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1:20 (목)
한국적 연구시스템=제도+사회적 인식변화
한국적 연구시스템=제도+사회적 인식변화
  • 문만용 카이스트 과학사
  • 승인 2011.12.07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 '에포켈 모멘텀' 학술대회

지난달 2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 과학발전사의 주요 업적들을 역사, 문화적인 관점에서 고찰한 흥미로운 학술대회가 열렸다. 교육과학기술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후원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소장 한도현 사회학)가 주최한 '에포켈 모멘텀(Epochal Momentum): 한국과학발전사의 우수사례들을 통해 배우는 과학문화발전의 방향'이 그것이다.

혜강 최한기의 기학에서 21세기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모델을 모색(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하거나, 세종 이도로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기술의 전통'을 이어받자는 주문(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의보감』과 『의방유취』등 전통의학의 기본 작업을 조명한 논의(신동원 KAIST) 등을 비롯, 오늘날 기업-포스코(POSCO) 사례를 통해 기업의 기술발전이 과학문화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진단(송성수 부산대)하고, 특히 최근 과학비지니스벨트와 논의와 관련해 시의성 있는 한국적 연구시스템 형성 문제를 고찰한 논의(문만용 KAIST 과학문명사연구소) 등 흥미로운 접근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문만용 KAIST 교수의 「한국적 연구시스템의 형성과 사회발전」의 결론 부분을 발췌한다. 문 교수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제대로 된 연구활동을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연구소 설립 당시의 초심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부출연연구소, 연구 풍토 기반 다져

지난 2007년 9월 대덕연구단지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핵융합센터에 설치된 한국형 핵융합로에서 연구원들이 시운전을 준비하고 있다.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인 이 핵융합로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완공했다. 사진=핵융합연구센터
정부출연연구소는 그동안 직접적인 연구결과물 외에도 많은 유무형의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해외의 우수한 연구자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함으로써 두뇌유출(brain-drain)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초석이 됐다. 196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전 세계에서 두뇌유출이 가장 심한 국가였으며, 그에 따라 정부는 해외유학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KIST의 해외인력 유치 성공에 고무된 정부는 해외유학생의 귀국을 촉진하는 적극적 정책으로 전환했으며, 1970년대 KIST를 모델로 하여 연이어 설립된 분야별 정부출연연구소들이 해외의 과학기술두뇌를 대거 유치함으로써 한국의 두뇌유출은 크게 완화됐다.

이처럼 정부주도로 연구소를 세워 해외에 머물고 있는 자국의 고급 인력을 돌아오게 한 한국의 사례는 두뇌유출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많은 개발도상국가에 유용한 모델이 된다. 또한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실질적인 연구개발 경험을 쌓은 고급 인력들이 대학과 산업계로 퍼져나가면서 고급 과학기술도 함께 전파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즉 정부출연연구소는 고급 과학기술인력을 유치하고 양성해 사회 각계에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는 정부출연연구소의 가장 큰 기여 중 하나였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산업계가 연구개발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KIST가 채택한 계약연구체제는 연구자는 수요가 있는 연구를 하고, 산업계는 연구개발에 비용을 투자할 필요와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연구개발에 대한 풍토를 변화시키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197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 기업들이 단순모방이나 기술도입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구비를 들여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한다는 인식이 매우 낮았다.

이에 따라 연구원들은 연구개발의 의의와 가치를 알려나가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연구소와 연구과제계약을 통해 경영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상업적 성공을 거둔 기업들의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연구개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확산돼 갔다. 그리고 산업분야별 전문출연연구소 역시 계약연구체제를 기본 운영체제로 받아들였고, 주된 수탁자가 산업계가 돼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산업계의 연구개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물론 산업계 인식 변화가 전적으로 정부출연연구소의 기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큰 몫을 담당했음은 분명했다. 정부역시 연구소 활동을 배경으로 기술개발촉진법을 제정해 산업기술 연구개발활동을 북돋았으며, 연구소 개발기술의 상업화 과정을 통해 국내개발기술의 보호 필요성을 깨닫고 관련된 법규를 정비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을 해나가게 됐다.

