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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사고를 낳은 네덜란드의 풍광
기하학적 사고를 낳은 네덜란드의 풍광
  •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
  • 승인 2011.09.19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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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 ② ‘平地’와 ‘地平’에 대한 黙想

기차를 타고 가며 찍은 풍경. 지평선 위에 나지막이 줄지어 선 나무들. 그 위로 펼쳐진 압도적으로 너른 하늘, 그리고 구름群의 풍경. 네덜란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사진=최재목
네덜란드 동인도 종합상사 소속 선박 선원으로,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했던 헨드릭 하멜(1630~1692). 그들은 약 14년 간 조선에 억류돼 지냈다.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동인도 종합상사로부터 받아내기 위해 조선 억류기간의 생활을 기록한『하멜의 보고서』(일명『하멜 표류기』)(지명숙ㆍ왈라번,『보물섬은 어디에-네덜란드 공문서를 통해 본 한국과의 교류사-』(연세대출판부, 2003), 5장)을 읽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구절이 눈에 띄었다. 네덜란드에 직접 와서 보니 “아,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든다.

1654년 12월 초순의 기록. “당시 우리들의 (중국인) 숙소 주인이 매일 우리더러 땔 나무를 해오라고 들볶아댔기 때문에 날마다 3마일이 넘는 산길을 왕복해야 했음. 그러자니 매서운 추위도 추위거니와 산길에 서툰 우리들로서는 처참하고도 지극히 고역스러운 일이었음”(220쪽). 1657년 2월의 기록. “신임 兵使가 부임해왔으나 전임자와는 전혀 딴판이었음. (중략) 그래서 우리는 손수 나무를 하러 왕복 3마일의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해야만 했던 지라 정말 고달프기 짝이 없음.”(226쪽) 그들이 네덜란드에서 걸어보지 못했던 산길이 고통스러웠다는 기록이다.

네덜란드는 ‘신이 지구를 만들었다면,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사람이 만들었다’고 자부할 정도로 물과의 투쟁을 통해 상호 공생하는 지혜를 얻은 나라다. Netherlands는 (바다 보다)‘낮은’(nether=low) ‘땅들’(lands)이란 의미다. 우리나라 경상도만한 면적의 국토. 그 60% 이상이 저지대고, 25%는 간척지. 만일 방파제, 방수제, 방조제가 모두 허물어지면 국토의 60%가 물에 잠길 것이다. 한때 우리 초등 교과서에 소개되었던, 둑에 생긴 구멍을 몸으로 막아 마을을 구했다던 한스 브링커 소년의 이야기는 - 그 진위를 떠나서 - 네덜란드인들이 해수면보다 낮은 땅에서 수시로 침범해오는 바닷물, 비만 오면 범람하는 강물과 얼마나 오랜 시간 싸워 왔는가를 말해준다. 물을 관리하기 위한 각종 댐, 그리고 바닷물막이 둑을 1천900킬로미터나 건립한 나라.

평지 위에 구름이 떠 있고, 풍차가 있는 풍경. 잔세스칸스에서. 사진=최재목

양떼가 노니는 초원의 수로가 있는 모습. 간간히 풍차와 지평선의 숲이 보인다. 잔세스칸스에서. 사진=최재목

해수면보다 낮은 곳을 간척지로 만들기 위해 질퍽거리는 땅을 걸어 다니기 쉽게 만든 ‘나막신’, 물을 퍼내는 ‘풍차’. 모두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상품들이다. 아 참, 한 가지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튤립’이다. 네덜란드의 봄은 흔히 유럽의 ‘봄의 정원’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다양한 튤립으로 장식된다. 봄길을 차로 달려보면 한 권의 그림책 같다.

간척지에다 경지정리를 한 곳이 많아서 일까. 대부분 평지로 이뤄진 네덜란드. 기차를 타고 달리면 제일 눈에 먼저 띄는 건 끝없이 이어진 하늘과 맞닿은 지평들. 그래서 원근법, 소실점이란 용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진기한 풍광이다. 최고 지점이 고작 해발 321m라니, 땀을 뻘뻘 흘리며 산 정상에 올라 먼 곳을 조망하는 즐거움이란 기대하기 힘들다. 지평선 위쪽은 압도적으로 너른 하늘과 둥실 떠 있는 구름群. 그 아래는 나지막이 가지런히 펼쳐진 평지와 숲, 사이사이 이어진 반짝이는 물길. 이런 데서 살며 주로 배로 운하를 통해 이동했던 하멜 일행이 우리나라의 저 구절양장 산길을 나무하러 오르락내리락 했다니 얼마나 고달팠을까.

네덜란드의 평지를 바라보다 홀연 떠오른 시 한 수.

물결은 배 위로 출렁일 듯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
소들 양들 밟고 노는 풀밭
꽃을 노랗게 받쳐 든 水路
저건 바다와 싸운 상처다
튜울립 고랑 이어진 너머
희고 푸른 구름 첩첩 쌓여
線 따라 기대 말 없는 地平
원근도 평등하게 보인다
X축 Y축을 낳은 저 풍경

「地平의 線을 보며」

평지를 닮은 나의 서재 그림. 그림=최재목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네덜란드 생활 시기인 1637년에 쓴『方法序說』(제3부)의 일부가 기억난다. “어떤 숲 속에서 길을 잃게 된 나그네는 때로는 이곳으로, 또 때로는 다른 곳으로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되고, 또 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는 가능한 한에서 똑같은 방향으로만 일직선으로 걸어야 하며, 또 그 길을 선택하도록 시초에 결정한 동기가 지극히 우연적이라 하더라도, 그 때문에 그 길을 바꾸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방식에 의하여 그 나그네가 바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는 어디에서든지 숲속에서 빠져나오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김형효 역, 『방법서설』, 삼성출판사, 65쪽)

그런데,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좌표’를 잡아 가능한 한 똑같은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걸어야한다는 기하학적인 사고는 네덜란드와 같은 평지에서나 가능한 일 아닐까. 만일 그가 우리나라의 첩첩산중 계곡에 갇혀 책을 썼다면 아마 이런 비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재목 영남대·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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