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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인문학, 시야를 넓히자
원로칼럼_ 인문학, 시야를 넓히자
  •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미술사
  • 승인 2012.04.2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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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미술사
요즘 흔히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들을 한다. 또 그 위기의 원인으로 연구비 지원의 부족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연구비 이외의 원인들을 진지하게 찾아서 검토하고 처방을 내놓는 사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필자를 포함한 인문학자들 모두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아울러 개선 방안도 생각해봐야 할  시점에 있다고 본다.

인문학 위기의 원인은 사회경제적 여건 이상으로 인문학자들 스스로가 배태하고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인문학의 발전 여부는 일차적으로 연구자들의 자질, 성향, 시각, 자세, 실력 등 다양한 내재적 요인들에 의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좁은 시야, 지나친 보수성과 배타성, 내 분야만의 제일주의와 자신의 전공 분야만 챙기는 ‘전공 이기주의’, 타 분야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와 경시, 학제 간 협력의 부족, 문학 이외의 예술에 대한 무관심 등도 인문학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내재적 요인들이라  하겠다. 이러한 내재적 요인들이 연구비 등 외부적 요인들보다 ‘위기’의 훨씬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로서 대부분 인문학자들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서 개선 여부가 쉽게 갈릴 수 있다고 믿어진다.

인문학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 필자는 무엇보다도 모든 인문학자들 스스로가 제한된 자신만의 視界를 벗어나 학문의 地平과 시야를 대폭적으로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좁고 고루한 ‘전공 제일주의’를 벗어나 마음을 크게 열고 시야와 식견을 대폭 넓히는 일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다음의 몇 가지를 유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다른 분야들을 눈여겨보자. 우리나라 인문학자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학문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다른 분야들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視하는 성향을 짙게 띠고 있다. 심지어 ‘그런 분야도 있나?, 그런 분야도 학문인가?’라는 태도를 보이는 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외곬의 시각과 생각, 타 분야들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가 결국은 자신의 학문을 폐쇄적인 경향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시야가 확 트인 훌륭한 후배 인문학자의 출현조차 가로막게 된다. 격변하는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일이다.

타 분야들은 연구의 대상과 방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이 하는 학문과는 색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서 자기 자신의 연구에 새로운 영감과 도움을 제공해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분야의 전공자처럼 깊이 천착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최소한 새로운 연구를 위한 유익한 아이디어만은 많이 얻을 수가 있다. 지진 등 자연 재해를 추적한 과학분야의 업적을 참조해 옛날 우리나라의 사회변동을 규명한 어느 국사학자의 업적, 인류학의 듀얼리즘 이론을 참고해 우리나라 고대 사회의 이중 구조를 밝힌 또 다른 국사학자의 기여 등은 다른 분야를 살펴서 자신의 독보적 업적을 낸 대표적 사례로 꼽을 만하다. 이러한 사례가 어찌 한두 가지뿐이겠는가.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들이다.

둘째, 미개척 분야들을 지켜보자. 학문의 수많은 타 분야들 중에서도 특히 미개척 분야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크다. 미개척 분야들은 인류의 발달, 학문의 분화, 사회적 요구의 증대, 국가적 필요성 등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신생 학문들이다. 따라서 이 분야들은 여러 면에서 기존의 분야들과는 현저히 다른 차이를 지니고 있어서 참고의 여지 또한 더욱 크다. 이 분야들은 기존의 학문들이 연구하지 않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며 방법론 역시 색다르다. 국가적으로도 긴요한 학문들이다. 그런데 어찌 이 미개척 분야들을 외면하거나 경시할 수 있겠는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인문학만이 아니라 학문 전체의 발전에 참고가 되고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예술의 각 분야들을 들여다보자.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과 영화 등 예술의 각 분야는 인간의 미적 창의력과 감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또 제일 분명하게 드러낸다. 즉 인문학이 연구하고자 하는 요소들을 더없이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寶庫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제외한 다른 예술 분야들은 충분히 연구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만 봐도 문헌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역사적, 문화적 사실들이 확인된다. 모든 미술작품들은 기록과 마찬가지로 사료임을 말해 준다. 다른 예술 분야들도 대동소이하다.

넷째, 인문학의 틀을 바꾸자. 이제는 ‘文·史·哲’이라는 기왕의 인문학적 틀을 예술을 포함해  ‘文·史·哲·藝’의 4대 덕목이나 혹은 ‘藝(문학 포함)·史·哲’의 새로운 3대 덕목으로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예술을 빼고 인문학을 논할 수 없다. 인문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열린 자세, 편견 없는 넓은 식견과 시야, 높은 안목, 상부상조의 협업정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우리 인문학자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시대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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