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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상대 평가가 로스쿨 교육을 망치고 있다”
“엄격한 상대 평가가 로스쿨 교육을 망치고 있다”
  • 송기춘 전북대·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11.09.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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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이 가야할 길

송기춘 전북대·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은 다양한 학부 전공 또는 사회경험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 3년 동안 실천적으로 법적 사고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교육기관이다. 로스쿨 교육이 법과대학-사법시험-사법연수원을 통한 법률가 양성제도와 다른 점은 1회적 시험에 의해 법률가가 선발된다기보다는, 3년 동안의 충실한 교육과정에 의한다는 점, 다양한 전공과 사회경험을 가진 학생이 입학해 법률가가 된 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로스쿨 3년째인 지금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첫째, 로스쿨 또는 로스쿨 교육에 대한 근거 없는 오해와 불신이 적지 않다. 그 배경에는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통해 양성된 법률가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3년으로 제대로 된 변호사를 길러낼 수 있겠느냐, 졸업 후 소장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겠느냐는 말도 자주 듣는다. 3년 동안 뭘 배우겠느냐고 하면서도 너무 많은 실무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변호사시험에서 소송서류의 작성 이외에도 사례형 시험과 차별성이 별로 없는 기록형 시험까지 실시하고 있다.

둘째, 로스쿨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 대한 외부의 간섭으로 로스쿨 운영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다. 엄격한 성적 상대평가와 학사경고 및 유급제도는 로스쿨이 자발적으로 실시한 것이라기보다는 교육과학기술부 등 외부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셋째,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을 2012년에는 입학정원의 75%로 한다고 하나 이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합격률이 낮아지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공부만 하게 될 것이다. 사법시험에 의한 법률가 양성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법률가가 되기 위한 시간과 비용만 증가하게 된다.

넷째,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다양성이 흔들리고 있다. 로스쿨에서는 수강생 10명 이상인 과목은 D 이하 학점을 4% 이상의 학생에게 부과해야 한다. 수강생이 13~37명이면 D이하가 1명, 38~74명은 2명이다. 수강생 9명이하 과목은 A, B, C학점을 2-5-2(9명), 1-3-1(5명), 1-1-1(3명), A, B 각 1명(2명)과 같은 식으로 부과한다. 이런 방식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중요하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과목보다는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학기말 D학점의 참화를 입기 전까지는 자기가 나쁜 학점을 받지 않을 거라 자위할 수 있는 대형 강의와 C학점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소형 강의로 양극화한다. 각 로스쿨마다 표방하는 특성화 분야의 과목도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수강 부담이 많은 과목도 회피 대상이다.

로스쿨 교육이 정상화되려면, 우선 로스쿨에서 충실하고 다양한 분야의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 로스쿨은 변호사시험 대비 학원이 아니라 구체적 사건의 해결을 위한 법적 사고를 훈련하는 과정이라는 점도 다시 확인돼야 한다. 로스쿨에서 길러야 하는 실무 능력이란 바로 실천적인 법적 추론 능력이다. 그렇다면 3년의 교육과정은 법률가가 되는 데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소송 서류 작성 등 실무 교육은 방학 중 인턴 과정 또는 로스쿨 교육을 마친 뒤 실무에서 배워도 족하다.

로스쿨 교육을 흔들고 있는 주범은 아무래도 엄격한 상대 평가 제도다. 학점 남발을 막는다는 취지는 좋으나, 이 제도 때문에 학생들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과목도 다양하게 개설되지 못한다. 자칫 학사경고를 받을지 모른다는 부담 때문에 수강도 자유롭지 못하다. 교수도 폐강 위기 앞에서 씁쓸하다. 평가 제도는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변호사시험 합격률도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합격률을 얼마로 할 것인지보다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변호사 자격을 부여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고 이 수준의 능력을 갖췄으면 모두 변호사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송기춘 전북대·법학전문대학원
서울대에서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는「‘군사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에 관한 소고」,「 이른바 ‘허위사실유포죄’는 없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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