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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종 블루' 고양이와 'Creative Revolution'
'레종 블루' 고양이와 'Creative Revolution'
  • 허정 동아대 교수(국문학)
  • 승인 2012.04.05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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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 허정 동아대 교수

허정 동아대 교수
‘레종 블루’의 담뱃갑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으면, 한국사회의 경직된 분위기와 이를 거부하는 상상력 사이의 충돌이 강하게 감지된다. 이 담뱃갑에는 앞을 향해 달려가는 까만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쥐꼬리를 단 마우스가 놓여 있다. 고양이 앞에는 쥐가 있어야 하는데, 왜 마우스일까?

컴퓨터의 한 장치에 해당하는 마우스(mouse)의 뜻에는 생쥐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마우스라는 이름은 그 외형이 쥐와 유사하여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이 그림은 이러한 발음과 형태의 유사성을 재치 있게 이용하여 젊은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려는 의도 하에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담배회사 역시 이 마우스가 ‘컴퓨터 없이는 못사는 20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을 표현한 것’이라고 그 의도를 밝히고 있다. 회사 측의 설명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다양하게 자극한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다음과 같이 소설을 써볼 수도 있겠다.

누가 보더라도 이 마우스 자리에는 쥐가 그려져 있어야 했다. 쥐를 쫓는 것이 고양이의 생리 아닌가? 영어에서 쥐와 동음이의어의 관계에 있는 마우스를 통해 쥐를 대신한 것은 이러한 변형작업을 이끌어냈을지 모르는 모종의 억압적인 힘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억압은 무엇인가? 그것은 ‘쥐벽서사건’에 가해진 정부의 과도한 대응이다. G20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이들에게 검찰과 법원은 과도하게 대응하였다. 이 사건은 작년 10월 13일 대법원에서 사건 관련자들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서울 중앙지검 공안부에서 수사를 지휘하였고, 검찰은 사건 관련자들에게 징역형을 요구했고, 1심에서 내려진 벌금형에 반발하여 항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쥐가 마우스로 대체된 그림에서 회사 측의 자기검열행위를 상상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회사 측은 고양이의 생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행위가 제2의 쥐벽서 사건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하여 그러한 변형을 가했을 수도 있다. 약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그림은 한국의 경직된 상황에 대한 풍자그림으로도 보인다. 쥐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마우스를 그린 것은 쥐 그림에 사회적 금기가 가해진 현 상황을 비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이것은 회사 측의 상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마우스와 쥐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워서 누구나 이 그림을 보고 자동적으로 쥐를 떠올릴 수 있다. 회사 측은 쥐벽서 사건에 쏠린 사회적 관심을 자사 담배의 판매매출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이러한 그림을 그렸지 않았을까, 이 그림은 고양이를 캐릭터로 내세운 산업이 맞은 수난을 역으로 활용하려는 회사 측의 마케팅 전략이 펼쳐지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 상상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상상들 중에서 맨 뒤의 것은 나의 괜한 상상이고, 이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은 특히 쥐벽서 사건 쪽으로 쏠려있다.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쥐를 못그려서 마우스로 그리는 우리나라! 최고네요.”, 이 회사도 “가카 불경죄로 조만간 처벌 받는가?”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다.

상상력(Imagination)이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구성적 능력이다. 상상력을 실용적인 측면에서 일어나는 기술혁신이나 현실을 초월한 무중력 상태에서 벌어지는 재기발랄함 정도로 과소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상상력은 다음과 같이 현실 그 자체를 문제 삼기도 한다. 먼저 그것은 현실의 경직된 틀 속에서 부당하게 사라지는 것들을 가시화해낸다. 경직된 현실과 그 속에서 형성된 자기검열로 인해 의도적인 변형이 가해졌을지 모르는 그림에서 사람들이 변형 이전의 모습을 복원해내듯이 말이다. 그리고 상상력은 우리가 현실의 딱딱한 틀 속에 갇혀 삶을 제약당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웃어넘기거나 몇 만 원 정도의 벌금으로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부분에 과도하게 대응하는 현실의 경직성 때문에 자유로운 표현행위는 물론이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내는 행위마저 차단되고 있음을 사람들이 체감해내듯이 말이다.

나아가 상상력은 현실의 굳어진 질서를 문제시삼고 여기에 균열을 가하고 나오는 유연하고도 비판적인 힘이다. 이 힘이 축적되면 상상력은 지금의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실천력과 결부된다. 상상력이 급진적인 힘을 발휘하는 지점, ‘레종 블루’ 고양이 그림 밑에 쓰인 글귀 ‘CREATIVE REVOLUTION’처럼 경직성을 무너뜨리는 창조적인 혁명이 일어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경직된 상황은 그것을 변화시켜나가려는 상상력을 가동시킨다. 전술한 네티즌의 반응에 잘 나타나듯이,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경직된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체감하고 있으며, 매끄럽게 수용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본래의 의도는 무엇이고 여기에 가해진 사회적 억압이나 꼼수가 없는지를 상상하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물론 아직 그 상상력을 실천에 결부시키지는 않고 있지만 말이다.

요즘 한국사회는 자유로운 표현행위가 갖는 긍정적인 가치 인식에는 인색하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사회는 유연해져야 한다. 자유로운 표현행위, 날카로운 풍자행위마저도 넉넉한 포용력으로 너끈히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 유연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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