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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언어를 넘어 '바까데미아'를 향해
공허한 언어를 넘어 '바까데미아'를 향해
  • 김수우 시인
  • 승인 2011.09.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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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대중화를 생각한다

이 글은 <인문정책포럼>제10호(2011 가을호,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수록된 김수우 시인의 「민간 주도의 인문학 커뮤니티」를 발췌한 것이다. <인문정책포럼> 제10호는 '인문학의 대중화'를 주제로 다양한 정책제언을 게재했다. 김수우 시인은 부산에서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민간 주도 인문운동을 살피면서, 이러한 인문운동이 대중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의 통찰력 깊은 글을 공유해본다.

인문학은 인간에게 기억을 되돌려주는, 그리고 미래를 찻씨처럼 품는 노력이다. 인간이 자연을 잃어버리면서 함께 잃어버린 건 지극함이다. 정화수를 떠놓는 새벽, 갓난아기 머리맡에 차리던 제왕판, 당산나무 아래 쌓던 작은 돌탑, 정성, 이러한 精과 誠은 곧 생명의 지극함을 이해하는 의지가 아니었던가. 이것이 곧 삶의 신성성, 인류의 본래적 지혜를 찾아가는 인문학적인 사유이다.

유네스코에서 마련한 최초의 '세계인문학포럼'이 11월 부산에서 열린다. 이런 시점에서 부산의 민간주도 인문학 현장을 일별하는 것은 우리 안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작은 시도가 아닐까. 인문학이 환대와 배려를 실천하는 일이며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볼 때 민간이 앞장선 인문운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쇠락한 원도심(구도심)이나 입시의 틈바구니에서 시작한 부산의 인문학은 그 실천적 영역을 관통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부산에 위치한 인디고 서원. 2004년 오픈 이후 지금까지 자유, 진실, 신념, 용기 등의 가치를 일궈온, 세계적으로 알려진 청소년 인문학 커뮤니티이다. 인디고 서원의 내부 모습이다.
우선 부산에는 '인디고 서원'이 있다. 2004년 오픈 이후 지금까지 자유?진실?신념?용기?평등?공생?희망?정의 등의 가치를 일궈온 '인디고 서원'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청소년 인문학 커뮤니티이다.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성장 INDIGO YOUTH들의 실천은 이 시대 교육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보해냈다.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INDIGO+ing'을 창간했고, 당대의 지식인과 실천가들을 초대,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토론하는 '주제와 변주'를 마련했다.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토론의 장 '정체청세'를 만들었고,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6개 대륙의 창조적 실천가들을 부산에 초청해 진정한 미래를 읽는 '인디고 유스 북페어'를 탄생시켰다. 나아가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국제 인문학 잡지 <INDIGO>를 창간했다. 또한 낭독과 영상이 담긴 인문학 콘서트, '작은 혁명가를 위한 작은 식당' 에코토피아를 운영하는 등 다각도로 인문학적 가치를 풀어내고 있다.

 

다음으로 원도심 인문학 운동을 주도하는 '백년어 서원'이 있다. 근대사가 고스란한, 한때 문화와 경제의 르네상스였던, 지금은 쇠락한 동광동. 인쇄 골목 한켠 15평 남짓한 이 인문학 북카페에는 버려진 폐목을 깎아 만든 백 마리의 물고기가 황량한 도시를 거슬러오른다. 2년 6개월 동안 백년어서원은 그동안 250여 회의 인문학 강좌 및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조금은 무모한 노력이 시민들로 하여금 원도심과 인문학을 주목하게 하면서 실천적 지식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일정한 주제를 가진 연속 강좌인 '인문학 깊이 읽기'와 강의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되는 '주말 문화읽기'를 통해 가치에 대한 일관된 방향을 견지하면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접근, 공동 관심사의 원천을 끌어낸다. 인문에 깊이 더 접근하려는 그룹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아)가 창설됐다. 그 외에도 '눌독서회', '백년어독서회', '저자와의 만남', '낭독의 밤'을 비롯 '인문학콘서트', '철학스터디', '번개특강', '창작교실', 소식지 <백년어>를 발간하고 있다. 무엇보다 백년어서원의 지속적인 인문운동이 원도심 창작예술촌 '또따또가' 조성을 제기한 단초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침체 일로를 걷고 있던 원도심이 문화적으로 재생 중이다.

