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3:55 (토)
[대학정론] 학문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대학정론] 학문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 논설위원
  • 승인 2002.07.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7-09 19:22:57
인문학 위기 또는 기초학문 위기라는 진단에 이어 이공계 기피 혹은 이공계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이 우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이공계 학문에 종사하는 연구자나 관련 학문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온 사람들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考試’에 고급두뇌가 쏠리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상황에서, ‘고급두뇌’에 대한 국가의 관리정책에 뭔가 구멍이 뚫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대놓고 학술정책의 그림을 그리고 앞장서서 훈수를 두는 모양도 지금은 볼썽사납지만은 않다. 워낙 학술정책에 대한 인식이나 조감도가 결여돼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BK21’이나, 기초학문육성책 등은 의욕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정책이든 시행에 앞서 혼란이 따르지만, 한번 시행해 보면 제도의 허실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BK21의 경우, 올해 마감되는 분야가 있다. 한 젊은 연구자는 “얻은 것도 없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제도”였다고 불편해했다. 보고서 작성만 남겨둔 이 젊은 연구자는 여전히 자괴감과 모멸을 느끼는 듯하다. 학문 발전에도, 개인적인 성취에도, 해당 대학에도 어느 것 하나 도움되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는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의 고백을 조심스럽게 음미해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젊은 연구자들도 불만이 많고, ‘현직’ 교수들도 이 제도에 대해 크게 불편해 한다는 사실이다. 기초학문육성책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미 시행된 제도라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교훈은 얻을 수 있다.

아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댓가를 치르면서 외롭지만 ‘학문의 즐거움’에 몰입하는 학문세대가 점점 사라져간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들의 시선은 ‘士’자 돌림 직업을 향한다. 학문의 즐거움이 사라져 가는 대학, 전공 영역을 지키느라 새로운 사고와 패러다임을 수용하지 못하는 교수사회 내부의 협량한 시야, 패기있는 학문의 싹을 키우는 노력보다 자리 보전에 급급한 알량한 처신들, 대학을 亂廛으로 몰아세우는 세태가 장차 이 나라 학문의 줄기를 왜곡할까 크게 우려된다.

서양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근대 학문 특히 근대적 제도로서의 ‘대학교육’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전통시대의 학문 혹은 학문정책을 탐색하면서 세계라는 눈높이에 주의를 기울일 때다. 이것은 매우 치밀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요구하는 바, 우리는 이것을 이 나라 ‘학문정책’이라 명명하고 싶다.

대학마다 백화점식으로 즐비한 학문 구획에서 탈피, 저마다 특색을 지닌 대학으로 편제를 꾸리는 일에서부터, 학문과 학문 사이의 틈을 비집고 튀어오르는 생동하는 아이디어를 수용한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갈망을 내면화할 수 있는 일, 나아가 우리 손으로 길러낸 학문세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를 공동체의 공공 자원으로 환원할 수 있는 거시적인 비전 제시가 시급하다.

이에 대한 고뇌와 탐색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중지를 모으고, 지혜를 찾는다면 연구자 개인에게는 학문하는 즐거움을 돌려주고, 대학엔 성숙한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며, 나라엔 풍요를 돌릴 수 있는 해법이 있다고 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