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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교수’가 되는 10가지 방법
‘실직 교수’가 되는 10가지 방법
  • 김희연 기자
  • 승인 2012.05.07 10: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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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보장심사를 둘러싼 미국 대학가 풍경

“Q. 가장 자살률이 높은 집단은? A. 정년보장심사를 앞둔 조교수.”

미국 대학에서 통용되는 이 농담은 정년보장심사에 대한 압박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으면 재계약을 통해 해고될 수 있는 불안한 지위에 처하기 때문이다.

미국 고등교육 전문지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 지난달 25일자에는 미국 제도를 좇아가는 한국 대학의 교수들도 그냥 웃고 넘기기 어려운 기사가 실렸다. ‘당신이 해고되는 10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온라인에 올라간 지 2일 만에 조회수ㆍ댓글 1순위에 동시에 랭크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스스로를 인문학 강사라고 밝힌 글쓴이는 기사를 통해 비정년트랙 교수들이 ‘잘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다음은 해고될 수 있는 10가지 방법이다. △교수 모임에 나가지 않기 △추천서 요청하기 △교직원 신뢰하기 △학교기관에 밉보이기 △학생들 화나게 하기 △교수 평가 웹사이트 및 기타 미디어 무시하기 △출판에 매진하기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기 △민주주의를 당연히 여기기 △선배교수 논문 비판하기 등이다.

정년 보장 되지 않은 교수들의 비애

물론 비정년 교수들에게 위 10가지 방법은 금지된 목록에 가깝다. 대부분은 해고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비정년 교수들은 모든 교수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결석하면 공동체 의식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수업이 있더라도 취소하고 참석하고, 기관지염이 있어도 항생제를 입에 털어 넣고라도 가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표면적으로는 인간적인 ‘정’이 강조되는 것이다.

윗사람에게 추천서를 요청하는 것도 금물이다. 떠날 사람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반역적인 행위로 비칠 수 있다. 교직원도 믿으면 안 된다. 교직원의 상사는 학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페이스북’ 친구라도 맺으면 사찰당할 수도 있다.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교육 평가 보고서에 등장하는 “흥미롭게 봤습니다” 둥의 학교 측 수사를 그대로 믿으면 순진한 생각이다. 오로지 계약 연장이야말로 유일한 칭찬으로 여겨야 한다.

학생은 두려운 존재로 묘사된다. 평소 불평불만 많았던 학생을 글쓰기 지도 센터 같은 교내 기관에 보내지 말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말을 접한 기관 관계자의 한 마디가 재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당연히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선생님이라서가 아니라 적은 학생들의 나쁜 교수 평가로도 계약 연장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RateMyProfessors.com(미국 방송사 MTV에서 운영하는 교수 평가 사이트) 등 미디어 평가도 중요하다. 신뢰성이 없는 익명의 리뷰라 하더라도 교수 평가에 자주 인용된다.

학자로서의 자존심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연구 결과를 출판하는 것은 출세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수평가도 학문 성취보다는 교육에 더 기반을 둔다. 출판이 연구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동료 교수들의 질시를 받는” 등 교수 지위 연장과는 관련이 없다.

아카데미 민주주의?

학내에서 민주주의가 기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금물이다. 아무리 임용위원회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사람’이 재임용과 정년보장심사에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임용심사에서 탈락한 이유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항의해도 소용없다.

교수협회는 이에 대해 비판하지만 대부분 정년트랙 교수들이고 자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약간만 도움 될 뿐이다. 정작 비정년 교수들은 약자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같은 비정년 교수 동료들은 제각기 살 길 찾아 바쁘다.

교수가 여론ㆍ권력자ㆍ정부와 대립할 때, 또는 인기 없는 분야를 연구할 때 교수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교수정년제도. 도입된 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 제도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밀어닥치고 있다.

기사 말미에 글쓴이가 덧붙이는 미국 대학의 풍경은 끝까지 살벌하다. “학자로서의 존엄을 갖고 효율적으로 일했는데도 실직했다는 무서운 이야기들은 수많은 계약직 교수에게 익숙하다.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존경받는 교수들조차 당신 이력서와 평가 지표나 잘 챙기라는 조언을 해줄 것이다.”

김희연 기자 gom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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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추종자 2012-05-15 13:21:15
교수라는 것 어원 자체가 전문 분야에 대해서 왕권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자기 분야에서 실력이 좋으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명한 독일인 과학자-내용에 영문 불가하여 이름 못 적음-처럼 자기 전공에서 황제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교수제도에서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미국은 이미 국제적으로 자기 분야에서 1인자로 인정받은 사람이 많은 걸로 알고있는데요
교수가 사회에서 귀족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세계 무대로 경쟁자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초기단계가 과기원에서 도입한 정년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 의견 위 주소로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