양에너지 밸리의 경우, 황밍태양에너지공정기술학원(대학)에서 최고의 태양에너지 전문인력을 양성·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주변의 태양에너지 기업들과의 산학협력, 더저우(德州) 시(산둥 성)의 정책 지원, 중국과학원 황밍연구소(출연연구소)의 최신 해외 연구 정보 공급 등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셋째, 기업과 대학이 실제적인 산학협력을 위해 서로에 대한 인식 차이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고급 연구인력 양성과 확보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만큼 기업은 보다 중장기적인 연구개발 마인드와 법적 권리 및 이익 배분에 대해 대학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또한 기업은 대학이 고급 연구인력의 핵심 공급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대학의 교육과정 개발, 실험장비 등 인프라 제공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동시에 대학은 기업의 필요를 명확히 파악할 뿐 아니라 기업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실용적 마인드와 혁신 역량을 더욱 개발해야 한다. 정부 또한 대학과 기업 양쪽을 연계하고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하고 관련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대학의 각종 산학협력 사업 관련 정보를 체계화하고 활용도를 높이는 인프라 투자 또한 강화해야 한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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