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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높아지는 학계의 차기정부 정책 주문
[풍향계] 높아지는 학계의 차기정부 정책 주문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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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6 11:55:17

지방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선거에 대한 열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학계에서도 현 정부의 실적을 바탕으로 차기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해 제안하는 목소리가 점차 드높아지고 있다. 특히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는 분야는 현정부 들어서 많은 정책 변화를 보인 대북 정책과 한반도 관련 문제, 경제와 노동 문제 그리고 의료나 사법 분야 등 사회 현안 문제 등이다.

현정부에 대한 논의에서 우선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최근에 열렸던 정치구조 관련 토론회. 특히 지난 19일 헌정기념관에서 있었던 한국정당학회의 ‘국회와 정당관계의 재정립’은 대통령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의회를 강화시킬 방안을 논의해 눈길을 끌었다.

김욱 배재대 교수(정치학)는 현재 임기 5년과 4년으로 돼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주기를 같이 맞추고,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를 명부식 비례제로 바꾸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선거와 국회의 운영’이라는 발표를 통해 “최근 국회개정법이 자유투표제나 법안축조심사 등 바람직한 제도들을 대폭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정당규율이 강하고 정당보스가 공천권과 정치자금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공천권과 정치자금, 원내정치자원의 민주적인 배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현우 사회과학데이터센터 연구원은 ‘국회의장의 리더십과 자율성 강화’라는 발표를 통해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의 권한 강화를 국회 자율성의 척도로 보고 정책을 내놨다. 이 교수는 국회의장의 임기를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것, 국회의장의 의회 유지와 국회의원 통제를 위한 자원과 권한의 배분, 국회운영에 대한 불문율 준수 등을 제안했다.

대북정책, 경제정책 팽팽한 대립 구도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발간된 ‘통일경제’ 80호, 81호에서는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학계의 대조적 시각이 잘 드러난다. 오일환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정치학)는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고조됐던 한반도 위기가 지난 4월 임동원 특보의 방북을 통해 진정국면에 들어서면서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점차 개선할 수 있는 대화와 협력 분위기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며 현정부의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의 반응은 기대와 달리 체제 공존, 교류와 협력에도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북한, 국내여론, 국제환경이라는 3가지 요소가 잘 조화돼야하지만 햇볕정책은 이런 요소에 부합하지 못했다”라며 정책 선회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햇볕정책’으로 통칭되는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에서 학계의 의견은 언론을 통해서는 거의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80%에 가깝게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일반인들의 정서와는 차이가 있다. <교수신문 231호 참조>경제 문제에서는 재계와 노동계의 시각이 뚜렷하게 대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학계 역시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자본’과 ‘노동’의 관점이 점차 뚜렷하게 갈라서고 있는 구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정부나 그 연장선상에 있는 여당 후보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진보적이든 비판적이든 부정적 관점을 갖고 있다. 최근 보수적 성향의 학자들과 재계에서는 노무현 민주당후보가 내세운 “‘자유 경쟁’과 ‘사회연대’를 통한 ‘성장과 분배의 조화’”에 대해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겠는가”라는 식의 회의적인 관점을 보여 왔다. 그러나 진보적 학계는 다른 관점에서 현재의 정부여당과 여당 후보를 비판하고 있다. 7월 13일 ‘차기 정부의 노동정책과제’라는 주제로 제6회 대안정책연대회의 포럼이 열린다.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진도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이 주제를 잡은 이유에 대해 “노사관계와의 시정과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은 차기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말한다. 이 포럼에서는 박 교수를 비롯,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사회학),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치학),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학) 등이 참가해 노동자의 경영 참여 문제 등과 같이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정책에 대한 현 정부와 차기 정부에 대한 진보적 사회과학계의 입장 정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와 법학 분야 등과 같이 개혁이 필요한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비판의 초점은 시장주의적 관점과 관료주의적 개입의 정책 비일관성에 맞춰졌다. 특히 의약분업, 법과대학 개혁안 등 여러 가지 현안이 불거져 나왔으나 이를 해결할 만한 사회적 합의기제를 만들어 내지 못했던 탓에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뜨겁다.

사회정책, 시장주의·관료주의 혼선

최근 나온 ‘사회 비평’ 여름호에서는 의료와 법학 부문에 대한 개혁을 다루고 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민간 위탁 후 수익성 추구가 의료보호 환자의 의료비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의료 정책의 시장주의적 접근에 대해 비판했다. 의료 서비스의 공급 주체가 민간에 치중된 결과, 무정부적인 공급구조 속에서 민간부문 전체가 시장 참여자로서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것. 김 교수는 “상품이 된 보건의료 서비스는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정보와 지식의 불균형을 안은 채로 ‘거래’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가의 역할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라고 단언한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개입이 원만치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의료문제를 시장에 책임을 전가한 정부라면 이미 개입 자체가 신뢰를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한편 ‘사회 비평’ 같은 호에서도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학)는 ‘사법개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는 글을 통해 사법계의 대대적인 개편을 제안한다. 그는 “현재의 사법시험제도는 민주화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정치적 관료주의와 경제적 시장주의의 원칙없는 혼합물에 불과하다”며 변호사 자격시험 도입, 전문법학대학원의 설치 등 “사법계도 기득권을 버리고 문호 개방을 유도해 사법의 민주화와 분권화가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4년 반의 기간 동안 이전 정권과는 차별성있는 개혁정책을 시도해온 것으로 평가되는 김대중 정부도 연말의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해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현정부가 벌였던 여러 가지 실험들을 바탕으로 어느새 역사적 평가라는 밑그림을 바탕으로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려는 시도는 앞으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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