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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어떤 인재를 키웠는지 자문해야 한다
대학이 어떤 인재를 키웠는지 자문해야 한다
  • 문용린 서울대 교수ㆍ전 교육부장관
  • 승인 2011.09.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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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 너무 안이했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 전 교육부 장관
동양과 서양의 대학은 출발부터 그 맥락이 달랐다. 대학교육을 발생시킨 정치 사회적 맥락이 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동양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대학교육을 가능하게 한 생태적 환경은 한무제 때부터 본격화한 관료제다.

C.로이드는 그 맥락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무제는 BC 140년에 최초로 과거를 시행해 시험성적에 따라 관리를 100명 뽑는다. 시험을 치른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과 전혀 상관없는 평민들이었다. 돈도 없고 특권적 배경도 없는 중국 내륙의 농촌사람들이라도, 머리만 좋으면 정부에서 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이런 자리는 그들에게 부와 특권, 영향력을 가져다줬다. 자리를 얻으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집과 집안, 마을에도 큰 명예가 됐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해 관리가 되는 것이 바로 모든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가 갖는 열망이었다. 이런 열망은 한무제 시기 이후 현재까지 2000년이 넘도록 동양인들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 오늘날에도 한, 중, 일에서는 여전히 권력과 부는 시험성적에 의해서 배분되고 있다. 이런 맥락 하에서 근대에 접어들면서,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나타나는데, 시험을 잘 봐서 출세하고 성공하려는 열망을 수용해서,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는 교육기관으로 성격이 굳어진다. 세 나라의 최고 대학인 베이징대, 도쿄대, 서울대가 현재에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적 예다.

그런 덕분에 한중일 세 나라에서 좋은 대학이란 다름 아닌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베이징대, 도쿄대, 서울대가 좋은 이유는 바로 그 나라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대학들은 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초, 중, 고 시절에 공부 잘했던 학생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대학은 이와 맥락이 다르다. 서양에서는 오랜 봉건시대 동안데 관리는 대학이 아닌 영주별로 기사를 양성해 충원시켰고, 대학은 길드조직의 도제양성 방법의 하나로 발달하게 된다. 즉 대학은 직업 전문가를 기르기 위한 직업중심 고등교육기관의 성격으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대학은 동양의 대학들과는 다르게 정치나 관리 또는 리더를 기르기 위한 엘리트 양성기관의 특성보다는, 직업전문가 양성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따라서 서양인들의 의식 속에는 대학은 구체적 직업에 대한 준비기관이며, 직업적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교육으로 생각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서양에서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직업에 대한 분명한 학과 전공 선택을 하게 된다. 즉 내가 이 대학의 이 학과에서 이런 전공을 하면, 어떤 능력을 갖고 졸업하게 돼,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전망을 갖고 대학을 선택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다르다. 대학은 직업에 대한 준비라기보다는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따라서 전공보다는 대학 졸업장이 더 중요하고, 가급적이면 더 평판 좋은 대학의 졸업장을 선호한다. 전공은 자기 선호와 맞으면 좋지만, 맞지 않아도 큰 상관없다. 전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학을 나왔다는 졸업장이 더 중요하고, 대학의 평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무슨 능력이 있는가보다는 대학 졸업자라는 간판을 더 중요시한다.

이런 이유로 서양의 대학들은 전공분야별로 특성화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돼 학과별로, 전공별로 더 잘 가르치기 위한 경쟁이 지난 수백 년간 활성화돼 왔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달랐다. 전공분야별 교육경쟁력보다는 대학의 명성과 평판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우수한 고졸자 유치 경쟁이 더 활성화 됐다. 대학의 경쟁력이 신입생들의 수능성적이 다른 학교보다 얼마나 더 높은가로 판단되는 이상한 현상이 과거에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있고, 아마도 당분간 앞으로도 꽤 오래 이어져 갈 것이다.

동양의 세 나라 중에서도 특히 한국은 대학 졸업장이 모든 국민의 필수자격증으로 인식돼 누구나 대학 진학을 희망하기 때문에 대학들은 경쟁할 필요 없이 학생의 충원이 언제나 가능했다. 이런 편안함 때문에 우리나라 대학들은 그간 너무 안이했다. 가르쳐서 직업 준비를 시켜주는데도 소홀했고, 학문별 전공역량의 배양에도 소홀했고, 등록금을 10% 이내에서는 매년 올려도 되는 것으로 착각도 하게 됐다.

대학을 바라다보는 싸늘한 눈초리에 대학인들은 예민해야 한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만큼의 교육적 가치를 되돌려 주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자문도 해야 한다. ○○대학 졸업생이라는 간판을 달아줬다는 자기 위안에 빠지지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웠는지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ㆍ전 교육부장관

□ <대학교육> 9ㆍ10월호(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수록된 「한국대학의 태생적 특성, 우린 너무 안이했다」를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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