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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反知性의 전당인가 … “화살은 계속 부러지고 있다”
대학은 反知性의 전당인가 … “화살은 계속 부러지고 있다”
  •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헌법
  • 승인 2012.02.13 14: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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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_ 영화 「부러진 화살」 논란을 보면서

시작은 시험문제였다. 어느 사립대의 학부 신입생을 선발하는 입시문제였다. 나중에 세계적인 학술지에 그 문제가 실렸을 정도로 명확한 오류가 있었다. 이 대학 수학과 김 교수는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대학 측은 문제 자체의 오류는 인정하지 않고 채점의 혼란을 막기 위한 모범답안을 제시해 이를 수습하고자 했다. 김 교수는 그해 ‘연구소홀’ 등을 이유로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해 1996년 2월 학교를 떠났다.

구제를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났다. 몇 년 뒤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자 귀국해 교수지위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였으나 또 패소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재판장 집에 항의하러 석궁을 들고 갔다가 상해죄로 기소돼 징역 4년을 살고 출소했다.

세계정상급 연구자를 해임한 사유가 ‘연구소홀’(?)

김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한 그해 제기한 소송에서 제1심 재판부는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 전문가 의견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들 단체는 모두 거부했다.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89명은 김 교수가 문제 제기한 입시문제는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이 대학에서 제시한 모범답안도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정상급 저널에 학술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기도 했던 김 교수가 연구소홀이라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다면 국내의 수학자 가운데서 부교수로 승진할 수 있는 수학자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인 <사이언스>(1997.9.5)에는 ‘올바른 답의 비싼 대가(The High Cost of a Right Answer)’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수학분야의 국제학술지인 <매써매티컬 인텔리전서>도 ‘정직함의 대가?(The Rewards of Honesty?)’라는 제목의 편집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캠브리지대의 마이클 아티야 교수 등 저명한 수학자가 그를 위해 의견을 제출했다.

'석궁사건', 당시 학계와 동료교수들은 왜 문제를 감추는 데 급급했을까. 영화 「부러진 화살」 논란은 사법부 개혁을 겨냥하고 있지만 대학사회는 감추기, 편가르기 문화가 변함없다. 정작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무탈하다.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도 대학엔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김경호 교수(실제 김명호 교수)가 재판장에게 법조문을 따지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부러진 화살」을 많은 사람들이 봤고,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법원을 다녀 본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왜 정작 문제의 발단이 된 대학과 학계에 대해서 비판을 하거나 자성하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가. 왜 그 사립대 입시문제 출제교수들은 나중에 오류가 들통날 것을 감춰야 했을까. 오류를 인정하면 자신 또는 학교의 명예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을까. 그 분야의 중심이 되는 학회는 왜 법원에 의견제출을 거부했을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영화 속의 김 교수가 현실의 김 교수라면, 또 재임용 관련 소송의 판결문에 나타난 ‘심한 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꽤 ‘까칠한’ 사람일 것이다. 또 그것이 입시문제 출제오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이후에 벌어지는 비지성적 행태 때문이었다면, 그런 문제제기 때문에 비로소 문제가 됐던 것이라면 어땠을까. 과연 비지성적인 것은 용인되면서 그 까칠함만이 재임용을 거부할 구실이 될 수 있을까.

대학은 진리의 전당이다. 진리를 탐구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도 누리지 못하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이러한 역할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내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도 그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영 딴판인 경우가 많다. 문제를 가리기에 급급하고, ‘거친’ 문제제기에서 그것이 ‘거친’ 것이었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한다. 내부에서 올바른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없어 외부의 도움을 구하면 그것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정작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아무 탈이 없다. 편 가르기와 내 편의 수, 인간적 관계가 우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反知性적 교원임용심사 여전

필자도 지난 해 교수인사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결론을 정해 놓고 진행되는 절차 속에서 문제제기는 ‘거칠었다’. 거칠다고 해 봐야 회의에서의 격론, 외부감사청구와 언론보도 요청 정도였지만…

이미 ‘공표’된 공채지원자의 논문의 표절 여부를 가리는 심사에서는 논문필자가 새로 제출한 논문과 공표된 논문의 내용이 다르니 표절을 주장하는 사람이 이를 입증하라고 하고, 당사자가 교원공채 지원을 철회했다는 이유로 표절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고 종료시켰다.

반면, 같은 공채에 지원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본인에게 표절 심사를 하는지 통지도 하지 않고 아무런 소명기회도 당연히 주지 않고 단 두 줄로 표절이라는 판단을 했다. 사리만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일에 대해 책임자는 “심사위원회 구성이 바뀌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답한다. 반지성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김 교수와 다른 점이라면 국립대에 근무하고 있고, 나를 이해해 주는 이들이 대학 내에 적지 않았다는 것, 그뿐 아닐까. 화살은 사법부만이 아니라 반지성의 행태를 보이는 대학사회의 곳곳을 향해 발사돼야 한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헌법
서울대에서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는 「‘군사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에 관한 소고」,「이른바 ‘허위사실유포죄’는 없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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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2012-02-14 14:24:51
영화가 300만명이 돌파했지만, 사법부와 개인의 대결로만 치닫고 있는데요. 실제로 학자로서의 양심이 외면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영화는 기득권과의 싸움이죠. 학계도 예외일수 없습니다. 기득권에 타협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참 외로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부러진 화살이라도 쏘면서 균열을 가해야할 것입니다. 언젠가 무너질테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