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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비리 적발돼도 개선없다
학교법인, 비리 적발돼도 개선없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4.09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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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首將의 ‘도덕적 해이’가 대학개혁의 걸림돌

“법인의 재정상황이 충분하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의 기획처장은 등록금으로 조성된 교비회계를 법인회계로 빼돌리는 편법을 상황론으로 바라봤다. 법인의 부실한 재정여건에서는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상황논리다.

지난해 여름에 이뤄졌던 감사원과 교육과학기술부의 감사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법인 이사장과 총장 등 대학 수장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공금유용, 편법회계, 인사비리 등 대학 수장들이 벌여온 비리가 줄줄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사장과 총장 간 맞소송으로 물의를 일으킨 숙명여대도 교비로 들어온 발전기금을 법인에서 편법을 써서 운영해왔다는 게 사건의 단초였다.

교과부로부터 ‘부실대학’의 뭇매를 맞고 있는 건동대와 벽성대도 오랫동안 ‘학위장사’로 수익구조를 만들어 온 이면에는 상황논리에 따른 법인의 도덕 불감증이 있었다. 지난달에는 한성대 법인 이사장이 법인에서 필요한 비용 수십억원을 교비에서 끌어다 쓰다가 감사에 적발됐다.

지난주에는 총신대 이사장과 총장이 인사청탁을 대가로 직원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한성대 학교법인 한성학원(이사장 이희순)은 교비를 법인에서 마음대로 갖다 쓴 내역이 지난해 감사원과 교과부 감사에서 드러났다.

먼저 이사장의 업무용 고급 승용차를 교비로 구입했다. 차량구입에 1억7천600만원이 들었다. 법인사무국 리모델링 공사와 집기 비용 약 1억원, 법인 소유의 학생수련원 ‘의화장’관리비 9천400만원을 포함해 총 3억7천만원을 교비로 썼다. 이밖에도 이희순 이사장은 비상근 이사임에도 급여성 거마비로 약 2억원을 챙겼고, 자문실적이 없는 자문위원에게 1천500만원을 지급한 사실도 들통났다. 이 자문위원은 이 이사장의 딸이다.

한성학원은 또 법인에 전담직원을 두지 않다가 대학에 소속직원을 파견(겸직)하는 수법으로, 2006년~2010년 5년간 인건비 총 6억1천900만원을 교비에서 충당했다. 법인에서 부담해야 할 사학연금부담금 등 법정부담금 56억5천만원도 역시 교비에 떠넘겨 온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한성학원에 ‘엄중 주의’조치를 하면서 “모두 교비회계로 환수하라”고 통보했다. 두 차례에 걸친 감사에도 불구하고, 한성학원은 지금까지도 대학에서 파견한 법인 직원들을 돌려보내지 않은 채, 한성대가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법인에서 인건비를 감당할 재정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다.

지난주에는 이사장과 총장이 직원 승진·인사이동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건이 터졌다. 총신대 김영우 이사장은 재작년 2월 인사발령을 대가로 6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겼다. 열달 후 정일웅 총장이 같은 사람에게 부서이동과 승진 청탁을 받으면서 시가 100만원에 달하는 동양화와 상품권(100만원), 현금 300만원을 받았다. 경찰은 지난 3일, 김영우 이사장과 정일웅 총장을 ‘배임수재’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사장과 총장을 금품으로 매수한 이 직원은 그러나 업무평가에서 최하점을 충족시키지 못해 승진하지 못했다.

대학들이 앞다퉈 쇄신·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지금, 대학 운영자들의 전횡은 구성원들에게 허탈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수들은 법인과 대학을 견제할 제도나 조직이 마땅히 없다는 점과 함께 교수들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지역 국립대의 한 교수는 “공적인 것을 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대학가에 만연해 있다. 곪아가는 내부비리를 보고도 자기 직장과 신분이 위험에 처할까봐 외부요인 핑계를 대는 관성화된 인식을 깨뜨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 사립대의 또다른 교수는 “교수단체나 평의회의 세가 약해지면서 법인이나 대학행정의 부정·비리를 알 길이 막혀버렸다. 설령 비리를 안다해도 교수 스스로 도덕적으로 완벽하거나 연구업적이‘후폭풍’을 감당해낼 만큼 뛰어나지 않으면 자기 신분이 위험에 처한다”라고 지적했다.

대학이 비리를 들추거나 비판한 교수의 프로젝트 공금 유용이나 연구업적을 트집 잡아 불이익을 가하니 교수들은 입을 열지 못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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