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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어 ‘哲學’이 놓친 ‘philo 愛·希’의 황금빛 옷자락에 손을 내밀다
번역어 ‘哲學’이 놓친 ‘philo 愛·希’의 황금빛 옷자락에 손을 내밀다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 승인 2012.04.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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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유랑·상상·인문학16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을 찾아서

요하네스 베르메르, <델프트 풍경>, 1660-61년경, 캔버스에 유채, 98.5×117.5cm, 덴하그 ‘마우리츠하우스 미술관’

“나도 글을 저렇게 썼어야 했는데(…) 문장 자체가 이 노란 벽의 작은 자락처럼 진귀해지도록 했어야 했는데.” 소설가 베르고뜨는 남은 힘을 다해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앞에서 이 말을 남기고 쓰러져, 숨을 거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명장면 중의 하나다.

프루스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평가한 「델프트 풍경(View of Delft)」. 나도 네덜란드에 온 김에 그 그림이 보고 싶었다. 라이덴에서 기차를 타고, 두 번이나 덴하그(헤이그)의 ‘마우리츠하우스 미술관’엘 갔다.

마우리츠 하우스 소장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실제 모습. 사진=최재목
요하네스(혹은 얀) 베르메르(Johannes(Jan) Vermeer, 1632~1675)는 네덜란드가 자랑으로 삼는 빈센트 반 고흐와 더불어 한국과 일본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 그는 렘브란트, 할스와 함께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시대인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 이름 있는 화가 치고는 그림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평생 그린 작품이래야, 진위 논란이 있는 것을 포함해서, 고작 30~40여 편. 그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이것은 소설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를 비롯해, 대부분 명작으로 평가되고 인기도 높다.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를 두 번이나 가서 봤으나, 왠지 더 끌리는 것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쪽이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예컨대 기독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읽어내기 힘든 고전회화(특히 이탈리아의 종교화, 역사화)에서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머리를 아프게 하는 종교적인 상징성, 알레고리(寓意)가 별로 없다. 설명이 필요 없이, 누구나 쉽게 다가서서, 그냥 보고 느끼기에 족하다. 이 점에선 빈센트의 작품도 마찬가지. 베르메르의 그림은 대체로 숭고하고, 따뜻하고, 편안하다. 물론 평론가들의 글을 읽다보면 좀 복잡한 내막들도 보인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두고 느낌이 오는 대로 일단 감상해보자.  

마우리츠하우스 미술관을 관람한 뒤, 다시 덴하그에서 베르메르의 고향 델프트라는 곳으로 간다. 「델프트 풍경」의 배경이 된 곳. 헤이그와 로테르담 중간에 위치한, 스히(Schie) 강이 흐르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 중의 하나다. 그는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

델프트 역에 내려 천천히 걸어 들어가다 보면 그림 속에 나오는, 폭 넓은 운하의 물결과 마주친다. 델프트엔 네덜란드를 만든 현재 왕가의 시조인 오라녜(Orange)공이 살았고, 그 일가의 무덤이 신교회의 지하실에 있다.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을 보면, 스히 강을 배경으로, 약간 어두운 듯한 구교회와 달리 신교회 쪽은 밝은 빛이 쬐여, 교회의 벽면이 온통 ‘황금 빛’을 이루고 있다. 이유는 뭘까. 오라녜 왕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란다.

베르메르의「델프트의 풍경」의 배경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중앙에 있는 교회는 베르메르 그림 속에 보이는 ‘구교회’의 현재 모습이다. 사진=최재목

이 베르메르의 그림 속 황금 빛 교회 벽면은, 프루스트의 소설 속에서 “나도 글을 저렇게 썼어야 했는데”라는 감탄에만 머물지 않고 ‘문장’을 ‘진귀’하게 다듬어내야 한다는 새로운 발상을 촉발한다. 讀法은 새로운 맥락을 만들고.「노란 벽의 작은 자락」하나가 베르고뜨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그런 숨 멎을 순간을 프루스트는 붙들었다.

여기서 나는 나대로, 문득 새로운 것을 읽는다. 誤讀이라도 좋다. 그 빛나는「노란 벽의 작은 자락」은 철학의 精華, 아니 벼의 싹을 틔우는 푸른 ‘쌀 눈’(精)같은 것. 아마도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가 번역어 ‘哲學’ 개념을 다듬어 낼 때 소거해버린=놓쳐버린 philosophia(愛智)의 에스프리인 ‘philo(愛)’일지도. ‘希哲學’에서 끝내 ‘哲學’으로 확정해낼 때, 과일 꼭지 떼 내듯 싹둑 자른 ‘希’의 정신일지도. 철학이란 造語가 내팽개친, 그래서 상실한 ‘philo-愛-希’의 정신을 나는 목도하고 만다.

원래 니시 아마네의 번역어 철학은 실증과학적, 주지주의적인 것이었다. 철학보다는 ‘原學’이라는 말이 필로소피아에 더 육박한다 했던 李寬容(1891~1933)의 주장에 나는 공감한다. 原學을 향한 뜨거운 希求의 정신은 사라지고, 오직 속 좁은, 논리의 차가운 칼질에 골몰해 온 철학. 결국 분과 학문의 길을 자초했다. 이런 분과학으로서 철학은 이제 유통기한 만료됐으면 한다. 지난 시대의 지평 너머로, 아득히 저물어 갔으면 한다.

그런 소실점의 끝자락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던 내 유년의 풍경을 떠올리듯, 근대기 역사 속에서 망각한 필로소피아의 정신이 다시 회상됐으면 한다. 필로소피아는, 풍류가 아닌 곳에 풍류가 있듯(不風流處也風流), ‘철학’이란 번역어 권역 밖에서, 희미한 배경으로, 도처에 면면 존속해오고 있다.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 속 저 한줄기 ‘빛’처럼. 지혜를 찾는 자의 창문을 두드리며. 델프트를 떠나며, 노을 아래서 나는 ‘philo 愛·希’의 황금빛 옷자락에 손을 내민다.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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