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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 구갑우 서평위원/북한대학원대학·정치학
  • 승인 2011.10.2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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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정치학
위계가, 계급이, 구조화되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저항조차 특권일 수 있는 그런 사회. 사회의 사다리 아래쪽에 있는 청춘들에게 그 위계는 아픔과 절망으로 다가오리라. 그 청춘들을 만나려는 여러 노력들이 책으로 나오고 있다.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아프니까 청춘이다』,『 박경철의 자기혁명』등이다. 그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려 한다는 점에 이 책들의 미덕이 있다. 희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베스트셀러의 틈 속에 있는 작은 번역본 하나.『 분노하라』다. 저자 스테판에셀은 이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였고 이후 외교관을 지낸, 93세의 노인. 책 제목 자체가 獅子吼다. 어찌 이런 제목의 책이 그리고 프랑스 남부의 작은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이 200만부나 팔렸을까. 얇은 책이기에 싼 책값도 한몫 했으리라.

책은, 1944년 프랑스의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가 제출한 개혁안에서 출발한다.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방도들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퇴직 연금제도.’‘각종 에너지원, 전기와 가스, 탄전, 거대 은행의 국유화’,‘ 경제계·금융계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독립된 언론’,‘ 어떤 차별도 없이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가장 발전된 교육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내용들이 독일의 나치에 저항하는 프랑스의 모든 세력들이 모인 평의회에서 제시한 개혁안의 주요 골자였다. 마치 오늘을 위한 개혁안을 보는 듯하다.

늙은 레지스탕스는 이 개혁안을 실현하는데 더 이상 국가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주장에 대해, 전쟁 직후 파산 직전이었던 프랑스 경제가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는데도 재원이 없다고 강변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영역에까지 금권이 장악을 했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논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어떻게.

레지스탕스의 동기가 분노였듯이, 분노하라, 말한다. 분노할 때,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된다는 것이다. 그가 학교 선배 사르트르로부터 배운 것은, 벤야민이 보았던‘재앙에서 재앙으로 이어지는 정할 길 없는 흐름’이 아니라‘인간의 자유가 한 단계 한 단계씩 진보’하는, 절대자유주의, 즉‘어떤 권력에도, 어떤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이었다. 절대자유주의는 그에게 세계인권선언의 작성과정에서 주권을 고려한‘국제적’이란 표현이 아니라‘보편적’을 선택하게끔 했다. 절대자유주의는, 90세가 넘어 찾아간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에서 벌어지는 반인륜적 범죄에 분노하게끔 만든다(김재명,『 오늘의 세계분쟁』참조).

그러나 그의 분노는 희망을 가지는 분노다. 그는 말한다.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그리고 청춘들에게 제안한다.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우리의 선배들은 청춘들에게,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가. 반성의 기준점을 잃어버린 탓일까. 그러나 저항이 곧 창조이고, 창조가 저항이라는 에셀의 말은 지금 여기에서도 크게 울린다.

절대자유주의를 담보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위해, 정당에, 시민단체에, 조합에 참여하라는, 그리고‘한 단계 높은 정치적 창의성’을 가진 제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그의 호소도 그렇다. 『분노하라』는 현재를 감전시킨 93세 레지스탕스가 청춘들에게 말하는 우리시대의 정치학이자 윤리학이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아폴리네르의시구처럼,“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구갑우 서평위원/북한대학원대학·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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