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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궁으로부터 전해오는 조선황실의 맛
한상궁으로부터 전해오는 조선황실의 맛
  • 김용한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부원장
  • 승인 2012.03.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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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유산 ⑬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끌 저력’을 조명하기 위해 교수신문이 기획한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는 대학 내부의 집합적 노력, 유산의 역사성과 사회적 기여 가능성, 잠재성, 세계적 가능성 등을 평가해 최종 선정했다. 13편의 유산 가운데 마지막으로 숙명여대의 ‘한국음식연구원’을 조명한다. 1938년 가정과를 모태로 조선황실의 맥을 이어오는 국내 유일의 대학 부설 전통음식 연구기관이다. 한국음식의 체계적인 연구와 전수를 위한 활동과 한국음식의 과학화·산업화·세게화를 목표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풍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의실 ‘봄’, KFE작품, 조리실습(오른쪽 위·아래), 조리스튜디오.

숙명여대는 1906년 고종황제의 순헌황후로부터 경비를 보조받아 설립된 순수한 여성국학인 명신여학교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1938년 숙명여자전문학교를 창립해 가정과, 기예과, 전수과가 신설됐다. 이때부터 가정과를 모태로 시작된 우리 음식 연구는 숙명만의 고유한 역사를 가지게 된다.

1938년의 가정과부터 현재의 한국음식연구원으로 이어지면서 여든을 넘긴 노교수로부터 20대의 연구원까지 74년여의 대물림 속에 꾸준히 계속 돼져 왔다. 숙명여대가 1955년 종합대로 승격하면서 가정학과를 설치하고 1969년 가정대학으로 독립해 식품영양학과가 신설됐으며 1998년에는 이러한 노하우를 이어받아 전통문화예술대학원의 전통식생활문화전공 과정을 개설했다.

1955년부터 1967년까지 학교에 출강해 직접 조리실습 지도를 한 조선 왕조 마지막 상궁 한희순 상궁(1889~1972, 조선왕조 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 1대 기능보유자)에게 조리법을 전수받은 역대 교수들로부터 젊은 교수진까지 우리 음식연구의 맥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교육프로그램, 해외홍보, 정부사업 도맡아

한국음식연구원은 溫故而知新의 지혜 속에 옛 전통을 이어가지만 안주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아이디어와 실험 정신으로 새로운 음식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한상궁의 수제자인 전희정 자문교수를 중심으로 변함없는 전통한식의 조리법을 지키고 전수하며 수많은 인력들을 양성하고 있다. 해를 더해 갈수록 전통음식 뿐만 아니라 아동요리지도자과정, 푸드스타일리스트, 약선음식과정, 한식디저트 등의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과정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음식연구원은 지금과 같이 한식의 인기가 뜨겁지 않을 때부터 꾸준히 해외 한식 홍보 행사를 맡아서 진행했다. 초창기 시절에는 해외 대사관에서 한식 홍보 행사를 진행해달라고 연락이 오면 교수님을 비롯해 연구원, 조교 등 전원이 참여해 몸으로 부딪혀가며 행사를 진행했다.

해외 행사 경험이나 식재료, 식문화분석, 해외 조리환경 등에 대한 정보없이 밤새 손가락을 식칼에 베이며 비빔밥 및 불고기 등을 만들어 각 국의 VIP 식탁에 대접했다. 단지 그들의 맛있다는 말 한마디, 미소 한 번에 그렇게 힘든 고생을 이겨내곤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해외 한식 홍보 행사를 하다보니 이제는 벌써 40여 개국의 이상의 국가에서 한국음식연구원의 조리 솜씨를 맛보았다.

 

현재는 한식 홍보 행사를 치러달라고 각 국의 대사관 및 영사관, 한국문화원 등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오고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아예 행사를 못 할 정도로 연구원의 위상이 높아졌다. 지금 불고 있는 K-pop 열풍 또한 한국음식연구원이 닦아놓은 한식의 인기와 연관이 있다.

이런 교육프로그램 및 한식 홍보 행사뿐만 아니라 한국음식연구원은 정부의 한식세계화 사업도 같이 추진하고 있다. ‘한식 스타쉐프 양성 과정’, ‘해외 한식당 종사자 교육’ 등의 정부의 위탁 교육을 비롯해 ‘한식 세계화를 위한 한식 우수성, 기능성 연구’,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밥 우수성 메뉴개발 프로젝트’ 등 여러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한식을 알리고 있다.

각 정부기관, 기업체, 지자체에서는 한국음식연구원에게 한식과 요리에 관련된 다양한 교육을 위탁하고 있고 이런 프로젝트들을 통해 한식의 전문성과 교육성과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한식세계화를 주제로 한 MBC 주말 드라마 ‘신들의 만찬’ 의 음식 자문 및 연기자 교육, 푸드 스타일링까지 맡고 있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조리봉사까지 진행해 지역 사회의 균형적인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전통음식 및 향토음식 개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양식, 중식, 일식에 밀려 차츰 잊혀져가는 각 지역의 고유 향토음식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을 부여하고 산업화, 가공식품화한 후 마케팅을 입혀 더욱 더 세련되게 재창조해내고 있다. 전통은 똑같이 머무르고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항상 재창조되고 변화해가면서 기본 정신을 이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국내 최대 향토음식 개발 실적을 가진 한국음식연구원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세계 4대 조리학교를 꿈꾼다

이제 한국음식연구원은 최고의 시설과 이에 걸맞은 강사진을 갖춘 이 시점을 제2의 도약기로 삼아 우리 음식의 건강기능성, 과학성, 예술성을 계승하고 있다. 이를 응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세계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한국 음식 문화를 선도할 전문가를 양성한다. 일반인들에게도 열린 문화 공간을 제공해 고품격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숙명여대 창학 100주년과 21세기 문화 선도 대학을 상징하는 숙명 르네상스 플라자에 자리한 한국음식연구원은 콘서트홀, 전통 음악 연주홀, 박물관, 정영양 자수박물관, 문신 미술관, 아트 갤러리, 숙명 르꼬르동 블루 아카데미 등과 연계해 또 하나의 품격높은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음식연구원의 목표는 미국의 CIA나 일본의 츠지조 학교같은 세계의 조리 명문학교가 되는 것이다. 지금 한류의 열풍을 타고 한국음식연구원이 한 단계 더 도약해보길 기원해본다.

김용한 한국음식연구원 부원장

런던대학 내 골드스미스칼리지의 사회학과장인 크리스 젠크스(Chris Jenks)는 “문화는 결코 현대에 새롭게 창조된 무언가가 아니라 전통과 연관되는 개념이면서 동시에 현대와 깊게 연관된 접점”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즉 우리의 음식 문화는 주변에서 흔히 먹는 음식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점차 사라져 가는 전통음식, 향토음식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이를 지켜야 우리의 문화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나가고 세계화하는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을 대학의 유산에 선정한 이유이다. 앞으로도 한국음식연구원이 ‘조선황실의 맛을 전세계인에게 알리는 한식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으로 믿는다.

김용한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부원장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 Hospotality MBA 과정을 수료하고, 한솔요리학원 델리쿡 기획팀장을 지냈다. 숙명여대 행정교수로 한국음식연구원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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