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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서 어렵다 엄살?… ‘중국∙인문학’ 여전히 강세
학술서 어렵다 엄살?… ‘중국∙인문학’ 여전히 강세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4.1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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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4월 이후 주요 학술서 출간 목록

2012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독서의 해’다. 총선과 대선이 맞물리면서 출판계는 온통 정치 관련 서적이 넘쳐났고 상대적으로 학술서적은 매우 긴축된 흐름을 타게 됐다. 그나마 도움을 줬던 문광부의 지원이 대폭 축소되면서 출판사들의 앓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지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출판사들의 고질적인‘불황’은 언제쯤 바닥을 찍고 돌파구를 찾을까. ‘2012년 4월 이후 출간예정 학술서’를 위해 출판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몇 가지 흐름이 보인다. 

첫째로 보이는 흐름은 미중 양강 체제에서 국제사회에 점점 커져가는 중국의 입김이 출판계
에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중앙유라시아의 관점에서 중국의 서진 문제를 다뤄 중국내에서도 논쟁을 촉발시킨 피터 퍼듀의『유라시아 정복사』(공원국, 길, 5월), 중국이라는 개념의 성립과정을 역사적으로 파헤친 거자오광의『중국이란 무엇인가』(이원석, 글항아리, 8월), 1949년부터 2009년까지를 모택동 전후시대로 구분지어 역동적인 관계를 풀어낸 첸리췬의『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1949~2009): 또하나의 역사 서사』(연광석, 한울, 10월)이 번역 중이다. 중국 전문가이자 세계적 석학인 로드릭 맥파커가 쓴 중국 해보서인『중국의 정치 3판』(김재관, 푸른길, 10월)도 중국의 최신 동향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번역서 외에도 역사 전통에 확실한 토대를 둔 체제로 미래에도 중국이 안정을 넘어 더욱 번영할 것이란 시각을 제시하는 소준섭의『중국, 초강대국으로 부활하다』(한울, 10월)도 번역을 기다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강국으로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중국의 변천사를 다룬 책을 넘어 중국의 현대 지성들의 지형도를 그려낸『현대중국의 지식지형』(조경란, 글항아리, 10월)도 독자를 만날 예정이란 사실이다. 변모하는 중국의 외향세를 읽던 출판계에서 중국학자들의 학술지형도를 만날 수 있는 반가운 기획으로 기다려진다. 또 중국 고전의 권위자인 남회근 선생의 강연을 토대로 중국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중국문화 만담』(부키, 남회근, 7월)이, 사마천, 공융, 혜강, 안지추, 소동파 등 중국의 대표 문인 10명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중국문화사에 관해서는 이나미 리쓰코가 쓴『중국문장가열전』(김태완 편역, 이순, 5월)에서 만나볼 수 있다.

중국사회뿐 아닌 중국지식지형도 출간돼

지난해와 마찬가지인 두 번째 흐름은 여전한 번역서의 강세이다. 역량 있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기가 녹록치 않은 국내 출판계의 현실이 드러난 셈이다. 번역서 중에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목받는 작가군이 있다. 우선『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무지한 스승』으로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프랑스 좌파의 대표 지성 자크 랑시에르의 주저작인『불화』(진태원, 길, 10월)가 독자를 만날 예정이다. 요즘 들어 재논의가 활발한 발터 벤야민의 선집『선집 제9권 : 비평, 서사의 자리』와『선집 제10권 : 괴테의 친화력』(최성만, 길, 8월)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지성의 대표여성 중 하나인 마사 누스바움의 신작도 출간을 기다린다. 『능력의 창조』(한상연, 돌베개, 하반기)는 마사 누스바움의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경제성장과 개인의 행복이 일치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로마제국 역사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인 예일대학의 램지 맥뮬런 교수의『로마제국의 위기』(김창성, 한길그레이트북스, 하반기)도 위기담론으로 정형화된 3~4세기 로마제국의 위기론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보여줄 듯하다.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로마 시민을 더욱 고통스러운 의무에 구속시킨 ‘정부의 역할과 방법’을 분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연구재단 지원받는 총서 출간 꾸준

연구번역서와 총서도 꾸준한 발간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HK연구단이나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의 기획에 숟가락을 얹는 형국보다는 출판계의 좀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정신과 조교를 지낸 바 있는 철학자 야스퍼스가 정신 병리학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1913년 작품『정신병리학총론』(송지영, 아카넷, 연구재단 명저번역총서, 12월), 근대 주권론을 확립함으로써 토마스 홉스와 루소, 존 로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장 보댕의 정치사상의 고전『국가-정체론』(나정원, 아카넷, 연구재단 명저번역총서, 10월)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경작지를 중심임으로 말리노프스키가 저술한 본격적인 현지조사 보고서들 가운데 마지막 책인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유기쁨, 아카넷, 연구재단 명저번역총서, 7월)도 말리노프스키의 문화 기능주의적 시각을 충실히 보여줄 예정이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의 실학 분야 연구총서 시리즈인『실학학술총서』(이우성 외, 재단법인 실시학사, 5~6월)의 1차분 전 5권도 곧 출간된다. 『성호 이익 연구』,『 다산 정약용 연구』,『 담헌 홍대용 연구』,『 연암 박지원 연구』등의 시리즈가 계속해서 추가될 예정이다. 소명출판사도 4월에 총 3권의 여성작가연구 총서시리즈의『최정희론, 감정과 욕망의 아카이브』(김복순), 『한말숙론, 한말숙 작품에 나타난 타자 윤리학』(이덕화), 『김승희론, 자유를 향한 자유의 시학』(이혜원)을
발간할 예정이다.

