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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읽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과학자가 읽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 승인 2012.02.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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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타무스: 우리는 생각한다

인공적 세계를 건설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 이것은 1958년에 한나 아렌트가 기술시대의 인간의 생태적 지위에 대해 조망하면서 한 말이다. 『인간의 조건』은 정치와 사회, 노동과 작업, 과학기술 시대의 인간의 위상 등을 탐구한 그녀의 영향력 있는 저술 중의 하나이다. 아렌트가 제기한 과학기술에 대한 중요한 질문은 “어떤 종류의 세계를 만드는가?”이다. 아렌트는 지구의 본성에 관한 회의를 통해 과학기술은 정치적 과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단순한 명제를 이끌어냈다. 

과학에 대해 얘기할 때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과학은 태생적으로 정치적이며 과학의 실행은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이 반응하는 것처럼 과학은 정치와 전혀 관련이 없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지식과 권력은 병립한다. 따라서 권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학은 지식의 경계를 밀어내고, 윤리와 도덕을 끊임없이 순화시키는 특성을 가지며 그 밖에도 계급적 권력구조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지식의 축적을 추동하여 궁극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학의 정치학은 낯설지 않다. 예를 들어 1610년에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통한 그의 관찰을 기록하였을 뿐인데도 정치적인 행위를 하였다. 그는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가 옳다고 증명한 것, 즉 목성은 달을 가지고 있고 금성은 위상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매우 단순한 관찰을 기술하였다. 그러나 관찰 가능한 사실에 대한 기술은 그 당시 권력 구조의 지지를 받거나 또는 도전을 받는 정치적인 행위이다. 과학자가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또는 ‘인간의 활동에 의해 기후가 변한다’ 등의 사실적 주장을 할 때마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받거나 탄압받을 수 있다. 교회는 왜 그렇게 터무니없이 갈릴레오를 대하였는가. 동일한 이유로 오늘날 기후변화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1950년대에 아렌트는 “인공세계를 건설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연환경으로부터 멀어진다”며 과학적 전체주의를 경계한바 있다. 관찰을 통한 사실 확인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과학은 자연의 피속박체인 인간을 자연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맹목적 신념과 방향성을 가진 부류가 상당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과학기술의 시도가 바로 과학적 전체주의이며 기술시대의 악이라 아렌트는 설파하였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은 생태계 내의 인간의 지위가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만 인공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과학과 사회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환기에 살고 있다. 지금의 세상은 이전에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무매개 접촉 시대이다. 과학기술은 모든 인류를 한데 묶었으며 중동에서의 전쟁을, 보스니아에서의 인종청소를, 아프리카에서 질병과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중계로 볼 수 있게 하였다. 과학기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먹는 음식 그리고 자동차와 여러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활동의 기초 토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패러독스가 여전히 존재한다. 선진 사회에서는 부의 많은 부분이 건강과 휴양에 쓰여 지고 있으나 후진국에서는 기근과 명분 없는 전쟁 등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황폐해지고 있다. 과학의 발전은 말라리아 같은 질병의 퇴치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나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이 부 결핍 질병(money deficiency disease)이라 불리는 다른 기생성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 

과학은 우리 주변의 모든 현상에 대해 보편적인 시야를 제공해줄 수 있다. 과학은 기아와 전쟁을 없애는 데 기여를 해야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온전히 지키는데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과학 자체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경제력과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사회에 대한 과학의 영향과 비슷하게 과학에 미치는 사회의 영향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는 과학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강력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학을 장려하는 사회는 경리부장 같은 입장으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장기적 관점보다 훨씬 짧고 좁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과학적 발견이 시민의 건강과 부 같은 사회적 목적에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 때문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의 상당수는 인간을 생태계 사슬에서 이탈시키는 인공세계를 건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조건을 벗어나게 한다. 이런 면에서 아렌트가 설파했던 자연속의 인간상을 다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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