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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힌 한-중 외교, 과거에서 해법 '실마리' 찾는다면?
얽힌 한-중 외교, 과거에서 해법 '실마리' 찾는다면?
  • 유희곤 기자
  • 승인 2012.03.19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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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사조선록 역주 1~5』(서긍 외 지음, 김한규 옮김, 소명출판, 2012.2)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을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했을 때 탈북자의 북송을 중단해 달라는 뜻을 직접 전달했다. 때맞춰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도 나왔다. 중국 국가해양국 국장은 지난 3일 이어도가 중국 관할해역에 포함된다고 말했고 한국은 주한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한국과 중국 간 외교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 간 대중 외교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럴 때 역사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2천년 넘게 한반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댔다. 비록 번역서이긴 하지만, 과거 한-중 관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使朝鮮錄 譯註 1~5』(서긍 지음, 김한규 옮김, 소명출판, 2012.2)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이 책은 중국 북경도서관출판에서 2003년 출간한 『중조관계사료총간 : 사조선록』을 서강대 김한규 교수(사학과)가 번역ㆍ주해한 것이다. 송-명-청 시기에 고려와 조선에 파견온 문학지사 출신 사신들이 여행경험과 감상을 기록했다. 12명이 쓴 18종이 수록돼 있으며 가장 오래된 작품과 최근 작품 간에는 773년의 시차가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과 ‘조선부’를 제외한 16종은 처음으로 번역됐다.

  이들 사행록에는 한중 양국의 수도를 잇는 교통로와 여정, 주변 경관과 상황에 관해 보고 들은 정보가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 역사, 문화 등에 관해 얻은 지식이 정리돼 있으며, 使命을 받들어 외교적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도 기록돼 있오, 조선의 예관들과 예, 특히 영조례(황제의 칙서를 맞이하는 儀禮)와 女樂 등에 관해 벌인 논쟁 등이 상세하게 기재돼 있어, 전통시대 한중관계사 이해와 연구를 위한 다량의 기초 사료들을 접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송, 명, 청 등 중국을 지배한 국가들이 파견한 사신들이 기록한 사행록이기 때문에 한중관계사 연구에 필수적인 사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역 작업은 사료적 가치 보전을 위해 의역이 아닌 직역으로 이뤄졌다. 주석도 1만2천529개에 달한다.

  『사조선록』에 수록된 18종에서 역자가 발견한 과거 한-중 관계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冊封-朝貢 관계의 지속성이다. 책봉은 중국 황제가 주변 국가 군장의 자격과 지위를 공인해 신하로 복속시키는 양식이다. 조공은 중국 주변 국가들이 정기적으로 중국에 사절을 보내 예물을 바치는 행위이다. 이 구조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지는데 『사조선록』 17번째 글인 「東行三錄」에서도 나타난다.

  마건충은 세 번에 걸쳐 조선을 다녀와 겪은 일을 『동행삼록』으로 기록했다. 그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조영수호통상조약에도 관여했는데 이때 두 조약문에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는 문구를 첨부하는 성과를 올린다. 김 교수는 『사조선록 역주』가 “양국의 책봉-조공 관계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특징은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공동 인식이다. 중국인 사절단은 한양 도착 전 평양에 체류할 때 箕子 사당을 참배하는 관행이 있었다. 김 교수는 “기자조선이 실제로 존재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양국 외교관들이 관계 강화를 위해 기자를 활용했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또한 선창-후창의 형식으로 시를 읊는 ‘唱和외교’도 『사조선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총서(원서)에는 ‘시부외교’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김 교수는 창화외교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이 시를 지으면 받는 사람은 운을 따서 화답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로의 입장을 계속 확인하고 전달해 상호 이해가 높아진다.”

  김 교수는 창화외교는 중국-베트남, 중국-유구국(현재의 일본 오키나와 일대에 있던 왕국) 간 외교에서도 확인된다며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동아시아 만의 독특한 외교인 창화외교의 정신을 오늘날 주목해야 한다”라고 강조다. 그는 최근 한층 복잡해진 한-중 외교문제를 두고 "창화외교의 정신을 살려 돈독한 상호이해를 이룰 수 있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문학적으로도 『사조선록』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번역에서 확인한 수확이다. 책에 수록된 글 중 일부는 율시 등의 운문 형식인데 역량이 뛰어난 문학지사인 사신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얼음 바퀴(달) 천천히 돌면서 금빛 물결(달빛) 흩트리고/
   미풍이 서늘하게 불어 밤으로 많이 들어온다/
   구슬 이슬 동글동글 선인장(신선의 손바닥)에 맺혀 빛나고/
   옥 난간이 밖으로 우뚝 솟아 높이 받든다.”                        
   -풍월루(주지번,「奉使朝鮮稿」 중에서)-

  옮긴이의 수고 덕분에 향후 한문학자들의 연구 목록이 조금 더 두꺼워지게 됐다.

  유희곤 기자 yooh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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