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0:05 (금)
로마에서 ‘古典’의 본질을 묻다
로마에서 ‘古典’의 본질을 묻다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 승인 2011.11.14 1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⑥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그 상실감·쓸쓸함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로 간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 등등 말이 많은 곳. 한 때 로마제국의 수도, 현재는 이탈리아의 수도. 그레고리 펙, 오드리 헵번 출연의 영화「로마의 휴일」을 떠올리며 나는 거기서 며칠 묵기로 했다. 많은 것들 중에 먼저 꼴로세움, 포로 로마노부터 보고 싶다. ‘古典’이란 게 뭔지 직접 느끼고 싶어서다.

중국과 교류하기 전 경주는 한때 서양 문명을 대표했던 로마제국과 교류했단다. 철인황제로 불리는 제16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황의『自省錄』이 연상되는, 자기성찰의 글『명상록』을 남겼다. 그의 自省은 로마제국의 평천하(武) 가운데서 금욕적 수신(文)을 보여준다. 동양의 ‘聖學’ 풍경 같다.

나는 알프스산맥을 뒤로 하며 생각한다. 산맥 하나를 두고 왜 공간·美의 표현 기법이 다른 걸까. 저 알프스 산맥 북쪽은 침착한 성격의 사람들, 게르만의 문화. 중세건축 계통의 초기기독교→로마네스크→고딕→고딕복고(Gothic Revival) 양식이 펼쳐진 곳. 오늘날 세계는 바로 게르만의 활무대 아닌가. 반면 남쪽은 명랑한 성격의 사람들, 라틴의 문화. 지중해 세계에 기원을 둔 고전건축 계통의 그리스→로마→르네상스→바로크→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양식이 펼쳐진 곳.

지난 5월 초,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스위스 알프스 최고봉(해발 3,454m) 융프라우요호를 갔다가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 굴곡이 있는 산비탈의 초원에 드문드문 보이는 나무집 풍경 뒤편으로 눈 덮힌 알프스가 보인다. 사진=최재목

융프라우요호의 모습. 눈이 많이 내려 전망을 제대로 찍을 수 없어, 하는 수없이 전망대 내에 비치된 정상 풍경 사진을 대신 찍었다. 사진= 최재목
그랬다. 내가 둘러 본 북쪽은 빛이 적고, 뭔가 음울하다. 안개와 어둠 속에 흐릿하게 초목들이 서 있고, 흐린 視界, 입체적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그런 풍광을 감싸 껴안은 깊은 숲은 신비스럽지만 동시에 공포스러운 것. 여기서 추상성, 내면성, 신비성이 나오고, 여기에 기독교의 초월성이 전체 분위기를 엄숙함으로 이끈다. 건축에선 보호막처럼 ‘壁’이 발달하고, 자연세계의 중력을 받는 그 중량감을 수직의 여러 선들 즉 ‘線條要素’로 감춰버린다. 그 대신 天上的 공간을 만들어 神의 가호와 그 위대함이라는 가상의 힘을 추상적으로 수식하여 표현한다. 이것이 고딕 건축 양식의 요점이다. 

내가 가는 남쪽은 어떤가. 빛이 풍부하니, 밝은 빛 아래 모든 것이 선명히 그 자태를 드러낸다. 탁 트인 視界, 빛과 그늘은 분명한 대비를 이루어 간결한 입체성을 보인다. 자연은 위협적이지 않고 질서와 조화를 가진 걸로 인식되고. 그 원리를 찾아내려는 이지적 태도가 생겨난다. 여기서 구상성, 외관성, 입체성이 두드러지며, 대지에 우뚝 직립한 인간 신체의 숭고함을 발견한다. 전신의 근육을 써서 자신의 육체를 들어 올리는 균형을 잡은 인간의 두 다리처럼, 건축엔 ‘기둥(柱)’이 발달하고, 柱列이 두드러진다. 기둥을 主役으로, 떠받히고 받혀지는 일련의 관계, ‘땅·바닥·‘기둥’·들보·처마’의 한 세트 즉 ‘오더(Order)’는 핵심요소다. 오더는 자연세계의 중력을 현실로서 받아들여 그 중량감을 인간 자신의 신체로써 이지적으로 떠받히는, 구상적·조화적 미를 표현한다. 이것이 그리스 건축 양식의 요점이다.

로마는 바로 이 그리스 유전자로 자신의 골격을 만들어 간다. 또한 그리스의 귀신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바꾸며 아이덴티티를 찾았다.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둘이 단짝이 된 이유다. 현재의 로마는 그리스문명을 바닥에 깔고, 중세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건축, 과학기술을 겹겹 축적해온, 하나의 타임캡슐이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기차는 어느새 로마의 떼르미니역에 도착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유독 눈에 띄는 것. 중국인이 많고, 지저분하다는 것. 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겹다.

여장을 풀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꼴로세움’. ‘거대하다’는 ‘꼴로쌀레’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말답게 웅장하다. 둘레 527m, 높이 48m, 로마에서 가장 큰 원형 극장. 관중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원형이라지만 허물어져 겉으론 반 토막, 안에 들어서면 원형이 맞다! 목숨을 걸고 처절히 싸우는 검투사들, 열광하는 관중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처럼, 피냄새가 진동할 듯한데, 가만히 보니 지하 통로도 있다. 맹수가 튀어나오던 곳이겠지. 상부에 올라서니, 아! 주변으로 그리스 고전양식 ‘오더’가 보이기 시작한다.

꼴로세움의 외관. 둘레 527m, 높이 48m, 로마에서 가장 큰 원형 극장. 관중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며, 원형이라지만 허물어져 겉으론 반 토막처럼 보이며, 안에 들어서면 원형을 알 수 있다. 사진=최재목

꼴로세움 내부 모습. 내부 바닥은 무너져 있고, 복원 중이다. 원래의 모습은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내부 지하엔 통로가 있고, 도르레를 사용하여 문을 열면 맹수들이 튀어 나오고, 검투사들은 죽을 때까지 싸웠단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로마제국의 폭력성이 느껴진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을 탄압했다는 말도 있으나 명확치 않다. 아울러 이곳에서 물을 가두어 모의해전장으로 사용했다는 말도 있지만 짐작이 안 간다. 사진=최재목
베네찌아 광장 쪽으로 가는 길엔 로마의 가장 오래된 도시광장 포로 로마노(라틴어는 포룸 로마눔)가 있다. 사법·정치·상업·종교의 중심지. 그런데 쳐다보면 볼수록, 왜 이렇게 쓸쓸해지는 걸까. 뼈대만 남은 遺跡群. 고전의 미와 규범은, 그립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접근도 회복도 불가능하겠다는 직감. 상상으로 그리던 전통 산수화처럼, 모범이 되는 미의 세계를 숭배하고 그 고상함에 겸허히 다가서려는 고전주의의 본질은 붕괴의 상실감과 그리움에서 오는 걸까. 포로 로마노의 땅바닥에 돋아난 잡초들처럼, 고전이 파괴된 자리엔 온갖 예술형식들이 출현하고. 지금 ‘아, 옛날이여!’에 몰입한 우리의 고전 독서열풍이란 또 뭘까. 로마에서 생각해본다.

로마의 가장 오래된 도시광장 포로 로마노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전차경기장. 25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 최대의 경기장 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공터로 썰렁하다. 영화 <벤허> 때문에 유명해졌다. 두 필의 말이 끄는 2륜 전차, 네 필의 말이 끄는 4륜 전차가 달렸던 상상은 재미있으나 로마제국이 흉폭성이 느껴진다. 사진=최재목
최재목 영남대·철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