또 하나 찾아 볼 수 있는 흐름은 평전의 강세다. 유대인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를 지냈으며 계량경제학의 비조인 조셉 슘페터의 평전을 토머스 맥로가 풀어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부터 그의 경제학이 성립되는 과정과 사생활이 그의 학문적 삶에 미친 영향을 장대한 스케일로 그린『슘페터 평전』(김형근, 글항아리, 8월), ‘그린비 인물시리즈 he-story'의 일환으
로 위대한 사상가들의 삶과 사유를 정리한 그레고리 엘리어트의『홉스봄 평전』(신기섭, 그린비, 5월)과 마르셀 푸르니에가 쓴『마르셀 모스 평전』(변광배, 그린비, 9월)도 곧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의 역사가 E.P.톰슨이 쓴『윌리엄 모리스 평전 1,2』(조애리, 한길그레이트북스, 하반기)도 화가와 문학가로서 모리스가 추구한 인간 삶의 이상과 사회주의 혁명가로서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돌베개 출판사에서도 8월, 9월에 류샤오보와 누르하치의 평전 출간을 준비 중이다. 미국 주류 사회학계에서‘이단’취급을 받았던 실천적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통해 시대적 고민을 살펴볼 대니얼 기어리의『C.라이트 밀스
평전』(정연복, 삼천리, 7월)도 독자들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평전과 더불어 전집도 꾸준히 출간될 예정이다.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 가장 논쟁적이며 독창적인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탄생 300주년을 맞아 그의 저작들을 자서전, 소설, 정치·사회, 교육·철학, 언어·예술 외 다섯 영역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소개할『루소전집』(박호성 외, 책세상, 하반기)은 1권『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대화』편이 먼저 출간됐고,『 고백 1,2』,『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말제르브에게 보내는 편지 외』를 필두로 10여권의 저작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루쉰의 잡문집『화개집』의 저작들은『루쉰전집 4,5,6,8권』(루쉰전집번역위원회, 그린비, 12월)으로 전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고전의 재번역과 주석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논쟁적인 논어주석서를 쓴 리링은『상가구』(김갑수, 글항아리, 6월)에서 논어를 경전이 아니니 제자서로 재규정했고, 『병이사립』(김승호, 글항아리, 7월)에서는 동서양 전쟁학을 통괄하여 손자의 세세한 항목들을 해설했다.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 인권운동가인 W.E.B. 듀보이스의『니그로』(황혜성, 삼천리, 10월)는 출간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흑인 연구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위기의 인문학, 다채로운 스펙트럼 보여줘

인문학의 위기란 외침이 무색하게, 올해도 인문학 서적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 신화, 풍습, 예술, 문학 속에 담겨있는 상징의 의미를 1천600여 개의 항목으로 다룬 깊이 있는 장 슈발리에외의『상징사전』(김희경 외, 이화여대출판부, 12월), 1900년대 초 서울의 모습을 사진으로 실감나게 전하는 버튼 홈스의 서울 여행기『1901년 서울을 걷다』(이진성, 푸른길, 5월), 번역과 번역학에 관한 교양서로 인간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며, 번역이 그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는 데이비드 벨로스의『당신 귀의 물고기』(정해영, 이순, 10월), 일본근현대건축사 연구의 일인자 후지모리 데로노부의『인간과 건축의 역사』(한은미, 이순, 4월), 안평대군과 안평의 사적, 안견의 그림과 몽유도원도의 서예 등에 관한 해설서인『안평대군과 안견의 몽유도원도』(심경호 외, 알마, 8월) 독자들의 지적 갈증을 충분히 풀어줄 듯하다.

신자유주의의 한계에 도달한 듯한 한국의 현실과 더불어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출판계의 관심도 여전하다. 1년 6개월 동안 20여 명의 학자가 식민지 유산 연구를 진행한『식민지 유산, 국가형성, 한국 민주주의』(정근식 외, 책세상, 5월),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한국인의 삶과 몸에 대한 역사·인류학적 보고서인『현대인의 탄생』(전우용, 이순, 5월)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강원택 외 14인이 쓴『탈냉전사의 인식』(한길사, 하반기)은 탈냉전적 변화가 한국사회에 정치·외교·사회문화·역사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87년 체제론’,‘ 선진화론’등을 언급하며 분석할 예정이다. 포스트민주화 시대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 진보의 병목지점과 돌파구를 연구한 조희연의『민주주의 좌파의 정치사회학』(한울, 6월), 신자유주의적 도시화의 이론적 배경과 더불어 현재 한국 사례를 분석한 최병두의『자본의 도시』(한울, 5월)도 신자유주의와 이념의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사회를 조망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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