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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재산은 무주공산? 시스템 개혁 필요
법인재산은 무주공산? 시스템 개혁 필요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2.05.07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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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 고려대 이사장 사퇴 부른 투자 손실

 

김정배 고려대 이사장이 법인의 유동성 현금자산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고 법인을 비판하고 나섰다. 학생들은 법인이 투자한 자산의 상당부분이 '이월금', 경영대학 발전기금 등 대학재정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법인 측은 그러나 "법인의 유동성 현금자산을 금융상품에 투자한 것은 등록금과 전혀 무관하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고려대 안암캠퍼스 민주광장에 문과대학 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등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고려대 학교법인인 고려중앙학원의 김정배 이사장이 임기를 2년여 남기고 지난달 24일 사퇴했다. 직접적 발단은 재단이 100억 원이 넘는 투자 손실을 입은 사건이다. 재단 이사장이 투자 손실 때문에 사퇴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법인이 위험성 높은 자산에 투자해 거액의 손실을 입어 재정 안정성을 위협하는 일은 이미 예견됐었다는 평이다. 그만큼 법인회계의 투명성과 법인의 책무성이 제대로 담보되지 않은 현실 탓이다.

고려대 학교법인은 500억 원 정도의 유동성 현금자산을 파생금융상품의 하나인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했다가 5월 현재 100억 원대의 투자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500억 원이면 지난해 10월 당시 학교법인이 보유하고 있던 유동성 현금자산의 거의 대부분(81.7%)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심의나 의결은 없었다. 법인 자산은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으로 구분하는데,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한 유동성 현금자산은 보통재산이라는 이유에서다. 기본재산에 포함되는 교육용 기본재산이나 수익용 기본재산, 적립금과 달리 보통재산은 이렇다 할 법적 규정이 없다. 수익이 나면 좋지만 손실이 생겨도 어쩔 수 없는 ‘꽃놀이패’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법령 해석상의 문제라는 반론도 있다. 사립학교법 제16조 이사회의 기능에는 이사회에서 심의·의결해야 할 사안으로 ‘학교법인의 예산·결산·차입금 및 재산의 취득·처분과 관리에 관한 사항’이나 ‘학교법인이 설치한 사립학교의 경영에 관한 중요사항’을 들고 있는데 보통재산의 처분도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은희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보통재산의 범위가 광범위해 웬만한 투자는 이사회 의결 없이 할 수 있다. 보통재산이라 해도 사립학교법 16조를 적용할 수 있는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고려중앙학원 이사회에서 ㅇ감사는 “법인이 고위험성 자산에 투자하면서 이사회의 심의나 의결이 없었고, 또 이사회에 그 규모와 위험성을 보고한 바 없고 오히려 위험이 낮은 투자인 것처럼 왜곡 보고하는 등 중대한 절차상의 위법을 저질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인의 책무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법인의 존재 이유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서 학교에 지원하는 데에 있다. 설사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해도 위험성 높은 금융상품에 투자해 재정 안정성을 흔드는 것은 법인의 책무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파생금융상품에 500억원을 투자한 고려대 학교법인이지만 법인이 부담해야 할 법정부담금은 3년째 교비회계에서 지출하고 있다. 건축비 부담은 원칙적으로 학교법인의 의무인데도 지난해에는 자산 전입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는 고려대뿐 아니라 사립대에 일반화된 관행이기도 하다.

박정원 상지대 교수(경제학)는 “법인회계는 통제할 수 있는 기구가 없다”며 “재정 상태를 매년 공개하고 수익이나 손실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미국 사립대처럼 교수·학생·직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는 제도를 도입하면 일부 이사에 의한 전횡을 막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임은희 연구원은 “법인회계의 경우 내부 감사도 받고 학생 수가 1천명인 이상 대학은 외부 회계감사도 받도록 했지만 형식적”이라며 “고려대는 지금까지 종합감사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국립대처럼 사립대도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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