연구소로서 가장 큰 성과는 역시 연구개발결과 그 자체일 것이다. 1970년대초 전량 유럽으로 수출됐던 주름빨대 같은 간단한 상품에서부터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소형전자계산기, 그리고 의뢰사를 세계적인 비디오테이프 생산회사로 발돋움하게 한 1970년대 후반의 PET 필름 등은 산업계가 연구개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성과들이었다. 1980년대 이후로는 한국을 세계 열 번째의 전전자교환기 개발국가로 만든 TDX-1, 반도체 산업의 발판이 된 4M DRAM, 한국을 이동통신 강국으로 올라서게 한 CDMA 상용화 기술, 현재까지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디지털 TV 기술 등도 정부출연연구소의 손을 거쳤다.

또한 한국형 표준원전 계통설계나 경수로용 핵연료 국산화 등의 원자력 연구, 한국인 유전체 해독이나 인공씨감사 대량생산기술 등의 생명공학 연구, 과학실험용 위성 등 우주산업기술분야 연구개발도 주목을 끌고 있다. 많은 성과들이 기업, 대학, 연구소의 공동프로젝트로 추진으며, 그 과정에서 정부출연연구소는 연구개발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2004년의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KIST는 설립 이후 2003년까지 투입대비 33.1배의 성과를 보였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투입대비 28.6배의 성과를 거두었다. 점차 미래지향적이고 공공적 성격의 연구가 강조되면서 정부출연연구소 연구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 측정되는 이상의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과학기술자의 가치 인정 필요

2011년 10월 25일 첨단 공학기술을 집약해 제작된 5대 국새가 처음 사용됐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튿날 한 과학기자는 '국새 단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국새 보도에서 국새를 만드는데 밤낮을 잊은 과학자들과 기술에 대한 언급이 한 줄도 없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아울러 상암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가 기념축사에서 제외됐고, 한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준공기념식에 초대받지도 못했다는 설명과 함께 과학기술인을 무시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언급했다. 한 연구소 원장은 “문제가 생기면 과학기술인들에게 책임은 칼 같이 물으면서, 뭔가를 만들어 놓으면 서로 자기가 했다고 하고, 거기에 온 힘을 쏟은 과학기술자들 이름은 쏙 빼놓는다”라며 “잘 되면 자기들 덕이고, 잘못되면 과학자 탓으로 돌리는 관행이 남아있다”라고 지적했다.

1960년대 후반 KIST가 유치했던 연구자들이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된 요인은 높은 급여만이 아니었다. 과학기술자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연구활동을 통해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과학기술자들이 투입된 연구비에 맞는 몫을 못하고 있다고 보는 시선이 늘어났고, 연구개발활동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제도들이 등장했다. 과학기술자들이 자식들에게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낯설지 않게 됐다. 30~40년 전과 달리 이제는 연구소 수와 연구자 수가 월등히 늘어났고, 그들이 모두 KIST 설립 초기에 해외에서 유치한 과학기술자에게 제공했던 월등한 처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자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작은 일로부터 과학기술자들은 힘을 얻을 수 있다. 과학기술을 위해 연구비, 기자재,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중심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과학기술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효율과 성과를 내세워 과학기술계에 각종 규제와 관료적 통제를 가하는 것보다 과학기술자들의 자부심을 키워주고 좀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활동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막대한 정부 예산으로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운영을 위해 국공립이 아닌 정부출연기관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던 철학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과거의 제도와 문화 역시 적응을 위해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잊지 말고 되새겨야할 원칙과 의미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과학기술 발전 속에서 수십 년 전 우리의 과학기술계를 돌아보는 이 글의 목적 역시 그같은 의미와 교훈을 찾기 위해서이다.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연구개발 예산 속에서 우리는 더욱 기본적인 가치들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문만용 KAIST 과학사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근대과학 형성 자료』, 『한국의 현대적 연구체제의 형성』등이 있다. KAIST 문명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