부산대 앞의 '카페 헤세이티'도 중요한 가치들이 생성되고 있는, 주목해야 할 인문공간이다. 헤세이티는 '인문연대 금시정'이 해석과 비판에 골몰하는 '학(disciplines)'이 아닌 삶의 낮은 자리로 내려앉는 '공부(study, 學)'와 '(생활양식의)사귐'이 있는 인문공동체를 '장소화'를 통해 실현하려는 공간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문공간이 개성적인 장소성을 확보하고 있다.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통해 대안적, 발전적, 진보적 미술문화 형성에 기여하면서 시각문화의 진원지 역할을 하는 '대안공간 반디', 인문공부, 세대를 넘나드는 커뮤니키 생활기획공간 '통', '연구모임 a'를 필두로 웹의 장소화를 추구하면서 인문과학제를 다루는 '아지트'. 실험과 상상력으로 화래와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공간초록'. 인문예술의 문화융복합을 꿈꾸는 지식동동체 '문화공간 빈빈' 등이 역동적인 파도를 만들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연대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만남을 통해 공존의 기술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년어서원'과 '인문연대 금시정'은 지속적인 연대강좌를 실험 중이며, 최근에는 '영화갤러리 보기드문'도 합류해 연대강좌를 구성했다. '연구모임a'의 '정념과 인문공동체;라는 콜로키움을 통해 공동체 연대를 향한 인문학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최근에도 헤세이티에서 민간주도의 젊은 인문대표들이 만나 지속적인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두고 뜨거운 토론의 장을 가졌다. 이처럼 민간주도의 인문학 커뮤니티는 부산에서 실질적인 인문지도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그 힘이 제1회 유네스코 세계인문학포럼 부산 유치로 맺힌 것이리라.

인문학은 의식의 모험이다. 이는 시대의 지배 관념을 똑바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는 것의 용기, 듣는 것의 용기, 읽는 것의 용기. 결국 한 개인의 선택이 문명전환적 사건이며 전 지구적 변화를 끌어온다.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는 왜곡된 가치체계에서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일상을 근원적 인 기운과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인가. 바로 대중에게 보여주어야 할 인문의 방향이다.

바까데미아는 아카데미아 바깥에서의 인문학 연구소라는 의미이다. 이는 이론과 개념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끌어내는 행동지성을 목표로 한다. 책상 위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풀고 있는 건 자위 행위에 불과하다. 창밖에서는 무수한 사람과 가치들이 잉여로 떠돌면서 쓰레기화돼 가는 중인데 말이다. 그동안의 인문학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가 아니었을까. 아주 환하게 그럴듯하게 피어 있지만 향기가 없다. 오히려 지식은 충분하다. 이제 인문학은 연구실 바깥으로 나와 몸으로 해야 한다. 많은 예산을 가지고 체제를 따라가는 안락한 인문학은 이 문명의 치유를 감당할 수 없다. 인문학은 사회적 통념과 대립하는 꿈이며, 타락한 가치와 맞서는 힘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개인을 욕망하게 만드는 인문학의 유행은 경계해야 한다. 시민을 관리 가능한 교양인으로 만들어 내듯이, 오히려 사회의 관행을 내면화 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오히려 반인문에 가깝다. 가치를 나누는 일은 실천에서 향기를 낸다. 개념이 아니라, 체온으로 직접 부딪칠 때 인문학은 앎에서 삶으로 성장한다.

그 실천적 대응으로서 시급한 과제는 바까데미아의 고유한 영역을 열어주는 일이다. 일단 사회에 나오면 인문학적 사고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인디고서원이 진행해 온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청소년 인문학의 가치가 좋은 예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진실을 고뇌할 줄 알고 타자를 공감할 줄 아는 일은 가치선택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소년을 가르치는 어른들의 인문학적 가치 또한 고양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실천적 영역은 일시적인 몇 시간의 의무 연수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까데미아의 지속과 재생산은 인문학의 대중화에 반드시 필요하다. 바까데미아의 지속적인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은 대중과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만들 것인가와 같은 과제이다. 학교 바깥의 인문학은 늘 재정의 곤궁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욕적으로 도전한 일이 얼마 못가 위기에 부딪혀 쉽게 무산된다. 제대로 된 뒷받침이 있을 때 바까데미아도 대중도 상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인문학적 사유를 가르치는 실천적 지식인이 양성되는 것이다. 지원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원정책이 주로 서류에 의존하는 것도 정말 답답한 일이다. 제대로 된 인문학은 서류 꾸미는 일에 매달릴 수가 없고, 제대로 된 실천가는 서류에 매달리기 어렵다. 온몸으로 타자와의 관계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문학?역사?철학이 다 결국 관계의 방식을 제시하는 것 아니던가. 보다 현실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관료들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인문 실천에 참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찾아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서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은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속도주의와 편리주의와 성과주의를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삶의 의미를 묻는 문제, 실존의 방식을 묻는 문제는 속도와 편리와 성과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댕의 말대로 '진보는 느리고 불확실한 것'이다. 더 불편하게, 더 천천히 가야 한다. 섬세하게 사물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자의 문제, 소통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를 발견하는 데는 자긍심이 우선이다. 문득 자신의 무늬를 환기하는 힘은 인문학의 대중화에 소중한 과정이다. 자본에 주눅들지 않은 자신감과 타자에 대한 공감은 같은 방향이며 이는 결국 개인의 자긍심을 발견하는 과정이기에 말이다.

김수우 시인, 부산 인문학카페 백년어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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