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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파인더'가 잡아낸 '낯선 일상'
'소외의 파인더'가 잡아낸 '낯선 일상'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2.04.30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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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전공 김승현 고려대 교수의 특별한 사진展

전시장 앞에 선 김승현 교수. 뒤로 보이는 바로 왼쪽 사진이 사진 전 '낯선 일상'의 대표작인 #1 이다. 사진 속 등을 보인 남자가 자신이라고 설명한다. 사진=김영철
서울 북촌 통의동, 그 인근 경복궁의 한 대문인 ‘영추문’ 맞은 편 골목에, 딱 그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는 사진 전시실이 있다. 작고 소박한, 그러나 사진 사랑이 물씬 풍겨나는 전시실이다. 여기에서 지난 17일부터 열리고 있는 사진전이 예사롭지 않다. 프로 사진가가 아닌, 사회과학을 가르치는 현직 대학교수의 사진전이라는 게 그렇고, 특히 사진들이 그렇다. ‘낯선 일상’이란 사진전의 타이틀이 이를 대변한다. ‘일상’이면 뭔가 모르게 익숙함 같은 게 배여 있는 말인데, 그 앞에 ‘낯선’이란 형용어가 붙었다. 역설적인 매칭이 아닌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낯선 일상’인가?  “사회적 구조 속에 소외된 인간의 모습이 그러한 것이고, 그런 것을 사진을 통해 나타내려 했다”는 간단하고 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여자, 눈 오는 날 우산을 쓴 퇴근길의 남자, 철로 변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의 사람들,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남자,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과 무관하게 걸어가는 남자…. 김 교수의 사진들은 이런 모습들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언뜻 보면 아주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로 보인다. 그런데, 김 교수의 사진들에서 이런 일상적인 모습들은 역설적이게도 ‘일상적’이지 않게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설다. 일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생경한 모습들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눌한 투의 김 교수의 말이 이어진다. “사진 속의 인간은 이런 모습이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와 있지. 지나치고 다시 봤는데, 아니 이 사람이 여기서 뭘 하는 건지라는 반문과 함께 낯설게 느껴지는….” ‘낯선 일상’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들어맞는, 이번에 전시된 사진들 중 대표작으로 꼽혀지는 사진 ‘#01’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이 주는 의미는 보는 느낌으로 알 수 있지만 김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좀 난해해진다. 사진 속의 남자가 김 교수 자신이라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자신이 바로 그 남자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로 같은 학교에 있는 이남호 교수는 김 교수의 이런 식 사진을 두고 ‘소외의 뷰파인더’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거대하고 억압적인 세계 속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자주 환기시켜 준다. 그런 사진 속에서 세계는 강하고 거대하게 표현되며 인간은 작고 허약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그 인간들은 자신이 거대하고 억압적인 세계 속에 갇혀 불안하고 위태롭게 존재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 그 것을 낯설게 의식시켜주는 것은 사진 속의 인물이 아니라 작가의 개성적 뷰파인더”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1’ 사진 속 남자가 바로 작가의 개성적 뷰파인더로서, 인간의 소외감을 부각시켜주는 ‘도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교수는 “사진 속 인물은 거대 세계로부터 소외돼 있고, 작가의 뷰파인더는 무심한 인물로부터 소외돼 있다. 이 이중의 소외가 김승현의 사진을 일상의 낯선 진실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 되게 만드는 것 같다”며 김 교수 사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김 교수 사진의 주제는 ‘인간’, 더 구체적으로는 ‘인물’이다. “특히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들이 사회 속에서 흔적을 남긴 인간의 얼굴들, 사회구조 속에 찌그러져있는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가겠다”는 말에서 그런 의지가 읽혀진다.

김 교수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그 연조가 깊다. 미국 유학시절, 처음 사진을 접한 후 모교인 고려대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면서 ‘보도사진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라이카 카메라 동호인 모임인 ‘라이카 클럽’에 들어가면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진하기’에 몰두해오고 있다. 사진 그 자체는 물론이고 사진기의 종류와 렌즈의 비교, 필름에 대한 토론, 출사지의 선택, 기후에 따른 사진의 변화와 노출상태, 함께 출사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상태 등 사진을 만들기 위한 모든 행위들을 포함하는 게 김 교수의 ‘사진하기’이다.

김 교수의 사진은 당연히 아날로그的이다. 필름에다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는 게 그렇고, 흑백사진에 집착한다는 게 그렇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소 복고적이다. “아버지 세대가 한 것이니까, 보고 따라하면서 옛날로 돌아가는 느낌도 있고….” 기계와 인간의 결합에 있어 인간의 포숀(portion)을 우선하는 게 좋다는 것도 김 교수 사진의 아날로그的 분위기를 더하는 한 요소가 될 것이다.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은 싫다. 내가 관여해서 주도하고 조정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물이 더 좋고 애착이 간다. 이런 점에서 나의 ‘사진하기’는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디지털카메라 안 쓰려고 발버둥 친다.”

이번 사진전은 김 교수로서는 첫 번째 사진전이다. 이번 사진전을 위해 김 교수는 자신이 찍은 그동안의 사진을 추려내느라 애를 썼다. 2개월에 걸쳐 1만2천장에서 100장을 추리고, 다시 30장을 가려낸 게 이번 전시에 걸린 사진들이다. 후배인 <한겨레> 곽윤섭 기자의 도움이 컸다. 김 교수의 ‘사진하기’는 계속될 것이고, 이에는 당연히 다음 전시회가 포함될 것이다. 전시회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배가 100장을 별도로 추려냈는데, 그 게 다음 전시회 사진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넌지시 시사한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71학번인 김 교수는 1986년 미국 미조리대학에서 언론학박사를 했다. 한국으로 와 경북대 교수를 역임한 후 1989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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