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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 꼴찌 충격에 정책적으로 예산 투입” … 허울에 갇힌 취업률 지표경쟁
“취업률 꼴찌 충격에 정책적으로 예산 투입” … 허울에 갇힌 취업률 지표경쟁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1.12.26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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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학의 운명 뒤바꾼 ‘교내취업률’

“취업률이 꼴찌 수준이다 보니 충격이 컸다. 교비를 투입해서라도 (교과부 지침에 따라) 학생들 교육을 시켜야 했다. 정책에서 우선순위를 ‘교내취업’에 둔 것일 뿐이다. 교과부에서 허용한 범위 안에서 시행한 것이다. 어차피 다른 대학도 같은 조건이 주어진 것 아니냐.”

교내취업률 비판을 의식한 A대학 취업지원처장의 말이다. 교과부의 요구대로 취업률을 끌어올리려고 교내취업자를 늘린 것이 정책적으로 이뤄졌다는 말이다. 

A대학은 지난 5월, 취업률 지표 개선을 위해 본부 부처 계약직 직원을 포함해 행정인턴 등으로 졸업생만 324명을 채용했다. 산학협력단 계약직 직원 30명이 포함돼 있다. 작년까지는 교내취업자가 15명 선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20배 이상 늘린 셈이다.

국립대의 경우 기성회계를 투입해 교내취업자를 짧은 시간에 대폭 늘렸다는 일부의 비판이 있었다. 이를 감안해도 국립대 최다 교내취업자(279명)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올해 교내취업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졸업생들은 대학본부, 취업지원처, 단과대학 학과사무실 등지에서 직원들의 업무를 돕고 있다.

교과부가 지난 6월 1일을 기점으로 교내취업도 취업률에 반영하겠다고 밝히면서 11~12월 계속 취업여부를 묻는 ‘유지취업률’도 정보공시 대상으로 삼겠다고 발표하자 A대학은 처음부터 계약 기간을 8개월으로 가져갔다. A대학의 취업지원처장은 “행정인턴이라기 보다 졸업생 취업교육과정이다. 4학년 3학기라고 보면 된다. 일종의 기업체 재교육을 대학에서 맡은 것”이라며 “도중에 취업한 학생들에 대한 기업체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부터 교내 행정업무를 돕던 졸업생 324명 중 100여명이 외부 기관, 기업체에 취업해 지금은 200여명이 남은 상황이다. A대학은 이들과 계약을 4개월 연장할 계획이다. 

한편 A대학은 적잖은 재정 부담 탓에 졸업생 인력을 활용한 행정인턴제도를 내년에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올해 324명의 행정인턴들은 최저임금 90만원이 조금 넘는 100만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인건비만 연간 20억원 규모다. A대학은 “학교예산 10~20억원은 크지만 학교 행정이 한층 원활해졌고 재학생들 위한 행정서비스가 향상됐다”라고 자평했다.

교과부가 취업률을 앞세운 대학평가로 '대학 퇴출'까지 예고하자, 취업률 고민은 대학과 교수 몫이 됐다. 평가지표를 올리기만 하면 '대학 구조조정'을 모면함은 물론이고, 정부 재정지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 각종 편법이 자행되고 있다. 대학교육이 위협받고 있다. 고려대 학생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교내취업률 빼보니 … 경상대 ‘91계단’ 곤두박질

교육과학기술부는 교내취업에 고용안정성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올해 6월부터 ‘교내취업률’을 정보공시에 포함시켰다. 교과부가 인정하고 있는 교내취업자는 △고용계약기간 3개월 이상 △상시근무자 △건강보험 가입자(6월 1일 기준) 등이다. 이들은 취업률에 반영된다.

지난 9월초 교과부는 사립대를 대상으로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4년제 28곳, 전문대학 15곳)과 학자금대출한도제한 대학(4년제 9곳, 전문대학 8곳)을 발표했다. 같은 달 말, 충북대, 강원대 등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 5곳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평가의 당락을 가른 ‘취업률 산정방식’ 논란으로 진통을 겪어왔다. 평가 반영률이 최대 20%에 달한 취업률은 대학별 상대평가와 결합하면서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교내취업률’이 ‘부실대학’의 운명을 갈랐다는 문제제기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제로 그랬을까. 

