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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오바마와 미국 달러패권 시대의 종언
닉슨-오바마와 미국 달러패권 시대의 종언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정치학
  • 승인 2011.09.0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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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눈

구갑우 북한대학원대·정치학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대통령이 직접 대중에게 ‘말’을 해야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위기 발생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들의 성찬에서 무엇보다 민족주의든 애국주의든 파시즘이든 ‘우리는 하나다’가 강조되곤 한다.

지난 8월 5일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앤푸어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이 사기업이 1941년 국가 신용등급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 벌어진 사건이었다. 달러 패권의 첫번째 종언은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의 달러의 태환성 일시 중지선언이었다. 이후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에 기초한 고정환율제인 금-달러 본위제가 붕괴했다.

달러패권의 종언이라는 위기에 대한 두 대통령의 말을 비교해 보자. 2011년 8월 8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달러 패권의 두번째 종언을 알리는 스탠다드앤푸어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말을 했다. 미국이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평가가 아니라 정치체제의 행동능력을 의심해서 나온 결과라고 항변한다. 그럼에도 정당한 우려 사항인 재정 적자를 위기의 주범으로 설정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방위비와 국내 지출의 감축이라는 합의가 있었음을 강조한다. 공정성을 실현할 수 있는 세제 개혁의 필요성도 언급한다.

그러나 근본적 조치가 필요함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초당적 협력을 언급한 후, 어떤 기관이 무슨 평가를 내리든 미국은 항상 AAA 국가였고 앞으로도 그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 말하면서, 국민들의 끈기와 용기, 그리고 함께 힘을 합쳐 짐을 짊어지려는 그 의지를 이야기한다.

1971년의 닉슨으로 가보자. 미국-베트남 전쟁을 종료하는 문제로 말문을 열며 평화와 새로운 번영이라는 위대한 이상을 제시한다. 실업과 인플레이션과 국제적 투기가 위기의 지표다. 고용의 창출을 위해 감세가, 전쟁 때문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해 가격 동결이, 국제 투기세력으로부터 달러를 보호하기 위해 달러의 태환성 중지가 대안적 정책으로 제시된다.

닉슨의 선택은 사실상 미국 달러의 평가절하였다. 평가절하의 국내적 후폭풍을 제어하기 위해 닉슨은 미국산 제품을 사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무역수지의 개선을 위해 관세 인상을 포함한 보호주의적 조처도 도입된다. 그리고 미국의 정신을 언급하면서 과거 최상 의 날을 불러오고 앞으로도 최상의 날들이 전개될 것이라고 마무리를 한다.

오바마와 닉슨은‘닮은 꼴’대통령이다. 오바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닉슨은 베트남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집권했다. 재정 적자도 둘 모두에게 부담이었다. 반면 달러 패권의 종언을 닉슨은 직접 선언했다면, 오바마는 사기업의 달러 패권 종언 선언에 맞서고 있다. 닉슨 이후 미국은 변동환율제 하에서 달러 생산의 이득을 향유하면서 생산과 유리된 금융자본의 성장을 통해 달러 패권을 지속할 수 있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처럼 일본의 엔과 독일 마르크의 평가절상을 통해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스탠다드앤푸어스가 유발한 상징적 사건 이후를 감당할 수 있는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재정 적자의 해소를 위한 조처들은 미봉책일 뿐이다. 달러를 대신할 기축통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국제통화 협력도 가시적이지 않다. 탈패권 시대의 통화협력은 과거처럼 한 국가의 통화가 지배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오바마의 말은 닉슨의 그것처럼 환상으로 끝을 맺는다. 위대한 미국의 구호가 미국 국내정치에서조차 효과를 발휘할지 의문이다. 경쟁적 보호주의를 야기한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의 정치적 산물은 파시즘과의 전쟁이었다. 달러 패권의 종언을 불구경하듯 볼 수만 없는 이유다.

미국은 탈패권 시대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닉슨은 공정한 국제경제 질서에 대해 말이라도 했지만, 오바마는 그조차도 말하지 않고 있다. 군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약속도 미국에서 국내적 반대에 부딪힐 수도 있다. 미국의 국내적 선택이 탈패권 시대의 세계 정치경제를 요동하게 한다. 미국 대통령의 말을, 미국의 민족주의적, 애국주의적 정향을 제어할 수 있는, 국제적 실천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정치학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화 연구에 관심이 많으며, 저서로『비판적 평화연구와 한반도』,『 국제관계학 비판: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평화』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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