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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상한 시절, 지식인의 고뇌…'정치'를 보는 두 가지 시각
하수상한 시절, 지식인의 고뇌…'정치'를 보는 두 가지 시각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3.14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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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계간지 봄호 리뷰

뜨거운 봄. 그러나 한국사회의 전망은 시계제로 상태. 봄호 계간지들은 어떤 고민을 풀어냈을까.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데다 일본 동북부 대재앙이 일어난 지 1년이 되는 즈음, 그리고 총선-대선으로 이어지는 한국정치가 과연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이들 계간지들 역시 위태로운 청년 실업과 불안한 삶의 체감지표, 그리고 분노의 표출에 주목하는가 하면(<문학과 사회>, <문화과학>, <오늘의 문예비평>), ‘선거’를 화두로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 정당정치의 복원, 그리고 2013년 체제 문제를 조명했다(<역사비평>, <황해문화>, <창작과 비평>). 픽션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앞에 지성인들의 펜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문학과 사회> 97호는 특집「문학의 현재와 전사, 그 관계」를 기획, 최근 시와 소설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질들을 3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작가들을 통해 짚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논의는 문학평론가 이수형의「필요하지 않은 것을 하라-백수, 잉여와 모험의 윤리」다. 그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기간 중에 발표된 소설에 드러난 백수 혹은 실업의 문제를 통해 과학적 인식과 연대의 감각이라는 근대적인 관점과, 잉여와 모험의 윤리로 부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김미월, 한재호 등의 소설과 관련시켜 그 의미를 살폈다. 그러나 그가‘새로운 잉여와 모험의 윤리’를 두고‘좀더 새로운 관점’이라고 강조한 부분은, 그것이 어째서‘새로운 관점’일 수 있는지, 그것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애매하게 남아있다.

한국사회 인프라의 총체적 붕괴

<문학과 사회>가 문학 텍스트를 통해 접근했다면, <문화과학> 69호는 통계수치를 통해 한국 인프라의 총체적 붕괴를 보여준다. 이들은「2012년 한국, 우리가 사는 꼴」을 특집으로 구성,‘ 감각과 시공간 경험 방식’,‘ 주체형성의 문제들’, ‘한국인의 아비투스 문제’, ‘매개적 환경’,‘ 통계로 본 한국사회 전모’등의 다섯 가지 주제를 파고들었다. 이 가운데‘통계로 본 한국사회 전모’는 실증적 데이터를 통해 한국사회의 앞길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통계로 본 한국사회 불행지수」의 강정석 대표집필위원은“한국사회의‘어두운’통계수치들이 앞으로도 별다른 변화가 없이 이어진다면, 10대와 40대, 즉 부모와 자식세대라고 볼 수 있는, 혹은 청년과 중년으로 볼 수 있는 이들의 앞날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전망이 어둡다고 단순한‘진통제적’처방 혹은 스트레스 해소산업에 몸을 맡겨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행위만으로는 이를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기획과 조직, ‘자기 통치적이고 연대적인 주체’형성을 거듭 강조했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지금이 바로 분노하고 저항할 때라고 일갈했던 프랑스의 노학자 스테판 에셀의 외침에 <오늘의 문예비평> 84호가 특집「분노의 정동과 정치적 인간」으로 한층 증폭된 메아리를 들려준다. 두행숙 서강대 강사는「분노의 철학적 고찰」에서 신화시대부터 근대까지 변화하는‘분노’의 정의를 폭넓게 살폈다. 그는“분노가 단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며 가치를 판단하는 이성적 차원일 수 있다”라는 마사 누수바움과 김열규의 논의에 동의하며, ‘분노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 아닌 사회의 변혁을 촉구하는 정치적 감성’임을 도출해 낸다. 그는 분노에 내재된 공격적 폭력성을 순치하는 지혜를 우리가 이미 터득했다고 지적하면서, “분노는 자신이 정지된 감정이 아니라 살아 있어서 움직이고 스스로 모습이 바뀌고 또 사회를 변화시키는 적극적인‘정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공천탈락이 밥그릇싸움으로 변질되고 결국 분열의 근거가 되는, 이합집산의 모습을 보이는 현 정치집단과 이들의 정치 공학을 <역사비평> 98호는 특집「연합정치, 역사와 전망」으로 집중 조명했다. 조성대(한신대)·홍재우(인제대) 교수는「연합정치의 비교정치적 맥락과 한국적 적용」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1997년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논의, 노무현 대통령의‘대연정’을 한국 연합정치의 사례로 든다. 2012년의 연합정치와 관련해 조 교수와 홍 교수는 ‘책임 윤리’를 강조하며“가치가 같다면 굳이 연합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라고 결론짓는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는「1971년의 선거와 민주화운동 세력의 대응」에서“2012년의 선거양상이 1971년 박정희와 김대중의 격돌에서‘민주수호’의‘데자뷰’를 환기 시킨다”라고 언급,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현재가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를 모색한다. 그는“시민운동과 사회운동 세력이 정당정치의 한계를 보완해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하다”라고 주장한다. 1971년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재희 고려대 강사는 노동당과 자유당과의 진보연대를 통해 선거를 승리함으로써 양당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영국의 사례가 오늘 한국 진보세력에게 반면교사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연합정치 또는 정당정치로 가는 길

<역사비평>이 시민의 정치 참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면 <황해문화> 74호는‘정당정치의 복원’을 강조해 대조된다. 특집「정치의 불안인가 새로운 정치의 출현인가」에서 진보정당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안풍으로 시작된 시민후보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이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당에서도 대안을 찾지 못한 민심의 발로라고 평가한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에서“‘안철수 현상’,‘ 시민정치론’‘, 국민경선’
등이 정당정치의 퇴행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개별 정당들 모두가 국민을 대표하고자 한다면 정당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여론조사’에 의해 점령된 정치」에서“안풍 현상을 부추긴 것이‘진짜’여론이 아니라‘여론조사’였다”라고 지적한다. 음미할만한 대목이다. ‘여론조사’로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해서라도‘정당정치’로의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역설이다.

특집「2013년 체제 논의의 진전을 위하여」를 기획한 <창작과 비평> 155호. ‘ 2013년체제’는 창비의 수장격인‘백낙청 교수’의 대표담론이다. 인문학적 발상의 색채가 짙지만, 그의 지혜가 온축된 아이디어라 사회과학자등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들이 좀더‘논의의 진전’을 모색한 듯하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2013년 이후의‘한반도 경제’」), 정현곤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2013년체제 건설에서의 북한 변수」), 이기정 창동고 교사(「교육의 2013년체제를 만들자」), 변창흠 세종대 교수(「새로운 사회모델과 도시비전」)가 참여했다. 특집에 이어진‘대화’「2013년 이후 무엇을 먹고살까」(김병준, 정대영, 홍종학, 이일영)는 2013년체제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을지 집중토론했다. 논의는 풍성하게 쏟아냈지만, 어떻게 현실 속에서 구체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펴내 화제가 됐던 구해 근 하와이대 교수의 글「한국 중산층을 다시 생각한다」도 값지다. 고속성장 이후 등장한 소비주의와 계급구분이 주도한 중산층의 내부분화에 주목한 그는 허물어지는 중산층의 저변을 끌어 올리는 노력을 강조하면서, 이와 동시에“사회적 가치의 무게중심이 경제성장과 무한경쟁에서 비물질주의적, 공동체적 그리고 범인류적 관심사로 이동할 수 있도록 문화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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