대학알리미를 통해 ‘전국 4년제 대학 교내취업자 비율’을 산출해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4년제 국공립·사립대 191개 대학(캠퍼스도 별개 대학으로 인정) 중 올해 교내취업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계명대(324명), 경상대(279명), 조선대(135명), 전북대(135명), 부경대(123명) 순이다. 

조사대상 대학 중 교내취업자 수 평균 24명을 웃돈 대학은 63곳이다. 이들 대학의 평균 교내취업자 수는 62명으로 전체평균의 2배에 달했다. 반면 평균 이하로 채용한 128개 대학들은 대학당 6명을 교내에 취업시켰다. 

취업자 중에서 교내취업자의 비율을 살펴보면, 교과부가 유도한 취업지표 개선에 발 빠르게 대응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간의 차이는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교내취업자가 가장 많은 5개 대학을 보자. 교내취업자를 모두 미취업자로 가정했을 때, 계명대의 취업률은 84위(54.5%)에서 156위(47.2%)로 ‘하위 15%’에 가깝다. 경상대는 77위(55.1%)에서 168위(45.3%), 조선대는 110위(51.5%)에서 164위(48.3%), 전북대는 98위(52.3%)에서 145위(48.3%), 부경대는 66위(57.4%)에서 88위(53.7%)로 부경대를 제외하곤 모두 취업률 최하위권이다.

반면 교과부로부터 ‘부실대학’으로 분류된 강릉원주대, 강원대, 충북대는 각각 8명, 15명, 15명으로 취업자 중 교내취업자가 1%에 불과했다. 이들 대학 역시 같은 가정을 하면, 강릉원주대의 취업률은 103위(52.0%)에서 111위(51.4%), 강원대는 112위(51.3%)에서 120위(50.7%), 충북대는 138위(49.3%)에서 143위(48.8%)로, 취업률에서 ‘교내취업자 상위대학’들을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 교내취업률이 취업률 순위를 뒤바꿔놨다는 말이 사실로 드러난다.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선정된 경남대와 경성대도 다르지 않다. 취업률 47.5%로 152위를 기록한 경남대는 교내취업자 29명을 빼면 160위(46.5%), 경성대는 154위(47.4%)에서 166위(45.9%)로 소폭 하락한다. 그러나 두 대학 모두 지역사립대인 계명대, 조선대와 취업률이 소수점 차이로 좁혀진다.

네 대학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 사립대이지만 실질 취업률은 전국 하위권을 면치 못해 지역대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교내취업률은 그러나 네 대학의 운명을 갈랐다. 올해 계명대는 ‘학부교육 선도대학’에 선정됐고, 경남대와 경성대는 ‘부실대학’에 선정됐다. 이 때문에 대학은 교과부가 내놓는 평가지표 하나하나에 기민하게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대의 심각한 취업난 드러나

교과부는 서둘러 취업률 개정안을 만들고 있지만 취업률을 앞세운 대학 간 경쟁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대학가의 비판이 뜨겁다. 일단 교과부는 교내취업자 기준을 보강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찬영 교과부 사무관(취업지원과)은 “시행 전에 10여개 대학을 대상으로 점검을 했지만 대학에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최소 고용계약기간을 3개월에서 1년 이상으로 고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 한해 주요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의지를 경험한 대학들은 이미 평가지표 경쟁에 돌입했다. 교내취업은 일자리가 제한돼 있고 직업의 연속성도 떨어진다. 행정인턴, 재학생 학습 튜터나 멘토 등 수개월짜리 단기채용은 취업이라기보다 아르바이트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이듬해 졸업생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일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부가 준비 중인 개선안은 ‘길어야 1년짜리 계약직’임을 알면서도 취업지표만 올리면 된다는 식이 아닌지 우려된다.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대학교 기획처장협의회 정기총회에서 기획처장들은 “형식뿐인 취업률 지표 경쟁에 대학이 언제까지 매달려야 하느냐”라며 “온통 수치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현장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교과부가 조장하는 평가지표 경쟁 속에서 내년에는 또 어떤 대학들이 명암을 달리할까.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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