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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없는 자들'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
'고향 없는 자들'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
  •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
  • 승인 2012.02.29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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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⑫ 체코의 프라하 가는 길에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의 성(聖) 바츨라프 기마상. 프라하의 최대 번화가를 끼고 있는 바츨라프 광장. 국립박물관 앞, 광장이 시작하는 곳에는 국난에서 체코 민족을 지켜낸 수호성인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서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이른바 ‘프라하의 봄’ 당시 사람들의 집결장소로 유명하다. 사진=최재목
체코를 생각하면 저 ‘프라하의 봄’이 떠오른다. 소련에 대항하다 좌절된 자유화 운동(1968년)과 그 선봉에 섰던 둡체크. 어릴 땐 그저 ‘체코제’ 권총·소총 같이 무기를 잘 만드는 나라를 체코로 알았다. 중고등 시절엔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체코 태생의 ‘릴케’를 사모했고, 이후 프란츠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를 키워낸 체코-프라하를 상상해보기도. 그러나 아직까지 그곳은 내가 발 디뎌보지 못한 미지의 땅. 이런 저런 설레임에 뒤척이다 보니 벌써 새벽 4시. 서둘러 짐을 챙긴다. 라이덴에서 스키폴로 공항 역으로 가 아침 7시발 국제선 열차를 타야한다. 베를린에 들렀다가 체코의 프라하로 가서 며칠 머물 작정이다. 거기서 다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지로. 갈 길이 멀다. 

체코의 현실은 언제나 조각나 있었고, 그것을 모아 한 뜸 한 뜸 꿰매서, 결국 한 장의 보자기를 만들고파 했던 그 나라 사람들. 유럽사 속 체코의 정신사란 ‘조각보’처럼 느껴진다. 카프카도 쿤데라도 그런 정신분열증의 현장을 딛고 자신의 내면을 필사해냈을 것이다.

중앙유럽에 있는 체코. 북동쪽은 폴란드에, 북서쪽과 서쪽은 독일에. 남쪽은 오스트리아에, 남동쪽은 슬로바키아에 맞닿아 있다. 하여, 밀썰물에 쓸리는 해안처럼 四肢엔 온통 식민지배의 손발톱에 할퀸 상처이리라. 오랜 세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에 있다가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 이후 1938년엔 나치 독일에 합병돼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시까지 점령당한 채 있었다. 또 전쟁 뒤에는 1945년부터 소련의 위성국이었다가 1993년에 슬로바키아와 평화적으로 분리하여 오늘에 이른다.

프라하 시 전경.사진=최재목

체코는 체히(보헤미아), 모라바(모라비아), 슬레스코 세 지방으로 나뉜다. 작곡가·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는 보헤미아에서,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모라비아(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의 핏줄로 태어난 사람들 아닌가. 체코는 조국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으로 떠돌던 영혼들의 간이역이었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태인으로서. 어디에서도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말처럼. 그는 팜므파탈의 부인 알마 말러에게도 여전히 이방인처럼 살다 갔다.

하여튼 체코 출신들의 정체성은 복잡하다. 그 그로테스크한 체코라는 ‘존재’가 예술정신으로 ‘회상’되어 直說될 때, 소설로나 음악으로나 기괴한 長廣舌을 이루리다. 교황과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5년 화형된 종교개혁자 얀 후스가 체코 사람이란 게 우연이 아닌 듯 가슴에 와 닿는다.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떠도는 건달들의 정신은 원래 쓸쓸하지만 높고, 우울하지만 날카로운 법. 

체코의 시골 풍경. 프라하 가는 길에 창가에서 바라본 체코의 시골 풍경. 사진=최재목

‘유럽은 하나’라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평평하기는커녕 한없이 울퉁불퉁하다. 세계사에서 독자적 공간의 ‘힘’을 만들었지만, 한편 ‘짐’이 되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 그리고 전쟁과 지배, 분열과 통합. 그 가운데 예술과 지식과 언어는 이종 삼종의 교배로 문명의 바벨탑을 쌓았다. 얼룩덜룩 모자이크된 地面 위, 개인-개인주의란 ‘세상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고독한 無窓의 성곽. 수많은 아픔과 상처 끝에 도달한 마지막의 歸依(歸命)處. 그곳은 바로 자기 피난처이자 보호소이고 치료소이다. 아! 그들의 南無(namas) 아미타불 아닌가.  

프라하로 가는 창가, 나는 네덜란드 국경 근처 꽃피는 독일의 들판에 머리를 포갠다. 일찍이 토마스 만은『독일과 독일인』에서 독일인은 내면성과 음악성을 자랑한다 했다. 하여, 정신성과 추상성을 우위로 삼아 반정치성으로 치달아 현실을 제대로 못 보게 했다나. 막스베버는 독일병으로 불리는 ‘이데올로기병’의 근원을 여기서 찾았다. 우리 교과서에도 실린 시 ‘가을날’로 유명한 프라하 출신의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그런 반정치성-파시즘 비판에 무감각했다. 인권이니 뭐니 다 접어두고, 그저 고독-소녀-기도로만 치달았던 그. 루 살로메를 사랑했고,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수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아닌 즐거움이여!” 그의 묘비에 적힌 시다. 수많은 장미 이파리에 껴안긴 잠. 그래, 그게 제국주의의 천막이건 제 자신의 무덤이건 아무 상관없으리라.

잠시 허리를 펴고, 먹었던 과일 껍질과 과자봉지,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문득 생각노니, “아! 삶은 모두 쓰레기구나. 이 쓰레기로부터 나의 삶이 벌레처럼 흉측하게 기어 나왔구나!” 프라하 태생의 유대계 독일인인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변신』에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삶이 오버랩 된다. 아마도 그건 체코 사람인 카프카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이었으리라.

 카렐교와 프라하 야경.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이 불빛 사이로 배어나오는 듯하다. 사진=최재목

저녁 무렵, 기차는 어느새 꽃 피는 프라하에 닿고. 나는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프라하의 밤 풍경을 보러 나선다. 먼저 춤추는 건물을, 그 다음엔 블타바 강의 카렐교로. 프라하 성 밑으로. 불빛 속에서 나는 중세 도시의 찬연함을 만나고 만다.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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