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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큰 입
메기의 큰 입
  • 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근대사
  • 승인 2011.10.10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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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강원도의 한 계곡에서 밤낚시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야행성인 메기를 낚기 위해 간단한 도구를 챙겨들고 인적이 없는 산골짜기를 찾아갔지요. 잘 알려진 대로 눈이 아주 작은 메기는 낮에는 바닥이나 돌틈에 숨었다가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움직입니다. 제 철은 아니지만 어둠이 깔리는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제가 잡은 메기는 미유기, 또는 산메기로 불리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어종입니다. 주로 산간지방의 청정수에서 사는 우리나라 특산이랍니다.

네 개의 긴 수염을 가진 메기는 입이 큽니다. 입이 커서인가요? 메기는 욕심이 많아서 낚시에 속임을 잘 당합니다. 그래서 메기를 유인하는 데는 지렁이로 충분하고, 찌도 필요치 않습니다. 메기낚시가 큰 준비와 기술이 없어도 되는 건 욕심이 많은 메기가 입질을 하지 않고 곧바로 미끼가 달린 바늘을 물고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한 번의 입질로 죽음에 이르는 가여운 존재가 메기입니다.

물소리만 들리는 어두컴컴한 계곡에서 저자거리의 수많은‘입 큰 사람들’을 생각하며 메기를 낚은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저는 물고기를 먹지 못하기에 잡은 메기들을 놓아주었습니다만, 생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토종이 다 그렇듯이 산메기도 점점 사라져간다고 들었습니다. 환경오염을 탓하기도 하고, 너무 많이 잡아서 씨가 말랐다는 주장도 나왔지요. 저는 거기에 별다른 입질 없이 욕심과 목숨을 맞바꾸는 메기의 특성을 멸종위기의 원인으로 덧붙이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눈 작고 입 큰, 메기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입질 없이,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로비스트의‘바늘’을 꿀컥 삼키고는 그로 인해 패가망신의 길을 걸은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무릇 기하이던가요? 물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입 큰 사람들의 스토리는 대통령의 측근 등 거물급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독이 될‘미끼’를 덥석 무는 건 직위의 높고 낮음과 관계가 없으니까요. 끝이 올 때까지 끝이 없다는 점에서 욕심은 정말 무섭습니다.

인도의 벵골 지방에서 전해지는 황금코브라에 관한 이야기도 그걸 알려줍니다. 일곱 명의 아들을 가진 한 어머니가 낳은 여덟 번째 아들은 코브라였습니다. 막내아들은 상심하는 어머니에게 매일 한 토막씩 자신의 몸을 떼어내어 황금으로 만들어주었지요. 허나 욕심 많은 어머니는 황금을 더 가지려고 어느 날 코브라의 몸을 두 토막이나 잘랐습니다. “이제 저주가 풀렸어요. 욕심 많은 사람이 나를 죽여야 저주가 풀리거든요.”코브라는 웃으면서 죽었습니다.

욕심은 욕심을 낳고 부패와 짝을 이룬다는 점에서 문제가 큽니다. 게다가 욕심과 부패는 시간이 갈수록 살이 찝니다. 현 정부 공직자의 부패행위가 이전 정부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통계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건 그래서이지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선언이 나오지만, 지내보면‘구관이 명관’인 기막힌 현실이 반복되니까요. 큰 걸 꿀꺽해도 죽지 않고 遊泳하도록 용인하는 사회적 풍토와‘너무도 인간적인’우리의 사법처리 관행이 문제일까요? 욕심을 경계하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인도에도 부정부패는 극심합니다. 장관과 정치인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뉴스’이지요. 부정부패 혐의로 감옥을 다녀온 정치인과 전직관료들도 적지 않고요. 올해는 시민사회가 부패와의 전쟁에 미온적인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중입니다만. 지난달부터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권의 부패와 탐욕에 대한 항의운동도 같은 맥락이지요. 다수가 소수의 과도한 욕심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씨줄날줄로 얽힌 부정부패는 시공간을 넘어 보편적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엔 부정부패가 있다고 할 정도로요. 『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라는 책을 보면, 그 시대에는 대간, 감찰, 암행어사라는 제도를 이용했더군요. 우선은 제대로 기능하는 제도가 필수입니다. 가치관의 역할도 중요하고요. ‘입질’하는 것, 곧 콘텍스트를 염두에 둔 판단과‘역사적으로 생각하는’자세를 길러야합니다. 눈앞의 것에 급급하면 결과가 수반할 여러 경우의 수에 둔감하게 마련이니까요.

청렴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돈이 전부가 된 오늘날에는 황금의 유혹에 단호하게‘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영화「마이 페어레디」에 등장하는 일라이자의 아버지가 떠오르네요. 히긴스 교수를 찾아가 딸을 빌미로 돈을 요구한 그는 히긴스가 10파운드를 주겠다고 하자 돈이 많으면 행복할 수가 없다고 5파운드만 달라고 대꾸합니다. 그처럼 욕심을 누르기란 쉽지 않으나 그럴 가치는 충분하지요. 욕심이 앞서는 입 큰 메기를 보며 한 수 배웠답니다.

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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