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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심화가 사회통합·복지 필요성 불렀다
양극화 심화가 사회통합·복지 필요성 불렀다
  • 설동훈 전북대·사회학
  • 승인 2012.04.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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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키워드’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_ 분석과 전망

설동훈 전북대·사회학
<교수신문>이 전국의 대학 교수 550명을 대상으로 ‘향후 10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할 키워드’를 세 가지씩 꼽으라고 한 결과, ‘복지’(16.0%), ‘사회통합’(15.3%), ‘양극화’(12.3%), ‘저출산·고령’(12.0%), ‘통일’(10.6%), ‘다문화’(4.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3년 전 <교수신문>의 ‘2020년 한국사회를 지배할 핵심 키워드’ 조사에서는 ‘저출산·고령화’와 ‘통일’ 및 ‘다문화’의 순이었다. 그 세 가지 키워드는 올해 조사에서도 여전히 지적됐지만 후순위로 처졌고, 복지·사회통합·양극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3년 전 조사에서는 2120년 시점의 키워드를 질문했다면, 올해 조사에서는 2010년대를 지배할 키워드를 질문했다는 점이 차이가 난다. 조사 문항의 미묘한 어감 차이에서 비롯된 차이도 있지만, 2009년과 2012년이라는 조사 시점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진다.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지만 사회적 양극화는 점점 심화됐고, 그에 따른 사회집단 간 갈등이 부각됨에 따라 사회통합의 필요성이 대두됐으며, 그에 따라 한국의 주요 정치세력들이 한결같이 사회통합을 위한 핵심 개념으로 복지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2010년 6·2지방선거 과정에서 무상급식이 쟁점으로 등장했고, 그 후 대학의 반값등록금 쟁점이 학생운동의 의제에서 교육정책으로 전환됐다. 그러한 시대 상황 변화를 반영해, 제19대 총선에서 주요 정당들이 무상양육·무상교육·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걸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증가로 중산층 줄고 양극화 심화 

사회적 양극화는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의 이면 현상이다. 경제성장의 성과로 절대적 빈곤에서 탈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남에 따라 중산층이 줄어들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7년 말 한국경제를 강타한 외환위기 이후, 전체 임금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2011년 3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577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33.8%였다. 그 내부 구성을 살펴보면, 한시적 노동자가 337만명(그 중 기간제 노동자 247만명), 시간제 노동자가 153만명, 비전형 노동자가 231만명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노동조건·복지혜택에서의 차별 대우를 감수해야 하며,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사용자들에 의해 종종 자행되는 위법·탈법행위에 노출돼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성별로 분석해보면,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므로,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는 성별 임금격차로도 표출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변화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빈곤을 확대했고, 중산층 붕괴를 초래했다. 이미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던 사회에서 나타난 신빈곤은 저개발국의 빈곤과는 양상이 다르다. 굶주림이나 헐벗음 같은 형태의 절대적 빈곤보다는 그 사회에서의 평균적 삶의 기준에 못 미치는 상대적 빈곤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중산층의 비율이 줄어들고, 빈곤층의 비율이 크게 늘면서 고소득층도 소폭 증가함에 따라, 소득 수준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중산층의 감소도 중요하지만, 빈곤층의 수와 비율이 모두 크게 늘었다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 될 사안이다. 한 마디로 말해, 한국사회에서 ‘소득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보다 빈곤 가구 비율 더 높아

2인 이상 전체 가구를 기준으로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 비율을 살펴보면, 2003년을 계기로 그 값이 크게 높아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절대빈곤율은 전체인구 중 최저생계비 수준에 미달하는 비율을 말하므로, 최저생계비에 따라 절대빈곤율이 달라진다. 정부는 물가 인상률을 반영해 최저생계비를 꾸준히 인상해 왔다. 2003년 이후 한국은 절대적 빈곤율은 10~11% 수준을, 상대적 빈곤율은 14~1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한 전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중위 50%)은 2004년 15.0%이었고, 약간의 등락을 기록하다가 2009년에는 15.1%였다. 그것은 외환 위기의 충격이 지속되고 있었던 2001년의 9.7%과 비교해 봐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상대빈곤율을 기준으로 보면, 최근 몇 년이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외환위기 직후보다 빈곤한 가구의 비율이 더 높다는 뜻이다. 그것은 최근 소득 양극화가 과거보다 더 심화됐음을 의미한다. 소득 양극화는 경제는 성장하지만 그 과실이 전 소득계층에 고루 퍼지지 못할 때 나타난다.

사회적 양극화는 사회집단 간 갈등의 양상이 다변화되고 심각해지는 현상을 동반하고, 자연스레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사회통합을 비통합적인 상태에 있는 사회 내 집단이나 개인을 단일의 집합의 일원으로 끌어들여 껴안는 것으로 파악하면, 사회통합의 필요성 증대란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동의어임을 알 수 있다. 사회통합은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표이자 전략이다.

사회복지, ‘무상시리즈’로서만 이해해선 곤란

사회복지는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삶의 조건을 보장하고 그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을 달성하려고 하는 사회적 활동의 총체를 뜻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을 시민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고, 시민의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국가의 책임 아래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사회복지를 ‘무상 시리즈’로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일자리 창출, 사회의 공정성 증대 등을 통해 사회구조를 개편하는 것과도 맞물려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재정확보 대책이다. 그리고 복지 정책을 우선순위를 정해 시행해야 한다. 쪽방촌 사람들과 노숙인 및 근로빈곤층 등 대상별 복지와 보육·교육·의료 등 보편적 복지의 쟁점을 구분해 추진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 향후 10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할 키워드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을 어떻게 완화시키는 것과 관련돼 있다. 소득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통합’의 목표를 ‘복지’ 정책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당면 과제다. 그러므로 ‘2020년의 키워드’와 ‘향후 10년간의 키워드’는 다르다.


설동훈 전북대·사회학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사회』, 『韓國の少子高齡化と格差社會』 등의 저서가 있고, 현재 전북대 다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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